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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glecs Jul 14. 2024

편리함이 훔친 것



편리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느끼기만 할 일은 아니다.
뭔가 편하다면 내가 그 대가로 어떤 것을 잃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집안 곳곳의 火口


 내가 아주 어려서 살았던 집은 방 두 칸 짜리의 평범한 소형 주택이었다. 인천이라는 대도시에 있는 집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방은 나무를 때는 재래식 아궁이로 난방을 했고 작은 방은 연탄을 사용했었다. 어머니가 근처에 있는 목재소에서 크고 작은 자투리 나무 조각을 얻어오셔서 안방 아궁이에 불을 피웠던 기억이 난다. 리어커에 나무 조각을 가득 싣고 힘겹게 끌고 오시는 어머니의 얼굴 표정이 아직도 기억 난다. 초등학생도 되기 전의 내 눈동자에 새겨진 당시 어머니의 모습은 여전히 내 기억에 박제된 상태로 남아 있다.  


 가물가물하긴 한데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인 70년대 초반에는 우리집 바로 옆에 밭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그 밭을 흙으로 메우고 그 자리에 양옥집이 들어섰다. 70년대의 전형적인 양옥집으로 녹색 철제 대문에 사자머리 형태의 문고리가 달린 그런 집들 말이다. 물론 50년 정도 지난 지금은 밭을 대신하여 들어선 그 집들도 도시 계획에 따라서 다 허물어지고 없다. 물론 내가 살던 그 집도 99%가 헐리고 거의 자취를 감췄다. 왜 99%냐면 여전히 당시 우리집과 옆집을 구분하고 있던 벽체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내가 살던 그 집이 헐리고 새로 2층집이 들어섰는데 옆집과의 경계를 나누는 그 벽만큼은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를 여전히 지키고 있다. 벽을 두 집이 공유하기 때문에 굳이 비용을 들여서 제거하고 새로 벽을 세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인 듯하다. 


 옛집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니 집과 얽힌 과거의 장면들이 하나하나 머리속에서 피어오른다. 안방 아궁이에 불을 때기 위하여 나무가 필요했기 때문에 그 때는 집에 도끼도 있었다. 목재소에서 가져온 나무를 다시 패야할 필요도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집에 도끼가 있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캠핑용을 제외하고 말이다. 그때는 70년대였기 때문에 대부분이 그런 식으로 난방할 열을 얻어서 겨울을 지냈같은 열을 이용하여 요리도 했다. 80년대가 되야 본격적으로 개량 주택에 제대로 된 보일러가 깔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도시에 거주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식으로 난방도 하고 조리도 한 것이다. 이렇게 안방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부엌의 아궁이 열을 활용하여 밥을 지었고, 작은 방의 난방 수단이었던 연탄불도 조리할 때 사용했다. 혹은 빨래를 삶을 때에도 열을 활용했으니 시대의 난방 수단은 지금과 달리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된 것이다. 물론 '석유 풍로(곤로)'가 있었기 때문에 그것도 요리할 때에 같이 활용했었다. 석유 곤로에서 나는 역한 기름 냄새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석유 풍로의 심지에 성냥불로 불을 붙일 때 붉은 불꽃과 함께 피어오르는 검은색 그을음도 기억난다.  


 지금은 화구가 3개에서 4개가 있는 가스레인지 혹은 인덕션 레인지에서 번에 한 곳에서 3~4가지의 조리가 가능하지만 당시에는 화구가 아궁이, 연탄 그리고 곤로의 형태로 집안 곳곳에 흩어져 있었기 때문에 조리도 집안 여기 저기에서 할 수 밖에 없었다. 활용한 화구의 개수는 비슷하지만 접근성에서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불편한 환경이었다. 그러나 그런 불편 덕분에 여전히 다양한 장면이 내 기억속에 각인되어 있다. 가스레인지나 인덕션 레인지만 본 세대는 전혀 알 수가 없는 그런 기억 말이다. 과거의 여러곳에 흩어져 있는 화구(火口)는 현대의 화구와 비교하여 매우 불편했지만 그만큼 다양한 기억의 편린(片鱗)을 남겨줬다. 




