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사차선 도로를 건너면 작은 비포장 도로가 나온다. 아파트에서 시작된 온통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깔끔하게 포장된 길은 거기에서 끝이 난다. 그리고 '둑실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작은 길이 시작된다. 그 길을 약 1km 정도 따라가면 경인 운하 뱃길 산책로까지 걸어서 갈 수가 있다. 획일적으로 지어 놓은 아파트 단지에서 산책하는 것 보다는 둑실길처럼 구부러지고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서 산책을 하면 어쩐지 더 마음이 편해지고 진짜 산책을 하는 느낌이 든다. 길의 우측에 펼쳐진 논과 밭 그리고 좌측의 접근하기 어려울 정도로 나무와 풀이 꽉 들어차 있는 야트막한 야산을 끼고 길을 걷자면 한동안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편해진다.
물론 곧 등장하는 오리집이나 토종닭집이 나오면 이내 시선이 그쪽으로 옮겨지면서 나도 모르게 업소 유리에 부착되어 있는 메뉴를 읽게 된다. 그런 식당들은 둑실길을 걷는 내게는 산책의 여유로움을 느끼는 정겨운 촌 풍경이겠지만 오리와 닭들에게는 아우슈비츠와 다를바 없을 것이다. 예전에는 직접 업소에서 토종닭을 키우고 도축까지 해서 판매를 했겠지만 이젠 쉽게 밖에서 사올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껄끄러운 수고는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어떤 생명이든 그것을 끊어야 하는 사람은 마음이 편할 수가 없을 테니 말이다. 기계적으로 닭의 목을 비틀고 쳤던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 그자 또한 깊은 마음 한 구석에 새겨진 영원한 찜찜함을 없앨 수는 없었을 것이다.
사실 먹고 살기 위하여 불가피한 선택을 한 것이라면 토종닭의 목을 비튼 것은 단순한 약육강식의 삶의 현장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야말로 먹을 것이 없어서 식용으로 키우던 닭을 잡아서 먹는 것 말이다. 그러나 토종닭을 잡아서 부가가치를 덧입혀서 높은 가격에 팔아서 더 많은 돈을 받는 것은 약육강식과는 거리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식당도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은 맞지만 엄밀한 의미에서의 약육강식, 즉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죽기 때문에 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둑실길을 따라가면 만나게 되는 경인 운하 뱃길 산책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둑실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왕복1차선 도로를 건너야 한다. 나는 그 길을 건너서 경인 운하 산책로까지 가서 5km 정도를 더 걷고 집으로 돌아가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왕복1차선 도로를 건너지 않고 그냥 그 도로를 따라서 5백미터 정도만 걷고 되돌아 오던가 아니면 도로 좌측에 붙어 있는 야산으로 이어지는 좁은 산 길을 통하여 짧은 산행을 하고 돌아가곤 한다. 이렇게 총 7~8km 정도 되는 거리를 이리 저리 걷다가 보면 우연치 않게 진짜 약육강식의 현장을 보는 경우도 있다.
분명히 산고양이든 아니면 그 어떤 산짐승이 저질러 놓은 흔적 말이다. 어떤 이름의 생명체였는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정도로 산산조각이 난 상태로 깃털만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먹을 만한 살점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강자에게 철저히 뜯어 먹힌 새의 흔적이 그것이다. 그 산짐승은 철저하게 오로지 살기 위해서 생명을 취하였을 것이다. 배가 부른 짐승은 어지간하면 공격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로지 배가 고픈 짐승만이 다른 생명을 공격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의 생명을 잃을 위험이 커지므로 그런 살육은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일 뿐 더 많은 고기와 먹을 것을 비축하기 위함은 아니다.
경인 아라뱃길가의 야산에 있는 좁은 길은 내게는 둑실길과 같은 산책길이었지만 어떤 생명에게는 황천길이었고 또 어떤 동물에게는 살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생명을 취하는 길이었을 것이다. 이곳은 바로 약육강식의 현장이기도 한 것이다.
