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책을 제대로 읽어 본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적어도 이름은 들어봤을 만한 사람이 바로 경영학의 대가인 피터 드러커이다. 그는 '측정되지 않는 것은 관리되지 않는다'라는 말을 남겼다. 정성적(定性的)으로 생각하고 추측하는 관리가 아니라 명료하게 보이는 숫자를 통하여 정량적(定量的)으로 관리하라는 것이다. 나도 그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어떤 상황이든 숫자로 전환하는데 익숙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재직하는 동안 내내 숫자놀음만 한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성과 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한 평가도 숫자로 가능하다. 기업의 경우는 인사고과라는 수단이 그것이다. 그 기준에 따라서 다양한 영역에 대한 평가 척도를 세워서 점수를 매기고 그에 준해 고과도 받고 승진도 한다. 이렇게 보면 회사는 꽤 합리적으로 인재의 성과 관리를 하는 것 같은데 사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즉 회사의 직원에 대한 평가와 인정은 반드시 숫자로 증명이 가능한 기준인 인사 고과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정성적 기준이 있다.
예를 들면 의사 결정권자와의 관계 수립 능력 혹은 대인 관계 능력은 숫자로 표현하기가 매우 곤란하지만 회사 내에서 꽤 높은 직급으로 올라가면 고과나 능력보다는 그런 기준으로 성과 평가가 철저하게 정성적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객관적인 자료를 준비하여 숫자로 성과를 들이 밀어도 앞에 언급한 부류의 능력이 부족하면 그 조직에서는 더 이상 나아가기가 매우 어렵다. 그 능력을 좀 더 속된말로 하면 '줄서기 역량'이고 그것은 숫자로 표현할 수 없다. 물론 그래도 무시할 수 없는 역량이다. 리더의 입장에서는 오로지 객관적인 성과 측정을 통해서 모든 것을 관리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애초에 리더도 사람이고 따라서 그는 자신의 주관에 따라서 사고하고 행동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이런식의 정성적 판단에 따른 의사 결정을 완전하게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관점에서 피터 드러커의 숫자를 통한 관리는 대부분 실무적인 측면에서의 성과 측정에 한하여 작동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아무튼 어떤 상황을 지수화하는 것은 그 상황의 정도가 어떤지를 판단할 수 있는 좋은 지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판단하기 좋아하고 경쟁하기 좋아하며 따라서 줄세우기를 당연히 좋아하는 인간들은 다양한 지수를 만들어 왔을 것이다. 사람들은 하다 못해서 인간이 얼마나 행복한지도 숫자로 표현해서 줄을 세웠다. 그게 바로 행복지수이다. 영국의 심리학자인 로스웰 그리고 상담사인 코언이라는 사람이 2002년도에 아래와 같은 행복 지수 공식을 발표했다.
행복지수 = P + (5 X E) + (3 X H)
- Personal : 인생관, 유연성, 적응력
- Existence : 건강, 돈, 인간 관계
- Higher order : 야망, 자존심, 기대감
물론 이 공식은 로스웰과 코언의 주장일 뿐이다. 이 공식에 따르면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요소인 E가 5배수를 받아서 가장 중요하다. 그 다음은 3배수를 받은 H, 즉 좀 더 차원이 높은 욕구가 많은 중요성을 부여 받았다. 반면 P는 1배수를 받아서 그 중요성이 높게 고려되지는 않았다. 이에 따른 행복지수의 계산은 아래 각 질문에 10점 만점 기준으로 답을 해서 합산하면 됩니다. 1번과 2번의 합산이 P가 되고 3번은 E 그리고 4번은 H로 하여 공식대로 계산하면 된다. 만점은 100점이다.
1. 사교적이고 원기왕성하며 변화를 잘 받아들입니까?
2. 긍정적인 인생관을 가지고 있습니까, 실패해도 빨리 일어섭니까, 또 삶을 스스로 잘 통제하고 있습니까?
3. 건강과 돈, 안전, 선택의 자유, 공동체의식 등 삶의 기본적인 욕구가 잘 충족되는 편입니까?
4. 필요할 때 도와달라고 부탁할 사람이 주위에 많습니까,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열심히 하는 편입니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까?
