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완전한 대량 소비의 시대를 살고 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거대한 소모 경제가 사람들의 엄청난 소비를 추진력 삼아서 돌도 또 돌고 있다. 우리 나라는 역동적인 경제 성장 과정을 거쳐서 이제는 세계 10위의 경제 규모를 갖춘 선진국되었고, 이것은 그만큼 우리의 소비 여력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끔 꼭 필요한 물건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코스트코나 이마트 트레이더스를 가면 끝없이 길고 높게 쌓아져 있는 '제품 더미'를 쉽게 볼 수 있다. 커다란 카트에 잔뜩 온갖 먹을거리를 쌓아서 계산대로 향하는 사람들을 볼 때 그런 소비에 익숙치 않은 나로서는 상당한 이질감을 느끼곤 한다. 왜냐하면 내가 비록 대규모 소비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물건 소비'에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 대부분은 꼭 필요해서 샀을 것이다.
이제는 돈이 너무 부족해서 소비를 하지 못하는 시대는 거의 끝난 것 같다. 적어도 우리 나라는 말이다. 취향의 문제이긴 하지만 아무리 돈이 없어도 중고로도 어느 정도 좋은 품질의 제품을 구해서 소비할 수 있다. 운이 좋으면 당근 같은 플랫폼을 통해서 무료로 좋은 물건을 얻을 수 있는 기회도 꽤 많다. 과도한 소비에 따라서 구매 후에 사용되지 않는 제품들이 중고 시장에 내몰린지도 오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형편이 넉넉치 못한 사람들 혹은 형편이 나쁘지 않아도 나름 합리적인 소비를 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언제든지 중고 장터에서 꽤 상태가 좋은 제품을 적은 비용으로 확보할 수 있다.
나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꼭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정말로 필요한지 여부를 다시 냉정하게 판단하는 것이다. 잘 생각해 보면 대체재가 있거나 혹은 별로 활용하지 않을 물건인데 충동적으로 사려고 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자체 검열 과정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꼭 필요한 물건인 것으로 생각이 되면 먼저 중고를 고려하는 편이다. '신품'의 가격 책정이 어떤 식으로 되는지 조금은 알기 때문에 꽤 높은 가격의 제품은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일단 어지간하면 내 구매 리스트에는 포함되지도 않는다. 그런데 반드시 필요하지만 신품이 아니라도 큰 불편없이 중고로 구매가 가능한 경우라면 일단 중고 구매 리스트에는 포함된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노트북도 '리퍼' 제품이다. 퇴직을 하면서 노트북을 반납해서 대체재가 없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집에 오래된 노트북이 있긴 하지만 2012년식으로 활용이 매우 곤란한 사양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래서 '리퍼' 제품의 구매를 결정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선택한 리퍼 제품은 신품의 1/3 가격으로 구매가 가능하고 남에게 내 보일 목적도 아니며 순수하게 집에서 사용할 것이기 때문에 애초에 신품의 구매는 나의 구매 옵션 자체가 될 수도 없었다. 물론 남에게 내보이는 물건이었을지라도 중고로 구매했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실제로 중고로도 물건을 구입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애초에 새로운 '소비'에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이며, 그래서인지 대부분 1차 자체 검열에서 구매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이 거의 다 나는 편이다.
국내에도 엄청난 소비량의 회전을 가능하게 하는 공급망이 갖추어진지 이미 오래 되었다. 그리고 해외 직구라는 추가적인 소비 형태가 생긴지도 상당히 오래 되었다. 지금은 누구나 알고 있는 미국의 아마존은 1995년에 창립이 되었다. 나는 96~97년 즈음에 아마존에서 원서를 구입한 적이 있었다. 국내에는 관련 전문 서적이 없었기 때문에 아마존을 통하여 구매했던 것인데 아마존이 처음 생겼을 그 당시에 나의 첫 구매가 이루어졌었다. 당시 약 30만원 정도의 책 값이 들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때 원서가 아니라 아마존 주식을 샀어야 했다. 결과적으로 그 원서를 통한 자격증 시험은 시기를 놓쳐서 보지도 못했기 때문에 대신 주식을 샀다면 하는 생각을 가끔하는 것이다.