한 곳에 모인 火口


 우리를 그런 불편에서 해방시킨 가스레인지의 본격적인 사용은 사실 기술의 발전이나 새로운 연료의 활용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의도치 않게 가속화되었다. 바로 70년대의 석유 파동이다. 두 번에 걸친 석유 파동으로 어쩔 수 없이 석유를 대체할 대안 연료가 필요했다. 그래서 추진된 것이 바로 가스의 연료화 정책이다. 한국 최초의 가스레인지는 1969년에 일본과의 합작으로 만들어졌지만 실제로 대중화에는 시간이 많이 걸렸는데 이유는 대부분의 가정에 가스 공급이 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석유 파동에 따른 가스의 적극적 도입 추진으로 가스레인지의 사용이 점차 증가하기 시작했다. 1983년 기준으로 100가구당 약 9가구에 가스레인지가 있었고, 87년도에는 100가구당 68가구로 증가하여 거의 전 가구의 약 70%에 가스레인지가 설치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거의 대부분의 주택에 도시가스가 연결되었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가스는 자장면처럼 배달되었다. 오토바이 뒷자리에 가로로 가스통을 뉘어서 배달하는 배달기사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가스의 대중화는 대부분의 가정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우리 집만이 아니라 다른 집들도 대부분 집안 곳곳에서 요리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가스레인지가 생기면서 부엌 한 곳에서 조리가 가능한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가스레인지라는 형태로 火口가 한 곳으로 모였다. 이런 식으로 거의 대부분의 가정에서 커다란 불편 요소가 매우 짧은 시간 동안에 사라져 버렸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렇게 생활의 불편 요소는 하나 하나 사라져갔다. 


 다시 불편했던 과거 이야기를 좀 더 하면, 우리 집은 80년대 초에 '양옥집'으로 이사를 했는데 집에는 연탄이 9개가 들어가는 대형 연탄 보일러가 있었다. 보일러 배관이 깔린 방이 주방포함하여 4개가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용량의 보일러가 설치된 집이었음에도 누가 보일러 공사를 했는지 효율은 엉망이었다. 연탄을 수시로 갈아주면서 난방을 해도 집이 따뜻했던 적은 거의 없었다. 약 10여년을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불편을 그 집에서 감당했었다. 여름엔 에어컨이 없으니 당연히 더웠고, 겨울에는 난방이 부실한 것은 물론이고 집 자체도 허술하게 지어져서 외풍이 상당히 심했었다. 90년대 초에 집을 줄여서 아파트로 이사를 가면서 이런 형태의 불편한 난방 환경에서 비로서 벗어날 수 있었다. 


 수 십 년이 흐른 지금은 과거의 그런 불편한 흔적을 보통 가정집에서 찾아보기 매우 어렵게 되었다. 시골의 오래된 주택에 가면 여전히 그런 모습을 볼 수도 있겠지만 도시에서는 거의 불가능 할 것이다. 온 국민의 절반 이상이 거주하는 주거 형태인 아파트에는 가스로 난방이 공급되고 비용도 저렴한 편이다. 요리를 하기 위해서 가스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요즘은 전기를 이용한 조리도구도 다양하다. 특히 인덕션의 경우는 가스를 대신하기 때문에 더 깔끔하고 편리하다. 과거의 불편은 이런 식으로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저 뒤안길로 물러났다. 


 지금은 난방을 위해서는 보일러의 온도를 높이면 그 뿐이고 냉방이 필요하면 에어컨 리모컨을 누르면 되는 세상이다. 선풍기도 여전히 많이 사용하지만 거의 압도적으로 에어컨이 사용되고 있고, 얼마전부터는 시스템 에어컨이 광범위하게 도입되면서 방마다 에어컨이 있는 경우도 흔해졌다. 문명의 발전에 따른 편리함은 우리 생활속에 이미 너무 깊게 파고 들어서 이젠 우리가 편리하게 살고 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할 정도이다. 집에 있는 인덕션과 에어컨이 편의를 제공한다는 사실은 알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것들을 얻기 어려운 대상이 아니라 당연히 있어야할 할 것 쯤으로 여기게 되었다는 말이다.  




편리함의 대가


 그러나 분명히 편해졌는데도 왠지모를 찜찜함이 여전히 남아 있다. 적어도 냉난방에 있어서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편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결과적으로 몸은 많이 편해졌는데 그에 반한 다른 문제점도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에는 찾아볼 수 없는 냉방병은 과도한 냉방으로 인하여 여름철에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적인 병이 되었다. 한 겨울에도 온 집안을 뜨겁게 난방을 하면서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다니면서 겨울을 잊고 산다. 집에서 그렇게 따뜻하게 살기 때문에 추운 겨울철에 밖에 나갈 때는 온 몸을 완전히 감싸지 않으면 쉽게 감기에 걸리곤 한다. 그래서 우리는 여름에는 냉방병으로 훌쩍거리고 겨울에는 감기로 훌쩍거리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추위에 매우 취약해졌다. 그러니 그만큼 쉽게 감기에 걸리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꼭 난방 때문이 아니라 다양한 이유로 감기나 독감 환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스트레스와 공해로 면역력이 약해지기도 하고 다양한 변종 바이러스가 매해 발생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과거와 달리 증가한 인구로 밀집된 환경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감기의 전파가 매우 쉽게 이루어지는 것도 큰 이유이다. 한창 코로나가 유행할 때 실내 에어컨 때문에 더 빨리 더 많은 사람이 감염되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편리함이 또 다른 엄청난 대가를 초래한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감기약을 무슨 비타민 먹듯이 쉽게 먹는다. 조금만 몸이 불편하면 약국과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편리하게 약을 몇 일 먹으면 감기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자주 그렇게 약을 먹으면서 서서히 내성이 약해지는 대가를 자신이 인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치루면서 말이다.  