나의 경우 재직시에는 64점이었는데 퇴직을 한 지금은 82점으로 많이 올라갔다. 3번인 E 부분에서 많은 개선이 된 것이다. 물론 이들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으면 각 변수의 배수를 조정하면 다른 값을 얻을 수 있다. P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P의 비중을 높이고 E 혹은 H의 비중을 줄이면 된다. 이렇게 할 경우 개인별로 생각하는 가치관에 따른 행복 지수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P에 더 비중을 주고 싶다. 그 이유는 그 항목에는 개인의 내적 역량의 중요성이 다분히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P는 개인의 내부에서 나오는 에너지 혹은 역량의 비중이 높은데 반면 E와 H는 내부 보다는 외부로부터 오거나 외부의 영향을 많이 받는 요소의 비중이 높다.
국가에 대한 행복지수도 유엔 산하 자문 기구에서 발표하는데 국내 총생산, 기대수명, 사회적 지지 등을 바탕으로 집계를 한다. 이 기준에 따라 측정된 우리나라의 행복 지수 순위는 세계에서 60등 정도라고 한다. 물론 이것도 어떤 것을 집계 기준으로 했냐에 따라서 매겨진 것이기 때문에 크게 신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과거에 메스컴에 행복지수 1위 국가로 많이 나왔던 나라로 부탄을 기억할 것이다. 그 나라에는 행복청이라는 국가 운영 기관이 있을 정도로 국민의 행복을 대단히 중요한 가치로 설정하고 있다. 물론 측정 방식은 자본주의식 시장 중심 측정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측정하였고 그 기준에 따르면 부탄 국민의 9할 이상이 행복하다고 느꼈던 국가이다. 그런데 갤럽의 '세계 주관적 행복도 조사'에 따르면 부탄의 순위는 2011년도 1위에서 2019년도에 95위까지 떨어졌다.
이유는 부탄 사람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과 자기들의 형편을 비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SNS를 통하여 타인의 삶을 옅보면서 자신들의 모습을 재평가하고 자신들의 삶이 꼭 그렇게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무시할 수 없는 원인은 국가 재정의 추락과 그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이다. 전에도 그렇게 부유한 나라가 아니었기 때문에 타국 사람들과의 비교는 결국 물질적인 면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러니 그들의 부유하지 않은 경제적 위치는 나라 전체적으로도 행복감을 감퇴시키는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게다가 관광 사업이 주요 수입원인데 2020년부터는 코로나로 타격을 받으면서 높은 비자 수수료에서 창출되는 막대한 수입마저 대폭 줄거나 없어졌기 때문에 그들의 행복도는 더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은둔의 나라도 생존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 것이다. 심지어 경제 위기를 벗어나기 위하여 부탄이 2020년부터 비트코인 채굴 사업을 통하여 돈을 벌어 들이고 있다니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부탄과 비트코인은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는 불행하다는 느낌과 감정에 생각없이 매몰되지 말고
정말 우리가 불행한지 살펴봐야 한다. 겁먹을 상황이 아닌데
괜히 미리 겁을 집어 먹었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정말 큰 문제인 줄 알고 그 상황에 너무 빨리 영향 받아서
두렵고 어쩔줄 몰라했는데 막상 정황을 파악해 보니 별일 아니고
약간의 수고로움만 견디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판명난 경우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불행도 그와 같다.
일단 행복한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전에 기본적으로 '우리는 행복하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 행복하지 않은데 어떻게 행복하냐고 하겠지만 앞서 주장했듯이 Personal Characteristics도 행복도의 결정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상황이 어렵더라도 극복할 수 있고 결국 그 상황을 통과하여 긍정적인 단계에 이를 수 있다는 믿음 혹은 회복 탄력성이 필요하다. 웃으면 복이 온다고 하는데 이런 관점에서는 상당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냥 웃자고 하는 허튼 소리로 치부할 문장은 결코 아닌 것 같다.
이렇게 '우리는 행복하다'라고 생각을 해도 어딘가 찜찜한 부분이 조금이라도 있는 것 같다면 왜 그런지에 대한 이유를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로스웰과 코언의 공식에 나오는 행복 변수 중에서 대부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Personal은 개인적인 성향이나 가치관, Existence는 자신을 둘러싼 생존과 관려된 유무형적 조건, Higher Order는 더 높은 성취를 의미한다. 각 요소들에서 불충분하거나 불완전한 부분이 존재할 때 우리는 불안 혹은 불편함을 느끼게 되면 그런 감각은 우리 내부에서 행복하지 않다는 인식으로 전환된다.
