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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glecs Jun 15. 2024

나눔

 





반가운 연락

 

 며칠전 새벽 6시 조금 미치지 못하여 친한 회사 후배로부터 카톡이 왔다. '시간 되시면 시원한 방에서 스크린 후 아점 어떠신지요?' 내가 늘 새벽 5시 이전에 기상하여 하루를 시작하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꽤 이른 시간임에도 연락을 준 것이다. 얼마전에도 그와 아침에 스크린 골프를 치기 위하여 함께 갔다가 예약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허탈하게 되돌아온적이 있었다. 그때 일요일 오전 9시 조금 넘어서 스크린 골프장이 거의 열자마자 도착했었는데 이미 모든 방은 골퍼들로 만실이었다. 가격이 저렴한 오전 시간은 사전에 예약이 끝나서 이미 모든 방이 100% 가동중이 었던 것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예약도 없이 태연하게 골프백을 들고 카운터에 도착했을 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이가 없다는 듯이 우리를 쳐다보던 주인장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평소대로 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한창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몰두하여 글을 쓰고 있던 나는 그의 카톡을 보자마자 즉시 답을 보냈다. '좋지요' 라고 말이다. 내가 워낙 집돌이인 관계로 경조사 참석이 아니면 거의 외출을 하지 않는 성향이지만 이 친구의 연락을 받으면 언제든 기꺼이 집을 나선다. 그는 나보다 몇 년 후배이긴 하지만 모든 면에서 나보다 뛰어나서 배울점이 정말 많은 친구다. 그래서 그의 연락은 언제나 대환영이었다. 후배이건 선배이건 아니면 친구이건 나보다 훌륭한 사람을 만나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특히 겸손하고 인격적으로 뛰어난 사람들을 만나면 그때마다 나의 부족함이 매번 1%씩 줄어드는 느낌이 들어서 더 기대가 되기도 한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처럼 좋은 사람, 훌륭한 사람 혹은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과 시간을 보내면 나도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생각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그 친구를 만나면 서로 공감하면서 삶에 대한 이야기를 포함한 거의 모든 이야기를 터 놓고 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은 것 같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속을 내 보이면서 자유롭게 거의 모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은 정말 어렵다.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자신과 관련된 속내의 이야기를 타인에게 거리낌없이 하는 것은 커다란 도박이기도 하다. 사람이 가벼워 보일 수도 있고, 또 약점이 고스란이 드러날 수도 있기 때문에 나의 단점까지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만큼 상호 신뢰가 있어야만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는 내가 그런 위험을 감수해도 될 만한 사람이었다. 


 장점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단점이 될 수도 있지만, 나는 성향상 어느 정도 친밀도가 쌓이고 내 관점에서 적당한 인격을 갖춘 사람이라는 판단이 서면 꽤 많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가감없이 하는 편이다. 물론 나중에 '뒷통수를 심하게 얻어 맞고' 후회를 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큰 후회를 한적은 거의 없는 것같다. 어차피 무언가 말을 했다는 것은 이미 일은 저질러진 것이다. 후회를 전혀 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가급적 빨리 잊고 다시 반복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기 때문에 비록 너무 과한 말을 했을지라도 가급적 후회는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사실 최근에 너무 순진하고 생각없는 나의 솔직함의 대가로 뒤통수를 꽤 심하게 맞긴 했다. 통상 손으로 맞는데 이번엔 '벽돌'로 맞았다. 그래서 아직도 뒷통수가 좀 얼얼하긴 한데, 다행히 죽지는 않을것 같고 거의 회복 단계에 와 있다. 내 성향대로 살아온 대가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아무튼 대개의 경우 내 관점에서 좋은 사람이었다고 판단했을 때 그 판단이 틀린 경우는 많지 않았다. 내 판단이 정확했고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세상에는 여전히 좋은 사람들이 많고 내가 그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만큼 운이 좋았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런 그들로부터의 연락은 언제나 나를 기쁘게 한다. 그래서 며칠전 그의 스크린 골프를 치자는 연락도 내게는 그저 기쁘고 반가운 연락이었다. 




