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금지 문자 받고, 나는 영화관으로 갔다

by 김명복

어느 날,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출근 금지' 한다는 내용이었다.

잠실 현장에 출근할 때, 5분~10분 차이로 지각을 많이 했었다. 항상 "5분만 더..."라며 다시 눈을 감았고 그 생활이 반복되면서 결국 지각이 습관이 되었다.

솔직히, 출근하기가 싫었다. 아침엔 겨우 몸을 끌고 나갔고, 하루 종일 퇴근 시간만 기다렸다. 그렇게 간절히 기다렸던 퇴근 시간이었지만, 막상 집에 도착하면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좋아하는 일을 하세요"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정작 내가 뭘 좋아하는지조차 몰랐다. 좋아하는 일이 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걸 직업으로 삼을 수 있을까? 내 성향과 맞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막연하게 "좋아하는 걸 찾으면 인생이 즐거워지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어떻게 찾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꿈과 열정을 가지라는 말은 흔했지만, 그걸 찾는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행동해라"는 조언뿐이었다.

꿈이 사라지고 있다.

어릴 적 우리는 수많은 꿈을 꾸었다. 나의 꿈은 대통령, 태권도 관장, 경찰관 소장, 하루 종일 게임만 하는 게 꿈이었다. 그저 모든 것들이 가능해 보였기에 마음껏 상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교육을 받을수록 그 꿈들은 하나둘 사라졌다. "그건 불가능해." "안 돼." "힘들어."

우리는 '하고 싶은 일'보다 '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되었고, 결국 꿈조차 꾸지 않게 되었다. 시작도 하기 전에 결과를 미리 알 수 있을 만큼 너무 똑똑해진 것이다.

실제로 '2023년 초·중등 진로 교육 현황 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 20.7%, 중학생 41.0%, 고등학생 25.5%가 희망 직업이 없다고 답했다. 정말 원하는 게 없는 것일까? 아니다. 하고 싶은 게 있지만 ‘안 될 거야’라는 확신이 더 먼저 드는 것이다. 현실이란 시험에는 내가 원하는 보기가 애초에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꿈이 있다는 것이 오히려 특별한 일이 되었다. 좋아하는 것도, 꿈도, 희망도 없다고 말하는 게 더 익숙한 시대. 우리는 이제 상상하는 법조차 잊고 있다. 상상할 수 없으면 호기심도 사라진다. 하고 싶은 게 없다는 말은 '호기심'이 없다는 말이다.

무언가를 하고 싶다, 무언가를 알고 싶다. 이런 내면의 욕망 없이 그저 '해야 한다'는 압박이 채운 지 오래다. 욕망이 아닌 의무로만 가득 찬 삶은, 시작조차 버겁다. 지치고, 무기력하고, 이유 없이 우울해지는 건 결코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우리 안의 호기심이, 이미 꺼져버렸기 때문이다.

사회학자들은 20~35세를 ‘오디세이 시기’라고 부른다. 이 시기는 자기 고유의 가치와 목표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직업을 선택하고, 퇴사를 고민하고,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삶을 찾아가는 시기다. 그 모든 시행착오 속에서 우리는 자기 고유의 가치와 방향을 발견해 간다. 지금 우리가 겪는 혼란과 불안은, 잘못된 게 아니라 너무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결국, 우리가 겪는 혼란은 단순히 직업을 고르는 문제가 아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다. "출근하기 싫다"라는 말은 단순한 귀찮음이 아니다. 그 말에는 변하고는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답답함,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담겨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런 감정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건 지금 이 삶이 ‘나답지 않다’는 신호이자, 나를 더 알고 싶다는 내면의 외침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 '내가 원했던 '나'를 상상하기보다, 타인의 삶을 갈망하며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지금 내가 누구인지조차 모르게 된 것이다.

이제는 조금 늦더라도, 방향을 바꿔야 한다. 무엇이 될지 보다, 나는 누구인가를 먼저 묻는 것. 그 질문에서부터 진짜 여정이 시작된다.

그러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 다양한 경험도 필요하다. 그저 취업하면 모든 게 잘 풀릴 거란 생각은, 오히려 나를 더 지치게 만들 뿐이다.

결국, 우리는 나를 알아가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시간은 결코 낭비가 아니다.

출근 금지 문자를 받았던 그날, 나는 기분이 잠시 상했지만 의외로 아무렇지 않았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지금의 내가 얼마나 지쳐 있었는지.. 나는 나를 자책하지 않았다. 싫은 건 싫은 거였다.

그 결과가 출근 금지로 돌아왔지만, 그 역시 내 선택의 일부였다.

나는 지하철에서 내려 무얼 할지 잠시 고민하다,

강남에 있는 극장으로 갔다.

그리고 혼자 영화 한 편을 봤다.

회사에 대한 원망도 없었고, 내가 왜 이럴까 하는 자책도 들지 않았다. 그저 '오늘 내가 뭘 할까?' 생각하고, '그래! 해보자.' 란 선택했을 뿐이다. 결과가 어떻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선택이 '내 것'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나는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순간, 삶은 조금 가벼워졌다.

모든 것이 내 생각과 행동에 달려 있다는 걸

조금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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