인간은 어떻게 불행을 느낄까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인간이라는 존재는 생물학적, 사회적, 심리적, 그리고 환경적 이유로 행복을 느끼고 동시에 불행을 느낀다. 생물학적으로는 일단 건강을 거론할 수 있다. 심각한 질병은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소이다.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다는 말이 바로 그말이다. 존재(Existence)에 심각한 장애가 되는 요소이다. 사회적 요인으로는 고립, 타인과의 비교, 고통스러운 인간관계 등이 있다. 역시 존재(Existence)와 관련된 요소이다. 육체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온전하게 존재할 수 있어야 우리는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리적인 면은 P, 즉 개인적 성향이나 가치관이 해당된다. 부정적인 사고나 스트레스에 취약할 수도 있고 자신감과 자존감 부족으로 불안과 우울감에 고통받을 수도 있다. 이런 심리적 측면은 인간의 행복도에 매우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 건강 이상의 고통을 주기도 한다. 몸이 아픈 것과 마찬가지로 마음이 아픈 것도 상당히 큰 위험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환경적 요인인데 경제적 환경, 자연적 재해, 가족 간의 문제 등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우리는 불행하다는 느낌과 감정에 생각없이 매몰되지 말고 정말 우리가 불행한지 살펴봐야 한다. 겁먹을 상황이 아닌데 괜히 미리 겁을 집어 먹었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정말 큰 문제인 줄 알고 그 상황에 너무 빨리 영향 받아서 두렵고 어쩔줄 몰라했는데 막상 정황을 파악해 보니 별일 아니고 약간의 수고로움만 견디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판명난 경우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불행도 그와 같다.
내가 처한 상황이 정말 불행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꼭 그런것 만도 아닌 적이 있지 않았나? 새옹지마와 같은 상황 말이다. 회사에서 억울하게 내 몰려서 어쩔 수 없이 다른 곳에 취업을 했는데 더 좋은 곳에서 명예도 얻고 부도 얻는 경우가 그런 경우이다. 내가 알고 있는 한 사람도 회사에서 부당하게 내 몰려서 억울하게 조기 퇴직을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너무 열심히 할 뿐만 아니라 능력마저 꽤 많았기 때문에 다른 곳에 잘 갈줄 알았는데 우연한 기회에 퇴사 후 반년이 지나도록 자리를 잡지 못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가능한 네트워크를 가동하여 그분의 갈 만한 곳을 수배했고 결과적으로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아서 좋은 회사에 들어갔고 결국 그는 현재 중역의 자리까지 차지하게 되었다.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다른 이유로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고 진급도 누락되었던 분이 제대로 그와 궁합이 잘 맞는 회사에서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그가 회사에서 내 몰릴 때는 세상의 온갖 불행은 혼자 짊어진 것 같아 보였지만 결과적으로는 큰 행운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모든 상황이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해피엔딩을 끝나는 경우도 많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만약 지금 불행한 상황이라는 느낌이 들면 자세히 상황을 뜯어 보기 바란다. 그 상황이 가짜 불행일지도 모르지 않은가? 이때 우리는 행복 쪽으로 비로서 발길을 전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나는 행복의 유무를 결정하는 것은 각 개인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누구도 나의 그리고 당신의 행복 유무를 결정할 권한이 없다. 그리고 그럴 능력도 없다. 로스웰과 코언은 E와 H의 비중을 행복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보고 무려 80%의 비중을 할당했다. 그리고 P에는 불과 20%만 할당했다. 그들의 연구이고 그들의 관점이니 그걸 비판할 생각은 없다. 그들 맘이다. 그러나 나는 P의 비중은 최소한 40%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들의 공식을 존중하고 동의하지만 비중은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이라면 내가 생각하는 행복 공식은 아래와 같다.
