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질로 만들어진 lipid raft에 대한 이야기
겨울이 지났다. 이상 기후로 3월 말에도 눈이 오는 순간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조금씩 날이 따뜻해지고 있다고 길가에 톡톡 피어난 노란 개나리들이 말하고 있다. 안 그래도 겨울 동안 밖에 못 나가니 배를 잡으면 지방이 계속 뭉치고 있었는데, 이제야 운동을 좀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지방이 '뭉친다'는 표현을 우리 세포에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오늘은 세포의 막에서 지방이, 더 정확히는 그 상위 개념인 지질이 뭉쳐서 뗏목처럼 움직인다는 가설, Lipid Raft(지질 뗏목)에 대해서 알아보자.
먼저 지질을 알기 위해서는 세포의 구조를 조금 알아보아야 한다. 세포는 세포막이라는 물풍선에 가득 물이 담긴 상태와 같다. 만약 세포막이 없다면 곧바로 안에 있는 내용물은 밖으로 빵, 쏟아질 것이다. 그렇기에 세포막은 물에 녹지 않는 성분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안에 있는 내용물이 녹은 부분부터 질질 새어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세포막의 주요 성분은 바로 지질(Lipid)이다. 지질은 지방을 포함하는 상위개념인데, 특징에서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소수성, 즉 물과 붙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방은 기름과 그 성질이 비슷해 물 위에 놓으면 층이 분리가 되는데, 지질도 그런 부분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세포를 둘러싸는 세포막은 탄수화물(설탕처럼 물에 녹는다)이나 단백질(단백질 셰이크 보면 알듯 물과 그럭저럭 친하다)이 아니라 지질인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이 지질에 대해서 놀라운 이론이 하나 생겼다. 바로 지질이 시간에 따라, 외부 환경에 따라 저절로 뭉친다는 사실이다. 이 뭉치는 정도가 처음에는 마치 '뗏목(raft)'같다고 해서 Lipid Raft라고 이름 붙였다. 그렇지만 이 현상에 대해 연구를 하면 더 할수록, 범위가 뗏목 수준이 아니라 마치 섬과 같을 정도로 크게 뭉치면서 세포가 기능하는데 꼭 필요한 현상임을 알게 되었다.
이 Lipid raft가 생길 수 있는 이유는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는데, 그중 가장 기본적인 것은 지질과 지질 사이의 상호작용이다. 세포막에 있는 지질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이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힘이 달라서 끼리끼리 뭉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Lipid-raft domain에는 cholesterols, sphingolipids, gangliosides가 뭉치고, 그렇지 않은 지역에는 glycerylphospholipid 종류가 많이 관찰되었다.
이렇게 종류별로 나뉘는 게 왜 중요한 걸까? 그건 바로 이들이 단백질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몇몇 박테리아나 바이러스는 lipid raft가 있는 곳의 단백질 receptor에 결합했을 때에만 우리 몸속으로 침투할 수 있었고, HIV는 침투 후 증식한 뒤 나갈 때에 이 부분에 특이적으로 결합하는 Gag protein을 쓰는 것이 밝혀졌다.(바이러스가 콜레스테롤을 감지해 그쪽에만 모인다니, 참 신기하다) 거기에 유방암에서는 urokinase plasminogen activator surface receptor (UPAR), RAS와 같은 단백질이 이 lipid raft에 의존하는 방법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즉 지질이 뗏목처럼 뭉치니 단백질도 '어? 여기가 더 나랑 잘 맞는데?'라면서 더 끌리는 쪽으로 이동하고, 그렇게 특정 기능이랑 관련된 단백질들이 모여 함께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lipid raft의 가설은 아직 완전히 이론이라 불릴 정도로 증명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연구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자. 바다 위에 뗏목이 둥둥 떠있는데,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뗏목의 위치와 이동 시간을 측정하는 것이다.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데, 이 연구는 세포막에서도 지질이라는 조그만 성분들을 구별해야 하니 더더욱 좋은 현미경이 필요한데 아직 그 정도로 압도적인 현미경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걸 대신하기 위해 형광을 원하는 lipid에 붙여서 관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까 말했듯이 바다 위에 뗏목이 떠있는 상태를, 정말 정확히 관찰하고 싶은 것이다. 형광이라는 빛나는 바위를 뗏목에 붙이려고 하는 행위가 바다에 어떤 파도를 일으킬지 가늠할 수가 없으니 결과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다. 그래서 lipid raft의 연구는 굉장히 어렵다.
그렇지만 lipid raft의 기본 메커니즘은 간단하다. 세포막에 있는 lipid와 단백질이 각자 끌리는 입자끼리 모여서 기능한다는 것이다. 간단하고 거기에 물리적으로 있을 법한 일이다. 그래서 문득 배에 뭉친 지방이 원망스럽고 슬플 때, '세포에서도 지질이 뭉치는데 그 세포들이 모인 내게 지방이 모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라면서 마음을 달래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