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함께에서 주인공 차태현은 사고로 죽은 후, 자신의 영혼이 몸 밖으로 튕겨나와 혼란스러워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를 흔히 ‘유체이탈’이라 부른다. 영혼이 몸을 빠져나와 자신을 바라보는 경험. 나는 그것과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마음이 극도로 힘들었던 시기였다. 이성과 감정은 충돌했고, 몸은 지쳐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그때의 나는 나 자신을 놓아버렸다. 생각, 감정, 행동이 따로 노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 인간은 현실 감각을 왜곡시켜 스스로를 보호하려 한다고 한다. 나에게 나타난 왜곡은 ‘관찰’의 형태였다. 내가 어떤 상태인지, 하나의 관찰자로서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다.
“자꾸 처진다. 늘어진다. 허탈감도 느껴진다.
‘동화책을 만들어볼까?’ 이 생각이 들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재미있겠다는 상상도 들었다.
동시에, ‘돈을 벌어 독립하고 싶다’는 현실적인 욕망도 올라왔다.
지금 당장 돈을 번다면, 현장 일 없이 지금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생각했다. ‘우선 전자책을 써서 돈을 벌자. 독립이 먼저야.’”
이처럼 생각이 복잡할 때면, 내가 진짜 원하는 것과 현실 사이의 충돌이 원인이었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라는 목소리와, 하고 싶은 걸 하라는 목소리가 충돌할 때,
에너지는 소모되고 나는 점점 지쳐간다.
그럴 때 나는 생각, 마음, 행동을 각기 캐릭터처럼 나눠서 기록한다.
생각이 말한다
“마음아, 지금이 어떤 시국인데 동화책을 쓴다고? 말이 돼?
너 직장도 없고, 돈도 없고, 능력도 없잖아. 인맥도, 자신감도 없고.
그런데 동화책? 정신 차려!
다른 사람들은 지금도 땀 흘리며 아둥바둥 살아가고 있어.
너는 백수잖아. 현실을 직시하라고!
전자책을 써서 돈을 벌고, 강의도 하자고!”
마음이 대답한다
“생각아, 나도 알아. 그래서 더 갈등 중이야.
트랜서핑에서는 ‘애쓰지 말고, 끌리는 걸 하라’고 했어.
난 지금 동화책이 끌려. 이 신호를 무시하면, 나 자신을 배신하는 것 같아.
네 말, 전부 맞아. 나도 부정 못 해.
하지만 생각해봐.
성공한 사람들은 늘 ‘불가능한 선택’을 했어.
평범한 선택, 안전한 생각은 결국 평범한 삶을 만들 뿐이야.”
행동이 끼어든다
“둘 다 맞는 말이야.
근데 이렇게 계속 갈등만 하니까 난 움직일 수가 없어.
지금 이 혼란은 기준이 없기 때문이야.
너희는 머리로만 판단하고 있어.
기준, 즉 ‘천명’과 ‘신념’을 정리하고,
그에 맞는 선택을 하면 돼.
지금 당장 정리해. 문서로 써. 공표해.
시작하면, 나머진 수정하면 그만이야.”
나는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 과정마저도 ‘생각 어른’의 비중이 컸다.
나는 ‘마음 아이’를 달래기 위한 마무리를 하지 않았다.
결국 마지막에 필요했던 건, 공감이었다.
To. 마음이에게
하고 싶은 거 다 해. 괜찮아.
지금까지도 잘 해왔잖아. 나는 너를 믿어.
그리고 미안해.
내가 너를 너무 억눌렀어.
내가 옳다고, 그게 맞다고, 너한테 강요했지.
내가 꼰대였어. 위험하니까, 하지 말라고, 가만있으라고 했지.
근데 그것도 다 널 위함이었다는 건 잊지 말아줘.
그리고… 고마워.
40년 동안 내 불평, 내 아픔 다 들어줘서.
이제 내가 널 믿어줄게.
힘들면 말해. 언제나 네 옆자리에 있을게.
사랑해.
우리는 타인을 공감하기 위해 애쓰지만, 정작 나 자신을 공감하는 일은 게을리한다.
내 시선이 타인의 표정과 말투에 반응할수록, 내 마음은 점점 희미해진다.
그렇게 남에게 맡겨진 마음은 언젠가 “힘들다”는 신호를 보낸다.
그 신호를 외부에서 해소하려 하면, 우리는 결국 내 마음을 잃는다.
그리고 마음을 잃는다는 건, 곧 나를 잃는 것이다.
잃어버린 나를 다시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 자신뿐이다.
나는 관찰일기를 통해 ‘마음 아이’를 다시 만나고, 다시 공감할 수 있었다.
내 감정은, 내가 가장 마지막까지 외면했던 진짜 나였다.
결국 나를 지키는 가장 깊은 습관은,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