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때 어머니에게 나의 태몽을 묻자, 답변해 주신 부분이었다. 신기하게도 부모님이 태몽을 꾼 게 아니라 큰아버지께서 나의 태몽을 꾸셨고 어머니에게 전달을 해주셨다. 그간 당연하게도 태몽이라고 하면 어머니 혹은 아버지가 겪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뭔가 일반적이지는 않았던 아이였던 것 같다.
나는 1998년 겨울에 전남의 현재 기준 인구 3만 명의 군(행정구역 기준)에서 2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형을 어머니가 가지셨을 때는 정성스럽게 태교를 진행하셨다고 한다. 나는 임신 사실을 모르고 추후 아실 때까지 술과 커피를 즐기셨다고 한다. 그렇게(?) 형과 나의 성격은 현재 정확하게 정반대이다. 태교의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어머니가 내가 태어나고 나서는 아버지를 무척 닮았다고 말해주었다. 나올 때부터 아버지의 극단적인 지성 피부를 닮아 피부에 윤기가 흘렀다고 말해주셨다. 생각해 보면 웃음이 나오는 포인트이다.
왜냐하면 중학생 때 부모님에게 피부과를 보내달라고 졸랐다. 딱딱하게 굳은 응괴성 여드름과 틈만 나면 터져대는 화농성 여드름이 나를 괴롭혔다. 아무리 씻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아 다행히도 피부과를 다니게 되었다. 피부과 의사 선생님이 "너는 시베리아 가도 살아남겠다."라고 할 정도의 심한 지성이었다. 실제로도 이소티논이라고 하는 피지선 조절하는 약을 적정 복용량인 일 2정을 넘어 3정을 먹어야 피지가 조절이 됐다.
이런 지성적인 부분을 아버지에게 물려받았고, 태어났을 때부터 아버지를 그대로 복사한 완성형으로 떡잎을 피우며 세상에 나왔기 때문이다.
짧게 나의 출생을 소개해보았다.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애정을 많이 받아왔던 아이였다. 중학생 때부터 알아온 우울증이 아직도 나를 괴롭힌다. 하지만 정확하게어떤 원인이 우울증을 걸리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여러 복합적인 원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20대 후반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이후에 내가 써 내려갈 인생에서 그간 일어났던 여러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에 대해 가끔 생각해보곤 한다. 그러고선 정상적인 생각과 사고로 세상을 살아갔다면 말이다.
그렇다고 우울증이 나에게 짐만 안겨준 것은 아니었다. 우울증이 동기부여가 돼서 나를 밀어 올렸다. 정말 죽을 각오로 노력하게 만들었고 덕분에 원하는 결과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