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배웠지만 마음은 배우지 못했다.
현장일을 하면서 그림 공부를 했었다.
매주 토요일 양제 시민의 숲 10시부터 5시까지.
연필 소묘, 크로키, 유화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한 표현 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
나는 유화 모작 수업이 가장 즐거웠다. 내게 있어 모작은 오픈북 시험 같았다. 정답을 보면서 문제를 푸는 느낌이랄까. 생각 없이 똑같이 그리기만 하면 되었기에 그 순간의 몰입의 순간을 즐겼다. 특히 고전주의 그림 모작을 할 때 집중력이 높아졌다.
고전주의 그림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잘 그렸다.', '똑같이 그렸다'라고 생각하는 그림이다. 사물에 대한 관찰력과 세밀한 묘사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데, 최소 50시간 이상 그렸던 것 같다.
인상주의 작품으로 고흐의 그림을 따라 그렸다. 인상주의 화풍은 빠른 시간 안에 그려야 했기에, 정신없이 붓을 움직여야 했다. 고전주의가 물감을 10번 쌓는 개념이라면, 인상주의는 3번 만에 끝내는 방식이었다. 그 외 쉴레, 데이비드 호크니 등 다양한 작가의 그림을 보면서 공부를 했었다.
친구는 가끔 내게 물었다. '좋은 그림이 뭐야?' '이건 무슨 의미야?'
이런 질문을 받으면 머리론 아는 데 막상 이야기를 하려면 말문이 막히게 된다. '구성과 조형성이 좋고 질리지 않으며 자연스럽고 뻔하지 않은.. 오래 볼 수 있는 그림.'이라는 말 밖에 못 한다.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바로 창작이다. 모작으로 그림 기술은 배웠지만, 내 그림을 그려야 할 땐 무엇을 그려야 할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기술은 있지만, 느낄 수 없으니 창작도 할 수 없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왜'였다. 내게 그림을 알려준 작가님은 모든 기술적인 능력 외에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나셨다. 왜 이런 작업을 했는지, 어떤 과정을 통해 기술이 발전했는지, 시대적으로 이 작가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를 평가할 수 있었다. 내게는 보이지 않는 작품의 '과정'을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지고 계셨던 것이다. 약간의 기술만 가지고 있던 내게 창작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던 건 당연했다. 나만의 '왜'가 없었기 때문이다.
요즘 인공지능이 이슈다. 그중 챗지피티는 뜨겁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그림, 글쓰기, 블로그 콘텐츠 제작, 일정 관리까지 빠르게 일상에 녹아들었다.
인공지능은 적일까? 동지일까?
예술계를 보면 방향성을 찾을 수 있다. 해외 유명 작가들 중 일부는 작품을 직접 그리지 않는다. 수십 명의 직원과 함께 작업을 한다.
세계적인 작가 제프 쿤스(Jeff Koons)의 '푸들 벌룬독'이란 작품이 있다. 어린이날 키다리 광대가 긴 풍선을 불어 어린이들에게 주는 그 푸들이다. 이 작가의 작업 방식은 회사와 같다. 100여 명의 직원들이 색을 칠하면서 공장의 시스템처럼 제작된다. 신기한 것은 그의 예술적 가치는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뭘까? 사람들은 기술이 아니라, 작가의 '생각'을 구매하기 때문이다.
'시대 예보'의 저자 송길영 박사는 앞으로 미래는 '시간이 아니라 지식을 팔아야 한다'라고 예고한다. 과거의 노동자들이 자신의 시간을 팔아 돈으로 바꿨다면. 이제 그 역할은 인공지능이 대신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팔아야 할까?
결국, 답은 '생각'이다. 누가 더 마음껏 상상할 수 있는지. 누가 더 큰 꿈을 꾸고 있는지. 즉 생각의 크기가 중요하다. 단수 반복 노동이 아니라, 생각의 크기가 곧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예술 가든 직장인이든 일반인이든 상관없다.
누가 더 자신의 생각을 효과적으로 잘 표현하느냐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