인간은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정착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규모 있는 농사를 짓게 되면 먹을 것 이상의 작물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거처를 계속 이동하면서 먹을 것을 찾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정착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옛날에 대부분의 몽골인들이 천막을 들고 이동 생활을 한 것은 철저하게 먹을 것을 찾기 위함이었다. 그들이 키우는 가축들이 먹을 풀 말이다. 그 짐승들이 없으면 그들의 삶 또한 위태로워지기 때문에 계속 시기별로 장소를 이동해 가면서 가축들을 먹이고 그들은 그 가축을 먹었을 것이다.
반면 작물의 농사가 가능한 곳에 사는 사람들은 더 이상 이동하지 않고 한 곳에서 정착하여 안정적인 삶을 살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먹고 남은 작물들은 자연스럽게 보관하게 되면서 당장의 생존에는 관계가 없더라도 그것들을 일종의 재산 형식으로 쌓아 두는 일에 익숙해지게 된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작물을 통한 부의 축적의 시작은 아마도 대규모 경작이 시작된 시점과 거의 비슷할 것이다. 그때 부의 축적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동시에 사람들간 부의 불균형이 발생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지금도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세계 곳곳에 존재한다. 먹고 사는 문제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농업은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하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거대한 기업과도 같이 엄청난 규모의 영농을 하는 곳은 물론이고 개인이 재배하고 수확 그리고 판매를 하는 소규모 영농도 모두 부의 축적을 위한 활동이다. 자신들의 생명 유지를 위한 '먹고 살기' 때문에 농사를 짓는 시대는 아주 오래 전에 끝났다.
이런 부의 축적은 오로지 인간만이 집요하게 추구하는 활동이다. 그 어떤 동식물도 부를 축적하지 않는다. 그래서 동물이고 식물일 것이다. 기껏해야 곧 다가올 겨울을 나기 위하여 영양분을 몸 속에 비축하거나 도토리 몇 알을 땅속에 숨겨 놓는 정도이다. 그러나 인간의 축적 활동, 특히 부의 축적 활동은 그 맛을 알게 되는 순간에 시작되어 일반적으로 거의 죽을 때까지 지속된다. 마치 인간 유전자에 그렇게 움직이라고 깊게 새겨져 있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富'는 에너지와 같다. 따라서 부의 축적은 끝없이 에너지를 축적하는 것과 같기도 하다. 사실 '먹을 것'이 바로 에너지이고 그런 '먹을 것'은 부를 통하여 확보할 수 있다. 그래서 부가 바로 에너지가 되는 것이다. 부, 즉 돈으로 원목 책상을 살 수도 있는데 그럼 그 멋진 원목 책상도 에너지냐고 한다면 맞다고 답을 할 수 있다. 원목 책상의 경우 사용 목적은 거기서 책을 보거나 공부를 하는 것이지만 원목 책상 자체는 태워져서 열을 발생시킬 수 있는 에너지원일 뿐이다. 그 에너지원을 원래 목적으로 사용하기 전에 다른 목적으로 활용할 여유가 있었을 뿐이다. 물론 프라스틱으로 된 책상도 에너지다. 알다시피 플라스틱은 석유에서 추출되는 물질이다. 따라서 당연히 에너지다.
인간은 계속해서 더 강해지고 싶어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육체적으로 강해진다는 것은 육체적으로 에너지가 넘친다는 말과 같다. 정신적으로도 강해지고 싶어서 연구하고 공부하고 탐구한다. 이와같이 지적 에너지를 더 확보하고 싶은 것도 일정 부분은 욕망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육체적 에너지 그리고 지적 에너지에 대한 욕망이 있는데 물질적 에너지에 대한 욕망이 없을리가 없다. 그래서 인간은 영원한 축적의 길에 접어들게 되는 것이다. 육체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쇠약해지지만 물질은 다르다. 계속 그 에너지는 보존할 수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인간은 끝없이 물질을 축적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부의 축적 혹은 물질의 축적은 아주 오래 전에 시작되었고 지금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 개인이 물질의 축적을 멈추는 때는 그 개인의 삶이 다 할 때까지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인류의 물질 축적 또한 인류가 완전히 멸할 때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그래서 인간은 아쉽게도 부 혹은 물질 축적의 시대의 끝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의 시대가 끝난 후에야 축적의 시대가 끝날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는 그 어느 시대 보다도 더 풍요롭다. 무엇보다도 물질적인 측면에서 말이다. 