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초에 새 집으로 이사한 후에 로봇 청소기를 구매했다. 가격이 꽤 비싸서 망설임이 없지 않았지만 아내의 강력한 주장에 밀려서 구매 버튼을 눌렀다. 평소에도 청소는 내가 하는데 왜 아내가 그렇게 구매를 주장했는지는 여전히 미스테리이다. 아무튼 이왕 샀기 때문에 조금 전에 로봇 청소기에 구역 청소를 하도록 휴대폰 앱을 통하여 명령하고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중이다.
사실 로봇 청소기의 작동 원리는 매우 간단하고 부품 또한 특별한 기능이 필요한 고가가 사용되지는 않는다. 핵심 부품으로는 정확한 장애물 회피 기동을 할 수 있는 센서칩 그리고 경로를 계산할 수 있는 마이크로 콘트롤러(MCU) 정도가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청소를 하기 위해서 필요한 물리적 작동에 필요한 충전 베터리와 모터가 핵심 부품이다. 아무리 원가를 따져봐도 그 제품이 1백 만원이 넘어갈 이유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워낙 요즘 로봇 청소기가 대세인지라 가격을 우선 높게 매겨 놓은 것 같다.
혹시 집에 로봇 청소기가 있다면 한 번 들어 올려 보기 바란다. 무게가 제법 묵직할 텐데 이것은 모터와 충전지 무게 때문이다. 대부분 물건은 가볍고 작게 만들려고 하는데 로봇 청소기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로봇 청소기의 역할을 고려할 때 로봇 청소기는 무게가 좀 나가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단 무게가 나가야 물걸레질을 할 때 좀 더 바닥에 압력을 가해서 깨끗하게 청소를 할 수 있게 된다. 몸체가 무거운 만큼 그걸 이끌고 이리저리 다녀야 하는 청소기의 베터리가 빨리 떨어지긴 하겠지만 충전이야 또 하면 된다. 따라서 조금 무겁더라도 청소기의 본질인 청소 기능을 더 확보하는 것이 합리적이었을 것이다.
로봇 청소기가 세상에 나온지는 이미 꽤 시간이 지났다. 2002년에 간단한 기능의 로봇 청소기가 이미 세상에 나왔었고 20년 이상 지난 지금 판매되는 로봇 청소기의 기능은 정말 놀라울 정도이다. 자동으로 청소를 하는 것을 떠나서 청소 후에 먼지통을 알아서 비운다. 그리고 물걸래질도 하며 물걸래질이 끝나면 도크로 돌아와서 알아서 걸래를 세척한다. 그리고 조용히 충전을 시작한다. 청소에 비교적 시간이 오래 걸리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어차피 사람이 해도 그 정도는 걸리기 때문에 로봇 청소기가 느릿느릿 다니면서 청소하는 모습만 좀 견딜 수 있다면 그야말로 신세계를 경험할 수 있게 된다. 내가 경험을 해보니 결과적으로 구매하자고 우긴 아내의 말이 맞았던 것이다. 대중화가 되어가고 있는 만큼 좀 더 가격이 합리적으로 조정되어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로봇 청소기는 사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상상속에서만 존재하던 것이었다. 우리 주변에는 이와 같이 과거에 상상하던 것들이 실현된 제품들이 상당히 많다. 미래에 이럴 것이다 라고 상상한 모습이 현실화 된 것이다. 들고 다니는 휴대폰은 물론이고 손목에 차고 다니는 '웨어러블 워치'는 오래전 공상 과학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소품이었다. 40대 이상인 사람들은 과거에 작은 화면을 통하여 화상 통화를 하고, 손목에 찬 작은 시계로도 역시 화상으로 통화하는 장면을 영화에서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런 미래의 모습이 어느새 현실화 된 것이다.
