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도 우리 한반도에는 이상 기후 현상이 극심했다. 오랜 기간 비가 오지 않다가 갑자기 엄청난 폭우를 퍼붓기도 했고 때이른 더위 등과 같은 극심한 기온 변화로 온 국민이 불편과 고통을 겪었다. 특히 길어진 봄 가뭄으로 전국 곳곳에 다수의 산불이 발생했고 농작물을 재배하는 사람들은 물 부족에 신음했다. 간혹 매스컴을 통해서 봤던 초대형 산불은 그렇지 않아도 가뭄으로 타들어가던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두렵고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상 기후 특히 이상 고온 현상은 현재 지구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다. 중국, 동남아시아 등에서 연일 40도 혹은 50도를 넘는 이상 고온이 기록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앓고 있다는 소식도 매스컴을 통해서 자주 들린다. 이런 경우는 그래도 사람이 받는 고통이니 매스컴에라도 나왔겠지만 그 외에 자연에서 스스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야생 동물들이나 식물들도 마찬가지로 큰 고통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나날이 더워지는 기온의 변화에 대하여 그 이유도 전혀 짐작하지 못한채 어리둥절한 채로 마른 땅바닥으로 힘없이 쓰러지고 있을 뿐일지도 모른다. 이상 고온의 주원인 제공자이자 범인인 인간은 인간 세상에서 쓰러지고 오로지 피해자일 뿐인 동물과 식물은 그들의 세상에서 쓰러지고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이 고통받고 있는 것이다.
정상 범위를 벗어난 이상 고온은 이렇게 모든 생명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지만 그에 못지않게 두려운 일은 이 문제가 무생물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고온으로 도로가 녹아 내리고 자동차의 타이어가 밀가루 반죽처럼 포장도로위로 흘러 내린다. 갖가지 안내문을 담은 표지판이 녹아서 구부러지며, 최첨단 전기차의 전비를 대폭 떨어뜨리고 방전까지 시키기도 한다. 전기차는 영하의 저온에서만 효율이 떨어지는 줄 알았는데 고온에서는 더 큰 문제를 일으킨다고 한다. 멀쩡하게 잘 되던 자동차의 네비게이션이 부팅이 되지 않기도 한다. 여름철 뜨거운 날씨에 야외에 주차된 자동차의 실내 온도는 심한 경우 최대 100도를 넘기도 하는데 이런 고온에 장시간 차가 방치되면 주요 전자 부품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느닷없이 차의 전자기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일단 그늘진 곳으로 차를 옮겨서 차내부의 온도는 낮춘 다음에 다시 작동해 보길 권한다. 물론 더 좋은 것은 뙤약볓에 차를 방치할 경우 아주 조금이라도 창문을 열어 두는 것이고 더 좋은 것은 차량 앞 유리에 햇빛가리개를 설치하여 직사 광선을 최대한 막아내는 것이다. 이 모든 일들이 이상 고온이 없었다면 하지도 않았을 일들이다.
이상 기후가 관측된지는 사실 오래 되었다. 그러나 매년 가랑비에 옷 젓듯이 미세하게 강도를 높여가서 사람들은 그 위험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미지근한 물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개구리처럼 말이다. 임계점을 넘어가면 비록 고통이 거의 없긴 하겠지만 개구리는 죽을 것이다. 인간들도 마찬가지로 이상 기후가 임계점을 넘어서면 개구리하고 비슷한 꼴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 같다.
우리 나라는 북반구의 중위도 지역에 속하기 때문에 사계절이 분명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 변화가 매우 분명한 편이기 때문에 각 계절에 맞는 옷이 필요하고 음식도 마찬가지로 계절별로 다양한 음식을 즐길 수 있다. 우리 나라의 식문화가 다채로운 것은 단연코 사계절의 덕이다. 물론 삼면이 바다인 점, 국토의 70% 이상이 산인 점 그리고 비교적 땅도 농사를 짓기에 비옥하고 물도 풍부한 점도 빠질 수 없는 이유일 것이다. 지하 자원이 없는 대신 먹을 것이라도 실컷 먹으라는 신의 뜻일지도 모르겠다.
거주 환경 또한 계절이 고려되어야만 한다. 추운 계절이 없는 나라에서는 패딩과 같은 두꺼운 옷을 입을 필요가 없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재료가 많이 들어가는 제품은 비싸기 마련이다. 옷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더운 나라에서는 의복에 대한 지출이 추운 계절을 보내야만 하는 나라보다 적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추운 계절이 긴 나라는 더운 날씨에 입어야 할 옷이 필요 없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처럼 덥고, 춥고, 선선한 모든 종류의 날씨를 겪어야 하는 곳에 사는 사람들은 모든 경우에 대응하는 옷이 필요하다. 심지어 춘추복과 같이 간절기에 맞는 옷을 따로 입기도 한다. 그래서 최소한 대부분의는 경우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렇게 사계절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종류의 옷을 가지고 있다. 신발도 마찬가지고 모자나 장갑도 계절별로 다르며 심지어 양말도 겨울 양말이 있지 않는가?