이 점에 대하여 이견을 제시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물론 전 세계적으로 국가별 경제력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아직도 지구의 어느 지역에서는 굻어 죽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기는 하지만, 전 지구적으로는 과거 그 어느 때 보다도 더 물질적으로 풍요롭다는 것은 매우 명백한 사실이다. 지금도 1달러면 몇 날을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빈곤한 곳이 있으니 기부를 하라는 공익 광고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리고 깡마른 아프리카 어린이의 초점 잃은 눈동자를 클로우즈업하면서 광고는 끝이 난다. 물론 그런 아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화면에서는 신발도 신지 않고 옷도 거의 누더기 같이 입었으면서 손에는 스마트 폰이 들려 있는 경우도 발견된다. 너무도 큰 문화의 차이가 한 공간 그리고 한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이런 장면을 보면 기이하다는 느낌도 들지만 그와 동시에 이젠 지구상 그 어디에서 진정한 물질적 결핍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 모양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이와같이 지구상에서는 진정한 물질적 결핍은 상당부분 사라졌다. 부의 불균형한 분배로 여전히 결핍속에 살아야 하는 사람도 있지만 평균적으로 진정한 물질적 결핍이 사라졌다는 말이다.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뭔가 계속 쌓아 두려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다. 표류중 목이 말라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바닷물을 퍼먹고 어쩔 수 없이 느끼게 되는 끝없는 갈증처럼 끝없이 '富'를 쌓고 또 쌓고 그리고 계속 퍼먹으려고만 한다. 이 시대가 물질적인 측면에서 풍요의 시대인 것이 거의 분명하지만 이렇게 사람들은 끝없는 축적을 하려고만 하고 있기 때문에 이 풍요의 시대는 다름아닌 결핍의 시대이기도 하다. 어쩌면 大풍요의 시대가 아니라 大결핍의 시대일지도 모른다.
풍요속의 빈곤 (Poverty in the midst of plenty)라는 말은 케인즈(영국의 경제학자)가 사용한 말인데 이 말은 경제학자적 관점에서 불필요한 빈곤을 설명하고 있다. 쉽게 이야기하면 물건을 살 수요가 없어서 물건을 만들 충분한 여력이 됨에도 불구하고 생산을 하지 않으면 이로 인하여 생산과 판매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부를 창출할 기회를 잃게 되고 결국 가난하게 된다는 말이다. 좀 더 경제학적으로 표현하면 '유효수요 부족으로 생산설비를 완전가동하지 못하여 잠재 실현 가능 국민생산을 달성하지 못할 때, 그로 인한 빈곤을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풍요속의 빈곤은 경제적 뿐만이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그리고 심리적으로도 개인에게 영향을 끼친다. 물질적 풍요로움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자신보다 풍요로운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불행을 느끼고 경제적으로 불안정해지고 사회적 고립감을 경험할 수도 있다. 지금 시대의 '풍요속의 빈곤'은 이렇게 다양한 관점에서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다. 기준이 이미 많이 높아져 버린 우리는 타인과의 비교를 통하여 끝없는 빈곤을 스스로 적극적으로 느끼고 나아가서 심각한 결핍감을 '자초하여' 느끼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물질적으로 대단히 풍요로운 이 시대는 풍요로운 결핍의 시대이기도 한 것이다. 어쩐지 모자를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끝없이 모으기만 하는 것이 바로 결핍이다. 이와 같이 결코 필요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 이상으로 영원이 끌어 모으려는 짓은 '결핍'이라는 단어와 매우 어울린다. 이게 바로 풍요속의 빈곤이다.
물론 풍요로운 시대를 진정으로 즐기면서 삶을 이어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수 많은 방법과 묘안이 있겠지만 간편하게 문장 딱 하나만 한 순간도 잊지 않으면 된다. 바로 '비교하지 않기'이다. 타인과 비교하지 않는 것은 주체적인 삶을 사는 것이기도 하다. 가능하면 '비교하지 않기'에서 더 나아가서 '비교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기'까지 하면 거의 완벽하게 풍요로운 시대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비교하지 않는 다는 것은 바로 지금의 상태에서 만족을 찾는 다는 것이기 때문에 풍요로운 삶을 살지 않을 수도 없을 것이다. 풍요로운 결핍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숙제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진리는 너무도 명확하고 간단하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따르고 지키기가 매우 어려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