아무튼 지금은 아마존은 말할 것도 없고,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중국의 알리익스프레스나 테무 등의 인터넷 플랫폼을 통하여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종류의 '필수품이라고 하기 어려운 물건들'을 24시간 구매할 수가 있다. 온 세계가 인터넷으로 연결된지 꽤 오래되었고, 그렇게 견고하게 구축된 망을 통해서 온갓 물품들의 거래가 실시간으로 끊임없이 이어진다. 온 세상 사람들은 전 세계에 걸쳐서 거미줄처럼 연결된 유통망에 단단히 결박되어있는 꼴이다. 긍정적인 면도 있겠지만, 그와 동시에 과도한 소비를 초래하는 면도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소비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비 물질적 소비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엔 물질적 소비를 소비라고 말한다. 물건이 만들어지고 사람들은 비용을 지불하고 그 물건을 손에 넣는다. 이것이 가장 간단한 소비의 과정이다. 소비에는 반드시 필요한 물건의 소비도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 소비의 비중이 훨씬 더 많을 것 같다. 우리가 갖고 있는 옷만해도 그렇다. 아무리 후하게 생각해도 지금 가지고 있는 옷의 90%는 없어도 삶을 이어가는데 문제는 없을 것이다. 특별한 여러 목적을 위한 다양한 옷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필요 이상으로 많은 옷을 가지고 있다. 너무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어서 구체적으로 누구라고 이야기하기는 좀 그렇지만, 나도 그런 사람을 한 명 알고 있다. 물론 본인은 부정할 것이다. 아무리 찾아도 입을 만한 옷이 없다는 말을 너무 자주 하니 말이다.
신발은 또 어떤가? 수십켤레의 신발이 신발장에 가득한 경우는 일반적이고, 예외적이긴 하지만 어떤 사람은 신발을 사서 신지도 않고 보관만하는 경우도 있다. 신발을 진열장에 가지런이 정리해 두고 감상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실질적으로 소비를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소비하지 않는 소비 형태이다.
물론 자신의 능력과 형편에 맞는 소비였으니 마땅히 그럴 권리는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걸 뭐라고 비난할 수는 없다. 그냥 내 시선으로는 그렇다는 것이다. 다만 그럴 능력이 되지 않는 사람이 자신의 현실을 망각하고 무작정 따라하지 않게 방송에는 자주 비추어지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소비를 줄이는 것은 자원 낭비를 줄이는 것과 동일하다. 여러 환경 단체에서는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자는 캠페인을 끝도 없이 하지만 효과는 별로 없는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비가 주는 즐거움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런 '하고 싶은 소비'를 하기 위하여 열심히 경제 활동을 '자력으로 해서' 돈을 벌은 사람들은 자신의 소비에 마땅한 권리가 있기도 하다. 그걸 비난할 아무런 근거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비난 받을 이유는 없지만 그렇다고 칭찬받을 일도 아닐 것이다.
자연 보호, 환경 보호 등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것은 아닌데 소비의 시대에 대하여 이야기를 풀어가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다. 특히 '과도한 혹은 불필요한 소비'를 적절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말이 길어진 것 같기도 하다. 만약 지구 환경에 대하여 관심이 있다면 톰 하트만이 쓴 '우리 문명의 마지막 시간들' 이라는 책을 읽어 보기를 권한다. 나의 글과 같이 '카더라' 정도의 얕은 앎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과학적인 접근을 통하여 명백한 근거를 제시하면서 환경 보호에 관련된 깊은 이야기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당신의 '소비력'도 어느정도 줄어들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한다.
