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라 쓰고 물음표라 읽는다.
나는 못난이다. 중학교 43명 중 42등이었다. 내 바로 뒤에는 축구부가 있었다. 그 녀석은 나를 보며 씩 웃었다. 그 웃음엔 ‘나는 잠만 잤는데?’란 승리자의 미소였다.
나는 이상가다. 하늘을 하는 상상을 한다. 내가 만약 구름이라면 높은 하늘 유유히 떠다니며 온 세상을 여행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러다 누나에게 타로 점을 봤다. 결과는 ‘허황된 꿈꾸지 마’
나는 겁쟁이다. 늘 고민하고 갈등한다. 생각도 많아 행동도 느리다. 혼자 끙끙 앓다 마음고생만 한다. 할까 말까 망설이지만, 결국 한다. 그리고 현실과는 정반대의 선택을 한다.
나는 평범하다. 길 가다 흔히 볼 수 있는 풀이다. 나는 꿈을 꾼다. 꿈이 사치가 되어 버린 시대지만 여전히 상상하고 희망한다. 하지만 문제는 가 있다. 내 꿈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2022 08 18 목 오전 06:28 철야 퇴근 후 편의점에서 커피 한 잔.
“솔직히 지금 내가 뭘 하는지 모르겠다.
필사를 하고 있는데 이게 뭔지도 모르고, 그저 익숙하고 글을 쓰고 있으면 집중할 수 있어서 하는 것뿐이다.
모든 길은 통한다. 사라는 과정 역시 정상을 위한 하나의 방법임에 틀림없다.
그러니 의심하고 긴가민가해도 하자. 그 의심이 사라지는 순간이 변화의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다.”
모든 도전과 꿈은 의심으로 시작되고,
의심이 사라지는 순간 변화가 시작된다
10년이란 시간을 꿈을 찾아 헤매었다. 때로는 꿈을 꾸었고, 때로는 꿈을 이루어도 봤다. 좋아하는 게 많다는 건 언제든 다른 걸로 갈아탈 수 있다는 말이다. 잘 하는 게 있다는 건 너무 쉬워서 쉽게 질린다는 것이다. 반대로 내가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못하지만 더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 생길 때 꿈에 더 가까워진다. 그렇다 내가 발견한 꿈은 온실 속의 화초가 아니었다. 의심하고, 고민하고, 불안 속에서 피어난 야생화였다.
20대의 꿈은 물에 비친 달을 따기 위해 물속으로 뛰어드는 용감한 사람이다.
30대의 꿈은 물에 비친 달을 보며 ‘정말 저걸 잡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사람이다.
40대의 꿈은 더 이상 물속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대신, 하늘에 떠 있는 진짜 달을 본다.
꿈꾸기엔 너무 잔인한 시대다.
꿈꾸는 사람은 '물에 비친 달을 따기 위해 물속으로 뛰어드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그들은 물속이 아니라, '꿈에 풍덩 빠진 것이다!'
나는 지금 내 이야기를 쓰고 있다. 과거의 기록들이 하나둘 쌓여, 지금의 글이 되고 있다. 그때는 단순한 메모였지만, 지금은 나를 만드는 재료가 되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흩어진 조각들을 모아 나만의 이야기를 완성해가는 과정이었다.
구본형 작가는 ‘글쓰기는 꿈을 현실로 데리고 오는 나의 방식이다.
나에게 책이란 꿈과 현실을 잇는 통로이다’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글은 나에게 꿈이자 현실이다. 꿈은 천천히 자란다.
꿈이 건강하게 자라 독립할 때까지 현실의 내가 보살피며 키워야 한다.
꿈이 먼저냐, 돈이 먼저냐는 질문은 의미가 없다.
사람은 배고프면 돈을 벌 것이고, 배부르면 새로운 목표를 찾게 된다.
하지만 배부른 상태에서도 목표 없이 살아간다면, 결국 스스로를 잃게 될 것이다.
꽃은 아름답지만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누군가 꺾어가도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우리는 감정을 가지고 있고, 생각할 수 있다.
지금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이 꿈을 향한 과정이라고 믿는다면,
내 하루는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의미 있는 여정이 된다.
꿈은 눈처럼 차곡차곡 쌓인다.
밤새 내린 눈 한 송이로 세상이 그렇게 변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오늘이라는 꿈도 마찬가지다.
작은 행동이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세계를 하얗게 덮고 있을지 모른다.
뒤돌아볼 수 없기에 확인할 수 없을 뿐,
어느 날 눈을 뜨면 온 세상이 나만의 꿈으로 변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