주거 환경에 있어서도 추위를 최대한 막기 위하여 단열 보강제가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우리나라의 건축비가 더운 지역의 건축비보다 비쌀 수 밖에 없다. 특히 우리 나라의 경우는 바닥 난방 시설이 온 집안에 반드시 추가되어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특히 더 많이 추가된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최근에 천정부지로 솟아 오른 아파트 평당 분양가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터무니 없이 왜곡된 지가(地價)와 인건비 그리고 무엇보다도 절대로 양보하지 않는 건설사의 목표 수익률이 가장 큰 원가 증가 요소일 것이다.
아무튼 우리나라 사람들은 각각 특별한 아름다움과 즐길 거리를 제공해 주는 사계절을 만끽할 수 있는 큰 자연의 혜택을 보고 있지만 잘 생각해 보면 결코 우리가 그런 행운을 그냥 누리는 것은 아니다. 사계절에 고유의 장점이 있듯이 그 반대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위에 언급한 물질적 측면의 부담 뿐만 아니라 각각의 계절별로 견뎌내야 하는 쉽지 않은 자연적 조건도 있다.
봄에는 정기적으로 황사를 겪어야 하고 봄 내내 온 하늘을 덮는 꽃가루에도 시달려야 한다. 알러지가 있는 사람은 외출을 피할 정도로 대기 중에서 눈처럼 휘날리는 꽃가루는 정말 괴롭다. 겨울에 내리는 눈은 땅이나 옷에 떨어지면 녹기라도 하지만 꽃가루는 자기들끼리 덩어리로 뭉쳐서 공중을 떠나니면서 온 몸에 내려 앉고 눈코입에까지 달려든다. 그리고 봄의 경우 낮과 밤의 기온 차가 커서 적당한 옷을 고르기도 어렵다. 아침 나절의 선선함에 속아서 단단히 입고 외출을 했다가 하루 종일 더워서 불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름에는 갑자기 온도가 올라가는 고온 현상에 시달려야 한다. 해가 뜨면 제대로 외부 활동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온 대기는 물론 시멘트 바닥까지 끓어 오른다. 그리고 여름에 자주 발생하는 폭우 그리고 매년 꽤 많은 수가 발생하는 늦여름 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태풍도 겪어야 한다. 많은 재산 피해와 인명 피해는 거의 매해 발생한다.
무더위와 동반 등장하는 불청객인 모기와 기타 벌레들도 견뎌야 한다. 그리고 그 무더위를 물리치기 위하여 가동하는 에어컨 전기료도 부담해야 하고 더위를 물리치고 시원함을 과도하게 즐기다가 냉방병에 걸리기도 한다. 이렇게 변화 무쌍한 계절의 변덕에 적응하고 살아 남는 것은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가을이 오면 풍성함을 즐기기도 하지만 유독 불안정한 날씨도 겪어야 한다. 갑작스러운 비나 세찬 바람이 자주 부는 계절이 바로 가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십년간 온 국민이 노력하여 녹화 사업에 동참한 결과 온 산지는 물론 도심의 공원이나 길에도 수 많은 나무가 심어져 있기 때문에 그로부터 발생하는 나뭇잎 쓰레기도 골치거리다. 강력한 청소용 송풍기를 어깨어 매고 다니면서 길가에 떨어져서 쓰레기가 되어버린 나뭇잎을 처리하는 분들을 이 시기에 자주 만나게 된다.
겨울은 또 어떤가? 일단 날씨가 추워져서 옷을 잔뜩 껴입어야 한다. 추위로 외출도 불편하고 눈이 와서 길이 빙판길이 되면 언제 뒤로 자빠질지 모르기 때문에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특히 노인의 경우 겨울에 사망률이 올라가는데 추위에 따른 체온 저하로 혈류 흐름이 느려지면서 뇌졸중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고, 낙상 사고도 많이 일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겨울은 일교차가 더욱 심해지기 때문에 사람들은 보통 몸 컨디션을 정상적으로 유지하기가 어렵고 노인의 경우 더욱 어렵기 때문에 겨울을 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분들이 더 많아진다. 그리고 가혹한 겨울을 나기 위하여 난방을 풀가동할 수 밖에 없고 이것은 경제적인 부담을 초래하기도 한다. 여름에는 전기세 그리고 겨울에는 가스비 혹은 기름값이 봄과 가을에 비하여 몇 배로 증가한다.