소비를 줄이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단순히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달리 말하면
생활 방식을 약간 유연하게 적용하는 것이기도 하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나는 소비 친화적인 사람이 아니다. 물론 내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나도 소비를 하지만 무엇을 소비하더라도 상당히 꼼꼼하게 따지고 들어서 쪼잔한 인상을 줄 수도 있다. 내가 소비를 상당히 철저히 제한하려는 이유는 뭐라고 설명하기가 참 애매하다. 어쩌면 내가 그냥 매우 쪼잔한 사람일 가능성도 높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나의 성장 배경이 아닐까 한다. 부모님, 특히 나의 어머니는 상당히 합리적인 소비자셨다. 일일이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내 기억에 쓸데없이 과소비를 하시는 모습을 본 기억이 전혀 없다. 물론 형편이 풍족하지 않았기 때문에 과소비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기도 했었다. 어머니가 유일하게 그나마 소비에 조금이라도 관대했던 부분은 먹는 것에 대한 것이었다.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가급적 좋은 쌀을 사려고 했고(요즘은 상황이 다르지만, 40~50년전만 해도 쌀의 품질이 밥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컸다), 제철 음식 재료를 사서 가능한 신선한 요리를 하려고 노력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반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닌 영역에 대한 소비는 철저히 통제하셨다. 옷이 바로 그 영역이다. 지금과 달리 40~50년 전에는 옷을 시도 때도 없이 사는 경우는 드물었다. 해지면 기워 입었고, 뜯어지면 꿰메입었다. 아버지 옷이 상하면 멀쩡한 부분만 재단하여 내 옷을 만들어 주셨고, 못입게 된 털 옷은 실을 풀어서 다시 작은 크기로 뜨개질하여 옷을 만들어 주셨다. 이렇게 대체재가 있는 경우는 확실하게 비용을 들이지 않는 선택을 하셨고 그런 성향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게 이식이 된 것 같다. 사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나는 양말도 꿰메어 신었었다. 너무 크게 구멍이 뚤린 경우는 수리 불가이기 때문에 다른 용도로 사용했지만, 작은 구멍이 난 정도는 같은 색의 실로 꿰메어서 신곤했다.
이와 같이 '가능한 선에서 소비 줄이기'는 내 몸에 베인 습관이 되어 버렸다.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지만, 최대한 인스턴트 식품은 소비하지 않으려고 한다. 특히 배달 음식은 전혀 먹지 않는다. 불가피한 경우는 직접 픽업하여 비용을 줄이는 편이다. 배달음식에서 나오는 쓰레기는 재활용도 불편하지만 버리기에 아까울 정도로 견고하게 만들어진 용기인 경우도 많아서 버릴 때마다 죄책감이 들 정도이다. 물론 배달음식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야채의 경우는 반드시 손질되지 않은 것을 구입한다. 한 두 번의 공정을 더 거치면서 야채의 값은 올라간다. 그리고 이미 칼이 닿았기 때문에 추가 포장을 통하여 산소와의 접촉을 막아야 해서 포장재라는 쓰레기가 추가된다. 정확히 말하면 손질된 야채가 비싼 이유는 손질하는 인건비와 추가된 포장재 쓰레기 값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추가된 잠재적 쓰레기를 돈을 주고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공산품의 경우는 일단 어떤 것이든 구입을 하지 않으려는 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집에 있는 물건들도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 상황인데, 거기에서 꼭 더 필요한 물건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아무리 오래된 제품이라고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자주 사용하고 기능상 문제도 없으면 교체하거나 폐기하지 않는다. 기능상 문제가 생기면 일차적으로 수리를 시도한 후에 수리에 실패하면 폐기하되 가급적 대체품을 구매하지 않고 기존에 가지고 있는 제품을 변형 활용하는 방식으로 대처하려고 한다. 채 써는 틀이 없을 경우 그냥 칼로 대신 채를 써는 식이다. 다행히도 나는 칼질을 잘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긴 하다. 아무튼 고장이 나지 않는 이상 교체하지 않는 것이 제일 원칙이다.
소비를 줄이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단순히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달리 말하면 생활 방식을 약간 유연하게 적용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태도는 삶에 대한 나의 관념을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나 한 명이 소비를 줄인다고 하여 자연이 보호되지도 않고 환경 파괴의 속도를 크게 늦출 수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근본적 목적을 가지고 소비를 자발적으로 줄이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내가 소비로부터 별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고 그냥 나의 삶의 태도와 방식이 소비 친화적이 아닐 따름일 것이다.
나처럼 자발적으로 소비를 최소화하는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도 있고, 적당히 남들 하는 만큼 소비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평균치를 훌쩍 뛰어넘는 대량 소비를 끝도 없이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다들 자신만의 삶의 방식이 있으니까 말이다. 누구의 방식이 옳다고 할 수도 없고 틀리다고 할 수도 없을 것 같다. 단지 서로 다름이 있을 뿐. 그러나 너무도 과도하고 불필요한 소비는 어찌되었건 대량의 쓰레기와 환경 오염에 더 큰 기여를 할 것은 자명하다. 그 어느 누구에도 내가 감히 강요할 수는 없기 때문에 조용히 나혼자라도 나의 삶의 방식을 유지하면서 쓰레기 배출을 줄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집에서 조차 재활용 쓰레기는 끝도 없이 나온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내가 바로 지금 살고 있는 시대가 '소비의 시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도 '대량 소비의 시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