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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야 Apr 22. 2024

5화. 우울을 제물 삼아

사인.과로사

진짜 죽을 각오로 공부해 보자

부모님 앞에서 손목을 들키고 시간은 흘러갔다. 동시에 나도 이냥저냥 흘러가 고등학생이 되었고, 그동안 공부는 꾸준히 해왔기에 학교 내에서 내신으로 상위권을 가져갔다. 형의 몰락으로 시작했던 공부가 같은 학교 단위끼리 경쟁하는 내신에서는 충분했다. 하지만 수능과 같은 전국 단위로는 시골 단위 학생이 아무리 노력해 봤자, 도시권 얘들과 경쟁하기에는 역부족이었음을 체감했다. 


시간이 지나 고등학교 2학년 중간을 넘어가자 내 진학 위치를 파악할 수 있게 되고, 안정적이게 지방 거점 국립대를 들어갈 정도는 되었다. 농어촌 전형을 이용한다면 인서울 상위권까지도 가능했다. 수능을 준비해 본 사람이라면 공감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상위권 대학을 못 가면 인생이 끝난다고 느껴졌다.  


부모님께 이 소식을 전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소식은 전액 장학금 없이 인서울의 사립대는 안 된다였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처음으로 돈에 의해 인생에 장벽이 있다고 느꼈다. 내가 그동안 해왔던 노력의 갑절을 미리 했어야 했다는 내 노력과 재능에 대한 원망을 느꼈다. 그리고 집에서 미리 재수는 없다고 말을 했기 때문에 기회에 대한 원망이 들었다. 그리고 우울증은 다시 도지게 되었다. 내 자기혐오가 시작되었다. 자기혐오가 시작되어 내 모든 게 싫었다. 능력, 기회, 노력 더 나아가 외모까지 말이다.


자기혐오가 너무 심해져서 사는 것이 싫었다.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 하루에 여러 번 이명을 들었다. 모든 소리가 들리지 않고 내 안에서 들리는 높은 음의  삐- 소리는 또래와 같지 않았다. 또래와 같지 않고 스트레스로 점점 무너져가는 내 모습이 스스로 점점 나는 내 자리를 찾아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죽을 결심을 하기로 다짐했다.  


죽음의 앞까지 갔고, 팔도 그었던 마당에 나는 두려울 게 없었다. 그냥 공부하다가 죽으면 죽는 거라고 생각했고, 오히려 더 편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명분 있는 죽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나는 죽기 위해 수면 시간을 줄이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루에 2~4시간만 잠을 자고, 나머지 시간을 전부 공부하는 데에 전념했다. 기존에도 아침, 야간 자율학습이 있어 살인적인 스케줄을 보냈지만, 추가적으로 나 자신을 더 가학 했다. 평일에는 아침 6시에 일어나 8시에 학교에 등교해서, 9시 반까지 학교에 있다가 10시에 집에 왔다. 그리고 공부를 하다가 새벽 2~4시에 잠을 잤다. 토요일 또한 9시에 등교해서 6시까지 학교에 있었다. 일요일에는 근처 도서관으로 향하거나 라디오를 틀고 집에서 가장 어두운 방에서 공부를 했다.(직장인이 된 지금 생각해 보면 '이 과정을 어떻게 했지' 이 생각이 가득하다)


그렇게 나는 근 1년 동안 위 생활을 유지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밥을 먹다가 숟가락을 문채로 그대로 잠에 들었다. 내가 수면이 부족하다는 걸 익히 아시는 부모님도 나를 딱히 깨우시지 않았다. 그리고 공부의 훈장이라고 하는 코피도 공부 중에 그간 4번 정도 쏟았던 기억이 난다. 그럴 때마다 코피가 나고 어머니에게 자랑하기도 했다. 고3의 6월 모평, 9월 모평이 지나고 N수생 유입으로 인해 성적은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다. 당연한 결과였다.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 수능이 점점 가까워지고, 집에 많은 응원 선물들이 도착하고 실감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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