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수 0, 좋아요 0. 그런데 이곳이 편하다

by 김명복

마법사들에겐 ‘아공간’이 있다. 위급한 상황엔 도망칠 수 있고, 필요한 물건을 꺼내 쓸 수 있는 은밀한 공간. 내게도 그런 아공간이 있다. 몸은 일터에 있어도, 필요하면 마음은 그곳에 숨을 수 있다. 만약 그 공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곳은 비공개다. 타인의 시선은 닿지 못하고, 오직 나만 들어갈 수 있는 안전한 내면의 방.

마법사는 지능이 뛰어나다. 섬세하고, 예민하며, 감수성이 풍부하다. 때로는 소심하고, 생각이 많고, 타인의 시선에 쉽게 흔들린다. 이런 특성을 가진 사람을, 우리는 '내향인'이라고 부른다.

내향인의 삶은 쉽지 않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다. 급기야 자신에게도 상처받는다. 생각이 많다는 것은 자기만의 철학이 있다는 의미다. 사회가 정한 기준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 질문하고, 의심하고, 끝까지 탐구한다. 그들은 천둥 같은 생각과 번개 같은 감정 속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내향인에겐 조용한 날이 없다. 그들에게는 침범당하지 않는 자기만의 공간이 꼭 필요하다. 오직 자신만을 위한 소우주

나는 INFJ이다. 예민함은 늘 예고 없이 찾아온다. 정신없이 일을 하다 문득 생각한다. ‘지금 내가 뭘 하고 있지?’ 그럴 때 내게 가장 필요한 건 기록이었다. 혼란스러운 생각, 무거운 감정을 글로 쏟아내면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문제는 내가 일하는 곳이 건설 현장이란 사실이다. 거칠고, 숨 쉴 틈 없는 공간. 고성이 오가고, 철근과 땅을 울리는 기계들이 가득한 그곳엔 앉아서 마음을 가다듬을 시간조차 없었다. 명상, 독서, 일기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컸다. 그래서 생각했다. ‘이동하면서 기록할 수는 없을까?’

걸어 다니면서도 자유롭게 기록하고 싶었다. 사진도 찍고, 번뜩이는 영감도 적고, 오디오 파일도 올리고 싶었다. 쉬는 시간, 식사 시간, 출퇴근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도, 언제든 기록하길 원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핸드폰 하나로 해결하고 싶었다.

블로그, 인스타, 유튜브… 그 공간들은 내게 지나치게 많은 타인의 시선이 닿는 곳이었다. 세상은 사실 나에게 큰 관심이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조회수, 좋아요, 댓글에 자꾸 눈길이 갔다.

‘역시, 나는 글을 못 쓰는 건가?’

관심받기 싫지만, 관심받고 싶었던 이율배반적인 은밀한 본심. 내 감정이 조작된 반응에 흔들리는 것 자체가 싫었다. 하트 개수에 따라 변하는 내 마음은 내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비공개 카페를 만들었다. 검색의 시대, 검색되지 않는 곳. 오직 나만을 위한 공간.

모두가 디지털 디톡스를 외칠 때, 나는 오히려 디지털 톡스를 선택했다. 더 깊이, 더 조용히. 단, 오직 나만을 위한 방식으로.

첫 비공개 카페 이름은 ‘내 인생의 지도를 만들어가는 곳.’이다. 개설일은 2015년 11월 06일이다. 회사 생활부터 일기, 목표, 꿈, 고민, 스크랩까지 다양하다. 첫 회사에 입사하면서 만들었던 공간이다.

기록이 쌓이면 내가 보인다. 그 순간의 감정은 거짓이 아니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난 그 순간, 우리 안에 잠든 본심은 깨어난다. 나는 ‘비공개’의 은밀한 자유 속에서 나를 발견했다.

2016.12.18. 19:14 새로운 출발의 시작

“이제 시작을 준비해야 한다. 나만의 공간. 나만의 작업 나만의 시간. 그리고 나만의 나를 만들기 위해서.

떠나야 할 시기는 정하는 게 아니라 몸이 먼저 반응을 하는 듯하다. 머리는 아직이야 아직이야 신호를 보내는데, 몸은 떠나라는 신호를 보낸다.

언젠간 변화를 시도해야 하지만, 시간이 지나 나이가 들수록 그 변화의 시도는 줄어들고 어려워지는 듯하다. 좀 더 변화를 두려워하기 전에 한 발자국 더욱 앞으로 나가야 한다.

나의 믿음은 비공개 카페다. 그곳에 적힌 기록들이 내가 누구인지 알려주고 있다. 무엇을 원하고, 싫어하는지 적혀있다. 의도 없이 기록했던 분노와 기쁨, 설렘과 두려움들. 모자이크 따위는 없다. 그저 경험하고 느끼는 날 것 그대로의 마음, 나조차 몰랐던 내 본심을 보여 주었다.

외부의 시선에서 벗어나, 나에게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나만의 공간이 생기면, 세상은 더 이상 혼란스럽지 않다.

나만의 소세계는 이기적인 세계다. 오직 내 목소리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곳은 타인의 목소리가 감히 침범할 수 없는, 나만의 무해한 성역이다.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22화작은 습관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