無限共感


 그런 지인들과의 교류에서 내가 만족감을 크게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과 정서적 공감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삶을 살아가면서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을 갖게 된다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나와 공감을 하는 것은 나와 생각이 같아서 이기도 하지만 또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그들이 겸손하고 언제나 양보를 할 줄 알기 때문이다. 아니 겸손과 양보가 몸과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언제나 자연스럽게 그런 성품이 드러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타인이 아무리 공감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모든 면에서 나의 생각과 같은 입장일 수는 없다. 반드시 생각이나 관점이 다른 경우가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친구와 같은 부류의 지인들과 이야기를 해 보면 마치 모든 면에서 나와 공감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이것은 그들이 그들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다를지라도 언제나 모든 관계에서는 '다름'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을 잘 이해하고 타인을 존중해 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서로간에 견해의 차이가 있는 것을 인정해 주고 존중해 주고 결과적으로 다름을 수용해 준다고 하여 완벽하게 동의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친구 이외에도 '내 입장에서는' 완벽한 대화 상태가 몇 명이 더 있다. 운이 너무도 좋게 말이다. 친구도 있고 선배도 있고 후배도 있다. 그들과의 만남은 단 한 번도 지루한 적도 없고 그들과의 만남을 주저한 적도 없다. 그들과 만나서 어떤 신박한 놀이를 하거나 엄청난 산해진미를 즐기는 것도 아니지만 그들과의 만남에서는 언제나 가슴이 따뜻했고 부담은 없었으며 다음 만남이 기대되곤 했다. 그런 분들과의 인연은 정말 소중하다. 어떤 이권이 개입된 것도 없는 순수한 정서적 교류의 형태로 맺어진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속박도 부담도 없는 교류이다. 오로지 만나면 서로 위로가 되고 힘을 얻을 뿐이다. 그래서 내게 있어서 그들은 특별한 형태의 휴식 공간이기도 하다. 세파(世波)에 시달리다가 위로와 격려 그리고 잠깐의 쉼이 필요할 때 편하게 쉴 수 있는 그런 편안하고 아늑한 카페같은 공간 말이다.  


 그들은 내게 깊은 공감을 통한 일종의 '정서적 나눔'을 하고 있다. 나를 이해해 주고 내게 관심을 가져주고 내 생각에 대하여 공감을 해주는 것이다. 물론 나도 거의 비슷한 작용을 그들에게 할 것이다. 그들의 너그러움과 배려심, 겸손함 그리고 높은 인격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그들이 시간을 내서 상대해 줄 정도의 최소한의 소양은 나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객관적 합리화는 가능할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내게 내어주지 않을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먼저 다가가기


 '정서'라는 것은 우리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감정 또는 기분 등을 의미한다. 상호간에 감정이나 기분이 잘 조화되어 안정적인 기분이나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일을 서로 아낌없이 배풀어 주는 것은 '정서적 나눔' 이라는 표현을 써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소중한 '그들'로부터 받은 정서적 안정감, 즉 '정서적 나눔'은 언제나 내게 잔잔하지만 꽤 오래 지속되는 기쁜 감정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나는 얼마나 타인에게 그런 소중한 '나눔'을 했는지 돌아보게 된다. 타인을 공감하기 위하여 나름 노력을 적지 않게 했다고 생각은 하지만 좀 더 노력은 필요할 것 같다. 


 무엇보다 타인에 대한 공감에 앞서서 나와 지금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공감이 더 필요할 것같다. 바로 가족에 대한 공감 말이다. 사실 며칠 전에도 딸아이의 투정을 받아 주지 못했다. 딸아이의 입장에 대한 공감이 부족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딸아이의 잘잘못을 떠나서 내가 제대로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처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을 공감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나는 엊그제 그 후배로부터 한 없이 따뜻한 정서적 나눔을 받았다. 그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내내 그저 행복하고 즐거웠을 뿐이다. 무엇보다 집에 틀어 박혀서 마치 습한 욕실 구석에서 암울하게 피어나는 곰팡이처럼 썩어가던 정신에 밝은 기운이 듬뿍 부어져서 역한 곰팡이가 없어져 버린 느낌이 들어서 후련하기까지 하다. 그 후배에게 이 글을 통하여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나 또한 타인에게 따뜻한 정서적 나눔을 언제나 베풀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래본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내게 그가 따뜻하고 넓은 이해심을 갖고 다가왔듯이 나도 같은 마음을 갖고 타인에게 먼저 다가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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