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따라 강남 간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정말 그렇게, 친구를 따라 ‘강남’에 갔다.
그 ‘강남’은 주식이었다.
현장 일하며 주식 투자자를 꿈꾸는 친구가 있었다.
몇 백만 원을 투자해 억 단위로 수익을 내고 있었다. 보통 사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친구는 진짜였다. 병원에 잠시 입원했던 시간이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 뭘 해야 할지 고민하다 우연히 시작한 주식이, 그에게는 인생을 바꾸는 기회가 되었던 것이다. 그 친구는 내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일단 돈 벌어 놓고, 하고 싶은 걸 해. 자유롭게."
맞는 말이다. 일단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지면 그다음부터는 원하는 걸 하면 되니까. 그리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친구만 따라 하자. 같은 종목을 사고, 친구가 주식을 팔 때 나도 팔면 돈을 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간사한 마음을 가지고 쉽게 돈을 벌려고 했었다. 그렇게 무작정 시작해 버렸다.
천만 원을 투자했다. 난생처음 시작한 주식의 마력에 빠져 버렸다. 올라가는 숫자와 요동치는 그래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눈이 돌아간다는 게 이런 건가 싶었다. 두근거려서 잠도 자지 못했다. 하루 종일 차트 창망 보면서 그래프의 상승과 하강에 따라 내 마음도 롤러코스터를 탔다.
친구는 내게 “차트창 보지 마”라고 했지만, 그 말이 들리지 않았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손은 멈추지 못했다. 핸드폰만 붙잡고 살았다. 결국엔 두려움과 조급함에 팔아버렸다. 마이너스 50%, 반 토막이었다. 친구는 버텼다. 그는 자신이 세운 원칙을 지켰다.
친구와의 차이는 단 하나였다.
친구는 자신이 세운 원칙을 지켰다. 믿고 기다렸고, 끝내 원하는 결과를 얻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기준이 없었기에 흔들렸고, 결국 불안에 휩쓸려 섣부른 선택을 했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세상이 변해도, 내 안에 확고한 기준이 있다면 길을 잃지 않는다는 것을. 그 후로 나는 나만의 기준을 찾기 시작했다.
왜 나는 방황하는가?’ ‘왜 나는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가?’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고, 그것을 기록했다. 그중 하나가 아래의 글이다.
2024년 06월 13일
왜 또 생각이 흔들리는 걸까? 흔들린다. 복잡해진다. 아닌 것 같다. 생각이 많아진다. 방향을 잃어버린 기분이다. 내면은 충만한데, 현실은 빈곤하다. 그 괴리감이 나를 힘들게 한다."
그때의 나는 내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전혀 확신이 없었다.
겉으로는 바쁘고 열심히 사는 것 같았지만, 방향이 없었다.
그리고 불과 이틀 뒤, 또 하나의 기록이 남아 있었다.
"2024년 06월 15일 왜 더 이상 흔들리지 않을까? 이 전까지 흔들렸던 내 생각과 마음이 더는 흔들리지 않는다. 단단한 기준이 내 마음에 생긴 느낌이다. 질문이 쌓이면서 깨달았다. 과거의 선택들 속에 일관된 방향이 있었다는 것을.
그것은 바로 창작, 감동, 자유 다. 자유롭게 창작하며, 그 과정에서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이 내가 원하는 삶이다. 돈은 내 가치관 중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세상은 앞으로도 계속 변할 것이다. 유행도 바뀌고, 직업도 사라지고,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중심을 잡고 살아가는 방법은 결국 하나다. 나만의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을 지키는 것.
이제 나는 나만의 기준에 따라 살아가고 있다.
내 모든 선택의 기준은 창작의 즐거움, 타인에게 전하는 감동,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자유다.
차트에 일희일비하던 나는 이제 없다.
친구를 따라 강남에 갔던 나는,
이제 나만의 지도를 그리며
나만의 여정을 떠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