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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glecs Jul 04. 2024

불편한 진실

사실 불편한 상태가 정상이다





 나를 끌어 당기는 힘


 지구의 중력을 거부할 수 없는 몸을 가지고 있는 한 우리는 죽는 날까지 육체의 무게를 느껴야만 한다. 우리가 살아 있는 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실질적으로 느낄 수 있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중력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력이 없으면 우리는 우리 몸의 무게를 느낄 수도 없고 살짝만 점프를 뛰어도 지구 밖으로 튕겨져 나가 버릴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를 끌어 당기는 힘인 중력에 반하는 행위를 하지 않으면 일어설 수도 없고 걸을 수도 없다. 물론 우리가 땅덩어리에 붙어 있기 위해서는 중력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계속 에너지를 소모하게 하는 불편한 저항 요소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나이가 어리고 에너지가 넘칠 때는 비교적 중력의 영향을 느낀다. 그런 시기에는 에너지가 충만하고 과도한 체중이 아닌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고 몸에 불필요한 살이 더해지면 과거에는 느끼지 못하는 중력의 위력을 새삼 느끼게 된다. 


 우리가 갈수록 몸이 무거워지고 가볍게 달리기가 어려운 것은 중력의 끌어당김에 반한 에너지를 이끌어 내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력은 과거나 지금이나 전혀 변하지 않았다. 늘 같은 힘으로 우리를 잡아 당기고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탄력을 잃어가는 우리 피부는 늘 그대로였던 중력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아래처지고 만다. 중력은 그렇게 우리를 질척대듯이 계속 밑으로 끌어 내리고 잡아 당긴다. 




삶 속의 중력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중력말고도 다양한 다른 저항 요소를 뚫고 나가야 한다. 마치 중력에 반하여 발걸음을 힘들게 옮기면서 걸어가듯이 말이다. 원하는 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시험이라는 불편한 상황을 통과해야 한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시험은 아주 지독한 삶의 저항 요소이다. 독립된 삶을 이어가기 위하여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서도 역시 같은 과정을 넘어서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 과정도 결코 쉽지만은 않다. 다양한 저항 요소를 겪은 후에야 결혼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결혼을 한 사람이라면 잘 알겠지만 서로 알지 못하는 두 사람이 만나서 평생을 살기로 합의하는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인생의 상당 기간을 보내는 일터에서 겪게 되는 불편함 혹은 저항 요소는 매우 강력하다. 더 좋은 보수를 받고 더 인정 받기 위하여 계속 동료 혹은 선후배들과 경쟁해야 한다. 지극히 당연한 상황이지만 이런 상황 또한 삶의 저항 요소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이런 불편함을 통과하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가거나 성장할 수 없다. 


 우리의 삶은 이와 같이 끝없는 저항 요소를 통과하면서 진행된다. 모든 장애물을 뚫고 나가야만 성공에 이른다는 뜻은 아니다. 그리고 모든 장애물을 다 뚫고 나갈 수도 없다. 인생에서 실패를 겪지 않을 도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저 우리가 삶을 살아갈 때 다양한 저항 요소가 존재함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요소들의 불가피성을 인식하고 인정할 때 비로서 도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내게만 왜 그런 일이 생기냐는 식으로 삶에서 당신이 겪는 '저항 요소'를 인식한다면 그것에 맞서기도 전에 힘을 잃게 된다. 저항 요소라고 이름 붙여 놓은 것은 그것에 저항하라는 뜻이지 포기하라는 뜻이 아니다. 우리가 이렇게 삶 속에서 만날 수 밖에 없는 저항 요소는 마치 중력과도 같이 회피가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그 힘에 눌려서 꼼짝달싹하지 못해서는 안되고 그걸 견디고 이겨내야 한다.  




