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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glecs Jun 30. 2024

인정 효과

 


이름 붙이기는 사실 의미 부여하기와 동일하다.
붙여진 이름에는 의미가 담기고 그 의미는 이름이 붙여진 대상에
천천히 그리고 계속 스며들게 된다. 






Myers-Briggs Type Indicator


 MBTI라는 성격 유형 검사가 있다. 아마도 나이가 지긋한 분이나 너무 어린 아이들을 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번쯤은 했을 것이다. 사람의 지능에 대하여 이야기 할 때 IQ 테스트를 떠올리듯이 성격 유형에 대한 검사를 생각하면 바로 떠오르는 것이 그 MBTI이다. MBTI는 Myers-Briggs Type Indicator의 두문자어이다. 마이어스(Myers)와 브릭스(Briggs)라는 사람이 카를 융(Carl Jung)의 심리 유형론을 기초로 고안한 자기 보고식 성격 유형 검사 도구이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이 지어졌을 것이다. '자기 보고식'이라는 것은 특별한 방식이 아니고 말 그대로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평가한다는 의미이다. MBTI를 검사할 때 모두들 스스로 최대한 솔직하게 자신의 성격을 고려하여 질문에 답했을 것이다. 그게 '자기 보고'를 한 것이다. 


 이 검사는 개인이 선호하는 경향에 따라서 외향(E)과 내향(I), 감각(S)과 직관(N), 사고(T)와 감정(F) 그리고 판단(J)과 인식(P)이라는 지표로 성격을 분석해서 그 사람의 성격 유형을 도출하는데 총 16가지의 성격으로 유형을 분석하고 각 유형별로 독특한 성격적 특성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검사를 통하여 자신의 유형을 확인할 때, 어떤 사람은 '역시'라고 감탄하고 또 어떤 사람은 '이건 좀 아닌데....'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내 주변인들의 반응을 본 나의 경험에 따르면 대부분은 결과로 도출된 자신의 성격 유형에 수긍을 하는 편이었다. 




나의 MBTI


 나의 유형은 INFJ로 나왔고 이 유형의 대표적 특성은 '높은 통찰력으로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며, 공동체의 이익을 중요시한다'이다. 통찰력이 높고 타인에게 영감을 주고 심지어 공동체의 이익까지 중요시한다는 칭찬으로 도배가 된 검사 결과는 내 입장에서 그것을 수긍하는 것은 당연하고 자존감마저 잔뜩 올려 주는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어떻게 읽어도 좋은 내용이기 때문에 이런 인정 혹은 평가 결과에 대하여 동의하지 않기는 어려울 것 같다. 심지어 서양 철학의 대가인 플라톤도 INFJ이고, 넬슨 만델라, 마틴 루터 킹, 괴테, 간디, 단테, 도스토에프스키도 INFJ라고 하니 내가 그들과 같은 유형이라는 결과는 그 어떤 칭찬 보다도 더 자존감을 올려줄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평소 생각이나 태도를 보면 F 보다는 T가 가깝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INFJ라고 하니 딸아이와 아내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다시 수차례 테스트를 해보니 역시 F 보다는 T라는 결과가 나왔다. 나는 INTJ 였던 것이다. INTJ는 전략가 유형이다. 개척자 성향이고, 지식에 대한 갈망이 있으며, 단 사교 능력이 부족하다. 그리고 삶을 게임처럼 즐긴다고 한다. 이렇게 적어 놓고 보니 이 또한 나의 특성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심지어 INTJ 유형의 유명인으로 니체, 넬슨 만델라, 일론 머스크 그리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있다니 잠시나마 그들과 동질감을 느끼기도 한다. 나의 유형에 대한 결과 조차 의심하고 다시 여러번 해서 최종적인 결과를 도출한 행태만 봐도 INTJ가 맞긴 맞는 것 같다. 


 MBTI 검사 결과에 따른 나머지 유형들도 대부분 긍정적 특성에 대하여 기술되어 있다. 그리고 같은 유형의 유명인을 거론하며 우리 모두의 자존감을 올려 준다. 그들의 유형은 의지가 강하고 독립적이며, 온화하고 겸손하고, 성실하고 이해심 많고, 지적 호기심이 높고, 친절하고 동정심이 많으며, 사교적이고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고, 철저한 준비를 하고 통솔력이 있으며 단호하다라는 내용으로 설명된다. 이러니 사람들이 MBTI 결과에 대하여 많이 동의하는 이유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설명된 유형별 특성이 하나같이 좋은 내용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MBTI는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공인된 자격을 주는 검사는 아니다. MBTI는 개인이 겪어온 삶의 과정을 통하여 얻어진 성격의 일부를 보여줄 뿐이라고 생각한다. 한 인간이 어떤 식으로 적응해서 지금에 이르렀는지를 약간은 흐린 거울로 비추어 주는 것이다. 인간 중에는 의지가 약하고 의존적이며, 사납고 오만하며, 불성실하고 속이 매우 좁아서 이해심이 떨어지고, 배우려는 의지도 없고, 불친절하고 이기심으로 가득하고, 폐쇄적이며 타인의 의견을 무시하고, 매사 대충대충 하고 제멋대로 독단적으로 행동하고 우유부단한 사람도 있는데 그런 부분은 거의 표현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MBTI는 성격의 일부만을 보여줄 뿐이라고 한 것이다. MBTI대로 인간이 구분되고 설명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인간의 성격과 성향은 16가지가 아니라 좀 과장하면 80억 가지는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참고로 2024년 현재 지구상에는 약 80억 명이 살고 있다. 