행복지수 = (4 X P) + (3 X E) + (3 X H) = 100
물론 4개의 질문은 동일한 것을 적용 할 것이다. 이때 어떤 점수가 나오는지 확인해 봤다. 기존 공식으로는 퇴직 전에 64점이었는데 P의 비중을 올리니 73점까지 올라갔다. 퇴직 후에도 82점에서 84점으로 올라갔다. 숫자만 놓고 보면 P 값의 비중 조정을 통하여 나의 행복지수가 퇴직전 기준으로는 상당폭 증가한 것으로 확인된다. 내가 규정한 공식에 따르면 나의 행복 지수는 나쁘지 않은 것 같다. P는 회복 탄력성, 긍정성 그리고 가치관 같은 것에 대한 것이다. 다시 말에서 회복 탄력성이 높은 긍정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의 경우 행복지수가 높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부의 크기를 기준으로 자신의 행복과 불행을 스스로 판단하고 그 결과에 준하여 자신의 행복 유무를 규정하는 실수를 하곤 한다. 돈이 적기 때문에 불행하다는 섣부른 판단 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부는 개인의 욕구의 크기에 따라서 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1억만 있어도 원이 없는 사람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천 억이 있어도 더 많은 부를 원한다. '불과' 1억의 돈이지만 거기에 만족하는 사람은 더 이상 부를 무리해서 쫓지 않을 것이다. 그는 억지로 더 차지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1억으로도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 부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천 억을 가지고도 더 많은 돈을 끝없이 추구하는 사람은 어처구니 없게도 가난함을 느낀다. 정확히 말하면 그에게 '가난함'은 올바른 표현은 아닐 것이다. 그냥 더 원하고 더 갈구하고 더 욕망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영원히 가득 채울 수 없는 욕망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는 결국 영원한 갈증과 부족함을 느낄 것이다. 그러면 이런 상황은 그에게 있어서는 '가난'이라고 밖에 표현할 도리가 없을 것 같기도 하다.
가난함은 결핍이다. 계속 채워 넣으려고만 한다. 계속 부를 채워 넣으려고 하는 것은 영양 과다와 비슷하다. 먹으면 먹을 수록 위가 늘어난다. 그래서 먹다 보면 조금씩 계속 더 먹는 양이 늘어나게 된다. 과도하게 음식을 섭취한 사람은 그 외형은 물론이고 속도 그리 아름답지는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많이 빨리 먹는 사람이 과연 그 맛을 제대로 느끼기나 할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음식을 입에 넣는 즉시 목구멍을 통하여 위로 수직 강하하는 느낌을 줄 정도로 '먹어 치우는 사람'을 TV에서 많이 보는데 그들이 켤코 맛을 온전히 느낀다는 생각은 들지가 않았다. 그들은 영원히 음식의 결핍 상태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일반적인 기준에서 매우 많이 먹으면서도 엄청난 열량 소비를 통하여 균형잡힌 몸매를 유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그런 사람은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고 계속 창출하고 있지만 그 부에 휘둘리지 않고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당연한 말이지만 적게 원하면 우리는 금방 욕망을 채울 수 있고 만족할 수 있다. 분수를 알고 포기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꼭 필요한 만큼 혹은 자신의 역량 혹은 그릇에 맞는 수준에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음식이든 돈이든 말이다. 그릇은 그 크기 만큼 담을 수 있다. 간장 종지 만한 크기라면 담을 수 있는 양은 얼마되지 않는다. 아무리 퍼부어도 태반은 흘러 버릴 것이다. 오목 거울을 통해서 자신을 들여다 보고 너무 왜소하게 생각하고 비탄할 필요도 없지만 볼록 거울로 들여다 본 기형적으로 부푼 모습을 자신이라고 생각해서도 안된다. 자신을 가장 명확하고 정확하게 비출 수 있는 평평하고 깨끗한 거울을 통해서 자신을 들여다 봐야 자신의 본 모습 그리고 명확한 그릇의 크기가 보일 것이다.
그 거울은 어디에 있을까? 당장 아무 거울로 달려가서 자신의 눈을 들여다 보기 바란다. 결국 자신은 자신을 속일 수 없다. 자기 그릇의 크기는 누구 보다도 더 자신이 잘 안다. 인정하기 싫을 뿐이다. 다른 사람도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데 적어도 나는 그렇다. 내 눈을 보면 내 그릇이 보인다.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그래도 간장종지나 빽알잔보다는 조금 큰 것 같다. 크진 않지만 그래도 최악은 아니라는 점에 위안을 삼고 있다. 내 그릇의 크기에 맞는 만큼만 담고 적당히 만족하는 삶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 정도 크기의 그릇에도 적당한 양의 행복은 담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