그리고 최근 들어서 초대형 TV의 판매가 가속화되고 있어서 새로 TV구매하는 사람의 경우 85인치 이상의 구매율이 높다고 한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42인치만 해도 엄청난 크기였는데 이젠 그 4배에 이르는 거대한 TV가 거실에 놓여 있는 것이다. 방에서 컴퓨터를 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도 30인치대의 모니터 여러대를 설치하여 다중 화면으로 게임을 하거나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모습들이 평범한 상황이 되어버린지는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영화에서나 보던 미래가 우리 현실 속으로 파고 들어온 것이다. 우리는 늘 현실을 살고 있지만 일부 영역에서는 근미래를 당겨서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는데 워낙 인간의 적응력이 빨라서 일 수도 있고 어쩌면 그만큼 망각을 잘 하기 때문인지 우리가 미리 상당부분 미래 기술을 끌어와서 살고 있으면서도 그걸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서 변한 것들이 상당히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는 의외로 어떤 제품이나 물건만이 아닌 것 같다. 내 생각에 그것은 바로 대중에 대한 무한 정보 접근성의 허용이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거의 비슷한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단순하게 기술이 발전해서 휴대폰으로 통역을 할 수 있고 AI 비서를 통해서 온갖 정보를 확보할 수 있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많은 사람들이 AI를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아득한 과거엔 정보의 양도 적었지만 그것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도 매우 제한적이었다. 잘해야 백과사전을 뒤져서 정보를 찾는 정도였던 것도 불과 몇 십년 전이다. 물론 도서관도 정보를 확보하기 좋은 장소로써 충분한 기능을 매우 오랜 기간 동안 해왔다. 그러나 수 백 년간 이어오던 도서관의 기능은 정보화의 물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쇠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도서관의 명맥은 견실하게 유지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도서관에서 정보를 확인하는 사람은 과거에 비하여 상당폭 줄었을 것이다. 도서관에 오가는 시간이면 충분히 정보 검색을 통하여 더 쉽게 더 많은 정보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키백과나 구글 검색 그리고 다른 많은 검색 엔진을 통하여 우리는 거의 무한대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때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는데 바로 정보의 신뢰성에 대한 확실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터넷상의 정보 그리고 AI가 제공하는 정보는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기존 자료, 책, 연구 결과 등을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그런 자료를 통합하고 가공하여 질문자의 물음에 답변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AI가 제공하는 정보의 정확성은 역시 예외없이 기존 자료, 책 그리고 연구 결과의 정확성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정보의 사용자는 어떤 정보가 추출되어도 그것에 온전히 의존하여 의사결정을 해서는 안된다. 사실 지금도 서점에 가서 아무 책이나 하나 꺼내서 읽어도 그 속에 잘못된 정보가 존재할 확률은 상당히 높다. 어떤 자료에는 금성의 표면 온도가 370도라고 하는데 다른 자료에는 470도 혹은 467도 라고 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공개된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허가증을 받은 대신 우리에게는 이중 어떤 정보가 가장 정확한 것인지를 확인해야 할 의무가 생기는 것이다.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지금의 정보화 환경은 우리가 단지 활용만 하면되는 단순한 환경이 아님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입력하는 거의 모든 정보는 기록되어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써 놓은 모든 글들도 거의 모조리 누군가에 의하여 스크린 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검색에 노출될 것이다. 내가 방문한 사이트가 어딘지도 모두 기록에 남는다. 내가 몇 시에 일어나서 무엇을 사고 어디를 방문했으며 누구를 만났는지도 모조리 기록될 것이다. 2002년에 개봉된 탐 크루즈가 주연한 '마이너리티 리포트'라는 영화를 보면 주인공의 모든 동선은 물론 심리 상태 그리고 미래에 하게 될 행위까지 AI가 예측한다는 스토리가 이어진다. 이 영화는 2054년의 워싱턴을 배경으로 하지만 아직 30년이나 전인 2024년 현재의 기술 수준을 보면 2054년보다 훨씬 빠른 시기에 그런 상황이 현실화 될지도 모르겠다. 2054년이라는 미래는 이미 2024년 현재의 기술 속에 그 싹이 움트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의 상상과 기대를 초월하는 AI가 등장하여 많은 사람을 아연실색하게 하고 있지 않은가?