인식의 전환


 우리는 보통 하기 싫은 것을 할 때 저항감이나 불편함을 느낀다. 억지로 한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하고 싶은 것을 할 때라도 언제나 편안하고 아무런 힘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스포츠를 예로 들면 가령 골프를 즐기는 경우 더 좋은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꽤 오랜 기간 동안 연습을 해야만 한다. 최소한 몇 개월 동안 계속 같은 자세를 최대한 유지하면서 힘차게 공을 쳐야만 한다. 그렇게 열심히 해도 가만히 놓여있는 공을 제대로 치기는 결코 쉽지 않다. 통상 이 과정에서 흥미를 잃고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고 싶은 것, 즉 즐기기 위한 활동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통과해야만 하는 일종의 '불편한 저항 요소'를 견디지 못한 것이다. 반면 그 과정을 성공적으로 통과한 사람들은 골프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반복하여 지루하고 재미 없는 연습 과정을 지속할 수 있는 동기를 얻게 된다. 불편한 저항 요소를 뚫고 즐기는 단계에 올라선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하기 싫은 것을 할 때 그리고 하고 싶은 것을 할 때도 불편함과 저항이라는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보통 하기 싫은 것을 할 때는 불편한 감정에 휩싸이는 경우가 많고 하고 싶은 것을 할 때는 비교적 부담없이 편안하게 느끼는 경우가 많다. 둘 다 어떤 것을 이루기 위하여 불편한 상황 혹은 어떤 저항에 대항하기 위한 행위를 하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말이다. 불편함과 저항이라는 공통점을 가지는데 그걸 받아들이는 관점은 완전히 반대인 것이다. 결국 뭔가를 이루어 내겠다는 관점에서 목적이 같은 행위를 하면서 하나는 하기 싫고 부담이 되지만 다른 하나는 즐기면서 결과에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불편함과 저항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데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피해서도 안된다. 불편함과 저항은 중력과도 같다. 지구위에서 살려면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힘이 바로 중력이다. 그냥 지구 위에서의 정상적인 상태라는 말이다. 불편함과 저항은 따라서 우리가 삶을 통과해 가면서 반드시 수용해야만 하는 정상적인 상태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불편함과 저항에 위축되거나 부담을 갖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이유이다. 사실 우리는 매 순간을 살면서 불편함과 저항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고 대응하고 있다. 그것을 잘 인식하지 못할 따름이다. 


 자전거를 타려면 패달을 밟아야 한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운동 에너지를 만들지 않으면 자전거는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육중한 자전거의 몸체와 사람의 몸이 견고하게 중력에 붙들려 있는데 그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우리는 힘차게 패달을 밟는 것이다. 자전거는 그냥 쉽게 타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조금만 깊게 들여다 보면 중력과의 처절한 경쟁이기도 하다. 


 저항은 일종의 불편함이다. 중력과도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편함은 일종의 변화이기도 하다. A 라는 지점에서 B 라는 지점으로 위치가 변하는 것이다. 우리를 육체적 그리고 정신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에너지 투입이 불가피하다. 예로들은 자전거 타기의 경우 운동 에너지의 투입이 없이는 위치를 변화시킬 수 없다. 그리고 정신적인 진전을 원한다면 새로운 정보를 끊임없이 입력해야만 그에 상응하는 새로운 앎을 얻게 된다. 새로운 앎이 없이는 정신적인 혹은 지적인 진전은 이루어질 수 없다. 자전거 타기나 지적인 활동은 우리가 평소에 하는 행위이다. 그 순간 우리가 한 행위는 불편함과 저항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대응한 것이다. 이와같이 우리가 평소에 거의 모든 활동에서 이미 '수용하고 대응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이와 같이 불편함과 저항은 변화이며, 인간은 계속 변화해가면서 삶을 살아가야 한다. 변하지 않고 무저항 상태로 머물면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냥 중력의 힘에 짖눌릴 뿐일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우리 자신을 계속 앞으로 밀고 나가는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수 많은 사람들이 시도하는 빼는 행위불편함과 저항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성공할 없다. 반대로 살을 찌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마른 사람들에게는 살을 찌우는 것이 정말 과제다. 결국 삶의 모든 순간은 변화의 한 장면일 뿐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서 계속 저항과 불편함을 겪게되고 그 속에서 우리는 저항을 견딜 있는 힘을 기를 수 있게 된다. 


 더 성장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스스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불편한 상황을 선택해서 들어가야만 한다. 이것은 변화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도전이 없이는 변화가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단순히 그냥 생각만 해서는 안된다. 생각은 생각일 뿐이기 때문이다. 뛰기로 했으면 일단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조금 더 확실히 표현하자면 '억지로'라도 해야 한다. 스스로 강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지구의 중력은 우리를 변함없이 같은 힘으로 강하게 붙들고 있다.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몸을 일으키는 것이 힘이 든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탓하기 보다는 그런 불편한 삶의 저항 요소에 적극적으로 대면하는 것이 옳은 선택일 것이다. 중력은 이미 우리의 삶에 주어진 요소이고 변할 수 없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지 못한다고 고민하는 것 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을 것이다. 


 바꿀 수 있는 것은 지구의 중력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다. 그리고 나를 바꾸는 것, 즉 변화에 이르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어떤 식으로든 강제하는 것이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지구의 중력이 부담된다고 달로 갈 수는 없지 않은가? 달은 지구 중력의 1/6에 불과하다. 50cm의 점프가 가능한 사람이라면 3m를 뛸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대신 숨은 쉬지 말아야 한다. 지금 숨을 쉴 수 있는 지구에서 중력을 받으면서 버티고 그걸 이겨내는 것이 훨씬 더 쉬울 것 같다. 지금 당신이 겪고 있을 그 어떤 불편한 상황도 단순한 한 '삶의 저항 요소'일 뿐이라는 인식이 필요할 때다. 이런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질 때 자신을 더 적극적으로 변화에 이르게 몰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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