사계절은 그냥 즐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견뎌야만 하는 부분도 꽤 많다. 우리가 워낙 오랜 시간 동안 몸으로 겪어 왔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면서 지낼 뿐이지, 하나 하나 따져보면 결고 견뎌내기가 쉽지 많은 않은 조건이 바로 사계절이기도 하다. 우리가 그냥 공짜로 아름다운 사계절을 즐기고만 있지는 않은 것이다.
모든 것은 돌고 돈다고 한다. 돈도 그래서 돈이라고 했다고 들었다. 운도 있다가 없기도 하고 또 다시 생기기도 한다. 불행도 찾아왔다가 어느 순간에 없어져 버리고 만다. 물론 행운도 그렇다. 영원한 것은 없다. 계속 모든 현상은 변한다. 우주가 그 생성의 초기부터 지금까지 계속 팽창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팽창을 지속하면서 변해가듯이 우리도 삶의 전체 기간 동안 갖가지 변화를 온 몸으로 받아 들이면서 존재해야만 한다.
이런 면에서 사계절의 변화를 몸소 평생 느낄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신이 내린 제일 큰 혜택일지도 모르겠다. 사계절의 변화를 겪으면서 자연이 늘 변한다는 이치를 누가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니까 말이다. 쇠도 담금질을 통하여 더욱 더 강해지듯이 사람 또한 극과 극을 달리는 환경을 오가면서 더 강해지는 것이 아닐까? 사실 그동안 극과 극을 달리는 자연 환경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치열한 삶의 경쟁까지 뚫고 살아온 우리 나라 사람들이 세계 곳곳에 진출하여 꽤 좋은 성과를 내면서 자리를 잡고 있다는 이야기는 수 없이 들었을 것이다. 아마도 변화에 특별히 잘 적응하는 유연성과 기민함 그리고 그 외에도 많은 경쟁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변화를 많이 겪으면 사람은 조금이라도 창의적이 될 수 밖에 없다. 봄에 살아가는 방식과 여름에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고, 그것은 또 가을 그리고 겨울의 그것과 다르기도 하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그냥 살아 내는 것도 4가지 서로 다른 방식을 통해야만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창의적이지 않을 수가 없다. 혹한의 겨울을 최저 비용으로 최고로 효율적인 난방을 하기 위해서는 온돌을 발명했다. 더운 여름 한 낮의 강한 해빛을 최대한 집에 들이지 않기 위하여 처마의 각도를 결정했다. 한여름의 햇빛은 수직으로 내려 꽂히지만 처마의 돌출된 각도가 뜨거운 빛이 마루에 도달하는 것을 막아주면서 실내 온도를 최대한 낮게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옥은 그냥 아름다움 만을 고려한 디자인이 아니다.
직장에서도 다양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결국 더 높은 곳으로 향하는 경우가 많다. 변화된 환경에 자주 노출되면서 그만큼 창의력도 높아졌고 문제 해결력도 증가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특정한 한 부서에서만 오래도록 일한 사람은 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 노벨상을 타기 위하여 30년간 한 가지 주제만 연구하는 학자라면 모를까 일반적인 직장인이라면 다양한 부서에서 그만큼 다양한 경험을 할 필요가 있다. 인생에서 사계절을 겪으면서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이 단련되듯이 다양한 부서를 겪으면 그 이상으로 다양한 전문성과 다채로운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대중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색깔이 있는 골프볼을 제일 처음 생각해내서 사용한 사람은 (고)정주영 회장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실제로 상품화 한 사람은 따로 있을 것이다. 현대에서 골프공 사업을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정회장은 눈이 많이 왔을 때 (고)신격호 회장과 골프 약속이 있었고, 그 때 신회장은 골프를 취소하려고 했고 정회장은 눈이 흰색이니 공에 빨간색을 칠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공에 색을 칠해서 라운드를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정회장이 사계절을 겪지 않았다면 생각하지도 않았을 아이디어다.
오늘은 본격적인 여름을 알리는 7월의 첫 날이다. 6월도 더웠지만 7월 그리고 8월은 더 더울지도 모른다. 매년 겪고 있는 무더위와 장마를 또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삶을 통과해 가면서 맞는 이번 여름은 덥고 습하고 불편하긴 하지만 우리에게 또 하나의 변화를 겪게 하면서 우리를 담금질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높은 온도로 강하게 달궈졌다가 선선한 가을이 오면 차가운 물속으로 또 내 던져질 것이다. 그런 식으로 우리가 강해지고 더 창의적이 될 수 있다면 급격한 계절의 변화는 기꺼이 감수해야 할 것 같다. 사실 이상 기온으로 갈수록 위기감이 증가하고 있지만, 개인이 걱정한다고 그걸 단기간에 해결할 수는 없으니 현실적인 해결 방식은 가능한 위험은 회피하면서 최대한 계절의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뜨거운 햇빛과 더운 열기는 우리를 강하게 그리고 더 창의적으로 만들어 주는 신의 손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