이름 붙이기


 MBTI가 만들어진 이유는 Myers와 Briggs만이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겠지만, 이름짓기 좋아하고 어떤 물질이나 현상에 대하여 의미를 부여하여 규정하기 좋아하는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Myers와 Briggs가 그들의 학문적 성취를 드러내 보이기 위하여 활용한 수단이었을 뿐일지도 모른다. 학자들은 뭔가를 계속 밝혀 내고 이름 붙이기를 좋아하지 않는가? 아무튼 인간은 어떤 것을 인지하면 거기에 이름 붙이기를 좋아한다. 이름 붙여지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이 아직 존재를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인간은 심지어 본적도 없고 따라서 알지도 못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름을 붙인다. 인간은 우주 물질의 85%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물질의 가설상의 형태를 암흑물질이라고 칭하기도 하지 않았나? 알지도 못하는 물질에도 이름을 붙인 것이다. 이와같은 끝없는 호기심을 바탕으로 문명이 발전해 왔기 때문에 인간의 이런 성향을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단지 나는 인간이 모든 것에 이름 붙이기를 좋아 한다는 사실을 말할 뿐이다. 


 누군가에게 이름을 붙이면 그 이름대로 그의 사고와 행동이 변하게 되기도 한다. 계속 바보라고 하면 멀쩡한 사람도 바보가 된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계속 칭찬하고 격려하고 뛰어난 사람이라고 인정해 주면 그들의 상당수는 뛰어난 사람 혹은 최소한 평균 이상의 더 나은 사람이 된다. 이런 것들은 실제로 연구 결과로 밝혀진 내용이기도 하다. 이름 붙이기는 사실 의미 부여하기와 동일하다. 붙여진 이름에는 의미가 담기고 그 의미는 이름이 붙여진 대상에 천천히 그리고 계속 스며들게 된다. 


 이와같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이름 붙이기는 일종의 인정효과이며 그 힘은 상당히 크게 발휘된다. 우리는 자신의 노력과 능력을 인정 받으면 큰 기쁨과 만족을 느끼게 되고 자아 존중감 또한 올라간다. 그리고 계속해서 자신이 인정 받은 모습으로 남기 위하여 부단한 노력을 한다. 훌륭한 사람이라고 진정으로 인정 받으면 그런 사람이 되고자 노력한다. 정말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고 인정 받으면 그렇게 되기 위하여 더 노력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적 평가(긍정적인 내용으로 이름이 붙여지면)는 이와 같이 엄청난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말도 안되는 칭찬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칭찬할 거리를 찾아서 긍정성을 심어 줘야 그 긍정성이 싹을 틔울 수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이름을 붙이는 행위는 그 이름으로 불려지는 사람에게는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우리가 MBTI 검사를 통해서 어떤 유형으로 규정되었다면
그것은 어쩌면 조금 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우리의 희망이 반영된 결과일지도 모른다.








MBTI의 긍정적 인정 효과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환경에 적응하면서 삶을 살아간다. 따라서 당연히 인간도 자신의 환경에 적응해 가면서 삶을 살아간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우리가 삶을 살아 오면서 오랜 시간 동안 노출된 개인적 그리고 사회적 환경에서 배양된 모습일 것이다. 그리고 MBTI를 통해서 확인된 성향은 그런 모습 중에서 일부분만을 비추어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 인간이 갖는 심리적 혹은 성격적 다양성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으니 말이다. 


 우리가 MBTI 검사를 통해서 어떤 유형으로 규정되었다면 그것은 어쩌면 조금 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우리의 희망이 반영된 결과일지도 모른다. MBTI는 일종의 자기 인정의 과정이기도 하다.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평가하여 질문을 던지고 그 결과 값을 MBTI라는 분석 툴을 사용하여 도출되도록 한 것이니 결국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어떤 형태의 인간으로 인정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가 인정 받은 바로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앞으로의 삶을 꾸려 나가는 것이 지금 해야 할 일일지도 모른다. 즉 정말 자신의 성향으로 밝혀진 대로 행하고 있는지를 돌아 봐야 한다는 말이다. 


 MBTI가 나를 어떤 사람으로 규정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100% 그렇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단지 그런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는 쪽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부정적으로 해석하면 아직 완벽하게 그런 사람은 아니라고도 있겠지만, 반대로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성격의 상당 부분이 그런 사람에 가깝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도출되었다고 있을 것이다. 나의 유형으로 다시 도출된 INTJ는 '분석적이고 야심차고 지식을 추구하며 논리적이고 문제를 해결하는데 집중하는 논리적인 사상가' 였다. 따라서 어쩌면 내가 아직 완벽하게 그런 사람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되고 싶은 희망이 일정 부분 반영된 '자기 보고'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내게는 이 성격 유형 검사를 통하여 인정 받은 바로 그런 사람이 되는 일이 남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MBTI는 16가지 성격 유형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대부분 긍정적인 인정을 해 준다. MBTI는 어쩌면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진 매우 유효한 '인정 효과'의 한 형태일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내가 만약 MBTI가 규정해준 나의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꽤 만족스러울 것 같다. 물론 선택은 나의 몫이겠지만 말이다. MBTI는 적당한 수준의 나르시시즘을 허용하는 수단일지도 모른다. 나르시시즘은 과하면 독이지만 전혀 없어도 안된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지 않으면 자존감을 잃게 되고 그 결과는 결코 아름답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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