 무엇이든지 과하면 탈이 나는 모양이다. 너무 단 것을 즐기면 당뇨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지듯이 말이다. 사실 편한 것도 너무 과하게 편하면 탈이 난다. 그리고 무엇이든 편리함을 얻기 위해서는 대가를 감수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딱히 급하지도 않고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한 두 정거장 밖에 되지 않는 거리를  버스도 아니고 택시를 타는 사람들도 있다. 시간을 줄여야 할 만큼 시급한 용무가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과도한 편리를 추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개인적인 성향의 차이이기 때문에 이걸 꼭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내 관점에서 그렇다는 말일 뿐이다. 


 편리함을 통해서 우리는 많은 것을 얻지만 반대로 잃기도 한다. 자동차를 직접 운전해서 이동하면 혼자 나만의 시간을 갖고 음악도 들을 수 있지만, 그 시간 만큼은 온전히 운전에 집중해야만 한다. 대중 교통을 이용하면서 할 수 있는 독서나 사색의 기회가 없어진다. 물론 자가용의 이용을 위해서는 대중 교통과 비교할 수 없는 비용을 지출해야 하기도 한다. 보통은 기름값만 생각하지만, 보험료도 있고 세금도 있다. 그리고 차를 사는 동시에 감가 상각이 일어난다. 모두 비용이다. 편리에 대한 지극히 당연한 반대 급부가 있는 것이다. 


 자동차의 네비게이션을 활용하면 원하는 목적지에 가장 빠르게 도착할 수 있고 길을 잃을 염려도 없다. 그러나 네비게이션을 활용하면서부터 길치가 되어버린 사람이 많이 증가했다. 네비게이션이 없으면 쉽게 목적지로 이동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과거엔 차를 사면 작은 지도책을 사은품으로 줬었다. 지도를 보고 목적지를 찾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요즘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데 실제로 내가 첫 차를 1997년도에 샀을 때 지도책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언제나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손 안의 컴퓨터인 스마트 폰을 통하여 많은 문명의 이기를 즐길 수 있지만 그와 동시에 스마트폰에 예속된 삶을 살게 된다. 잠시라도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안한 감정마저 느낀다. 시력을 서서히 잃어 가는 것도 우리가 치루는 중대한 대가 중의 하나이다. 


 그래서인지 뭔가 편리해졌지만 어쩐지 찜찜하고 편리해진 만큼 어딘가 공허함을 느끼게 된다. 그 이유는 실제로 편리함을 향유하는 대신에 우리가 분명히 어떤 대가를 치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편리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느끼기만 할 일은 아니다. 뭔가 편하다면 내가 그 대가로 어떤 것을 잃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그 대가가 물질적인 것이라면 그나마 큰 문제는 아닐 수도 있다.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돈은 다시 벌면 된다. 많이 벌지 못하면 적게 쓰면 된다. 그런데 대가로 나의 정신이 훼손되는 방식으로 나도 모르게 심각한 대가를 치루고 있는 경우가 있는지 살펴야 한다. 


 과도한 냉난방에 따른 냉방병과 감기도 문제지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IT 기기에 대한 과도한 의존으로 생각하는 방식을 잊게 되는 문제가 아닐까 한다. ChatGPT가 글도 써주는 시대다. 키워드만 제공해 주면 매우 훌륭한 글을 써준다. 보고서도 써주고 숙제도 해준다. 매우 편리하지만 결국 그런 편리함은 우리에게 정상적인 인간으로써 해야 하는 생각을 할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라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최근 문해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에 대한 걱정이 많다고 들었다. 미국의 문맹률이 높다고 하던데 우리도 그 길을 따라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리고 불과 몇 줄의 글도 논리적으로 작성하지 못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런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스마트 기기에 빠져있기 때문에 책을 볼 시간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제대로 문장을 해석하고 또 필요할 때 문장을 구성할 수 있는 능력이 길러지기 어려운 것이다. 이런 경우는 편리함을 추구하다 못해 거기에 중독된 대가를 제대로 치루고 있는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과유불급'. 진리는 어느 시대에다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 같다. 과도한 편리함에 대한 경계가 필요하다. 뭔가 너무 편해졌다면 한 번쯤 뒤를 돌아보고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나도 모르게 내게 정말 중요한 어떤 것을 잃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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