AI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OpenAI의 ChatGPT는 2022년 11월 30일에 발표 되었다. 당시 내가 재직하던 회사에서 이 ChatGPT가 가동되기 위하여 필요한 핵심 부품을 만들었기 때문에 해당 고객을 담당하는 직원으로 부터 ChatGPT로 인하여 2023년도가 엄청나게 뜨거울 것이라는 내용이 포함된 시장 분석 자료를 보고 받은 기억이 난다. 물론 ChatGPT의 기능을 직접 써보고 나서는 그의 보고 내용을 완벽하게 신뢰하게 되었고 관련 제품의 수주가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해당 고객 지원에 각별히 신경을 썼었다. 실제로 그때 제대로 정보를 해석해서 구체적으로 예측되는 현상을 살펴봤다면 관련 업무에 최선을 다하는 동시에 엔비디아나 하이닉스 혹은 한미반도체의 주식을 샀어야 했지만 그 정보를 제한적으로 해석하는 통에 오로지 늘어날 수주량에만 관심을 두었던 것이다.
ChatGPT가 발표되던 시기인 22년 11월말 엔비디아의 주가는 17불 수준이었는데 약 20개월 후인 지금은 132불로 거의 8배가 올랐다. 잘못된 정보를 통하여 오판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 정보가 함유하고 있는 다중의 의미를 분석하고 필요한 행동을 하지 못할 경우 잃게 되는 기회 손실도 만만치 않았다는 것을 나는 이 경험을 토대로 절실히 느꼈다. 우리에게 허용된 '무한 정보 접근 허용권'에만 탐닉하여 끝없이 정보만 긁어 모으기 보다는 행간을 잘 읽어서 바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해야 할 것이다.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미래가 만들어지고 있을 것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어딘가가 아니라 모든 곳에서 미래는 싹이트고 있다. 그리고 사실 우리는 지금 현재 속이지만 이미 미래를 살고 있기도 하다. 감히 시간을 논할 정도의 지식은 없기 때문에 자세하게 기술할 수는 없지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는 거의 동시에 존재한다고 봐야 한다. 무식한 표현이지만 0.1초 전도 과거이고 0.1초 후도 미래이다. 이런 논리라면 0.000001초 전도 과거이고 0.000001초 후도 미래이다. 단위를 나노로 바꿔도 마찬가지다. 1나노초 이전도 과거이고 1나노초 이후도 미래다. 그리고 그 사이에 현재가 존재한다. 이 관점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거의 동일한 시점에 존재하게 된다. 물론 10년전과 지금을 같다고 우기는 것은 아니다.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동시성에 적지 않은 타당성이 부여될 수 있다는 관점의 설명일 뿐이다.
태어나서 삶이 다할 때까지 우리는 매 순간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예전과는 달리 우리의 삶의 패턴은 우리가 사회에 소속되어 삶을 이어가는 한 어떤 대상에 의하여 남김없이 인식되고 기록된다. 알고리즘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행태가 완전히 드러날 수 밖에 없는 환경이다. 이런 시대를 우리는 얼마 전부터 살아왔고 앞으로는 더욱 더 '꼼꼼하게 기록되는' 삶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이 사실은 오늘 새벽에 내가 직접 몸소 체험하기도 했다. 나의 글을 세심하게 본 누군가가 이메일을 보내온 것이다. 그 사람은 나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필요한 정보를 내게 요구하기도 했다. 전혀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도 나는 맨 몸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자의적으로 정보를 공개한 것이 나이긴 하지만 말이다.
꼭 그래서만은 아니겠지만 아무튼 이런 시대의 변화 때문이라도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나의 남은 삶이 과연 어떤 식으로 기록될지 궁금하기도 하다. 지금까지 써온 기록을 보면 앞으로도 어떻게 쓰여질지는 대충 감이 온다. 물론 지금까지 써내려온 나의 기록이 탐탁치 않으면 바로 지금부터 다른 방식으로 나의 기록을 써 내려가면 될 일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모든 나의 삶의 순간에 나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가 만들어지고 기록되니 결국 모든 순간을 최선의 삶의 순간으로 채우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일 것이다. 말은 쉽다. 이런 나와 마찬가지로 지금 당신도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차피 같은 시대를 살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