기록하기 시작했다.
너무 답답한 마음, 복잡한 생각.
내 안에 무엇이 이토록 나를 힘들게 하는지 알고 싶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싶었다.
거침없이 내 감정을 공책에 적었다.
글자인지 지렁이인지 알 수 없는 문자들이 빈 공간을 가득 채웠다.
내 머리 정수리까지 가득 차 있던 생각들은 급속도로 빠져나갔다.
빠르게 뛰던 맥박도 점점 느려졌다. 개운했다. 시원했다. 드디어 살 것 같았다.
격한 운동을 한 듯 온몸의 긴장이 풀렸다.
3개월 만에 온전한 밤을 보냈다.
외로움은 텅 빈 시간에서 온다
혼자 있는 시간은 외롭다.
외로운 사람은 시간이 텅 빈 사람이다.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지만 부질없다.
반짝이는 비눗방울을 보며 좋아하는 아이들.
더 많이 보고 싶은 마음에 힘껏 불지만, 숨이 차오르면 멈춘다.
그토록 반짝이던 방울들은 전부 사라지고 아이들은 다른 반짝임을 찾아 떠난다.
우린 비눗방울처럼 순간의 반짝임을 추구한다.
나의 내면을 방울들로 가득 채우지만 사라진다.
사라진 자리 허전함이 채워지면, 외로움을 느낀다.
내가 아닌, 타인으로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감정은 껌처럼 달라붙는다.
밤이 불편하다면, 내 안에 너무 많은 생각과 감정이 있다는 증거다.
머리카락에 달라붙은 껌처럼. 그것은 떼어낼 수 없다.
샴푸로 감고 양손으로 문질러도 찌꺼기는 남는다. 결국 잘라내야 한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한 번 달라붙은 감정은 지워지지 않는다. 도려내야 한다.
내가 나이고 싶은 욕망은 하나의 집착을 만들었다.
내 안에 너무나도 많은 자아들이 쉼 없이 나를 흔들어댔다.
끊임없이 나를 공격했다.
일기만으로는 부족했다.
필사를 시작했다.
노트북 전원을 켜고, 전자책 뷰어를 띄운 뒤 키보드를 눌렀다.
문장들이 화면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활자들이 빠르게 흘러갔다.
책의 문장은 내 눈을 통해 뇌에 도달했다. 신경은 손가락을 움직였고 키보드를 두드려 글자를 생성했다. 나라는 존재는 관찰자가 되어 내가 하는 행위를 보고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수많은 자아들도 침묵했다. 내가 아닌 작가의 생각이 나를 통과해 흐르며 부정적인 감정과 마음까지 함께 씻겨 내려갔다.
그 빈자리는 책에서 수혈된 생각들로 채웠다. 생각들은 맑았다. 탁했던 내 사고는 조금씩 정화되었고, 마음은 곧 그것을 알아차리고 조용한 기쁨의 신호를 보냈다.
기록은 나를 움직이게 한다
기록하는 행위는 뇌를 자극한다. 작은 떨림이 검지와 엄지를 타고 뇌까지 전달되었다. 지금 내가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고 신호를 보낸다. 그때서야 안도감을 느낀다.
기록은 한 번 각인되면 지울 수 없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마음과 영혼에 새겨진다. 기록은 나약하고 야비하고 비굴한 내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다. 내 마음은 세상을 비추는 또 하나의 거울이다. 마음의 거울에 먼지가 쌓이면, 내가 보는 세상도 점점 탁해진다.
우린 언제나 '나다움'을 외친다.
하지만 타인을 바라본다.
내가 되고 싶은 건지, 네가 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어서 그 사이를 기웃거린다.
흔들리는 나를 바로잡는 것.
바로 기록이다.
오늘 해야 할 일은 기록하지만, 오늘의 '나'는 기록하지 않는다.
댓글은 달지만, 내 마음에 글은 달지 않는다. 책을 읽고 감동하면 밑줄 긋지만, 내 마음은 읽으려 하지 않는다.
타인을 향해 웃지만, 나를 보며 웃지 않는다.
얼굴은 포장할 수 있지만, 마음은 꾸밀 수 없다.
미인도 꽃미남도 시간 지나면 노인이다.
마음의 먼지를 털다
기록은 굳은 먼지 긁어내듯, 내 마음의 찌든 먼지를 털어낸다
가려져 있던 나를 만나며, 내 삶에서 타인은 조금씩 사라졌다.
눌어붙으려는 감정도, 기록으로 털어냈다.
나는 기록으로 매일 내 마음의 거울을 닦았다.
기록할수록,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 빛나기 시작했다
기록이 빛날수록, 나의 하루도 함께 빛났다.
어느새 내 얼굴에도, 잊고 있던 미소가 떠올랐다.
가려진 나를 만나고 싶을 때 나는 기록한다.
기록하는 순간, 멈춰 버린 내 마음은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그래서 나는 쓴다. 나를 멈추지 않기 위해..
다시 피어나는 마음
꽃은 시든다. 마음도 꽃이다.
한 번 시든 마음은, 아무리 물을 주고 거름을 줘도 쉽게 다시 피지 않는다.
그저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을 뿐이다.
마음을 열어야 싹이 튼다.
하지만 스스로 피어나려는 의지 없이, 그 싹은 끝내 움트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기록한다.
말라가는 마음에 작은 숨구멍을 틔우기 위해.
다시 피어나고 싶다는 내 안의 목소리를, 잊지 않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