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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glecs Jul 02. 2024

피로한도

'멈춤' 버튼을 누르자





한계 경험


 참을 수 없는 순간은 누구나 경험한다. 사람에 대해서건 혹은 어떤 상황에 대해서건 말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의 말과 행동에 대하여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직접적으로 화가 폭발하는 경우가 있고 혹은 이와 다른 방식으로 화를 내기 보다는 단순히 그 사람과의 접촉을 완전히 차단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상황이 된 것은 그와의 관계를 어떤 식으로든 계속 할 수 없는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에 대한 피로한도에 이른 것이다. 만약 누군가에게 대단히 실망하여 꼴도 보기 싫다면 그동안 그와의 접촉에서 수 많은 '피곤한 상황'을 겪었고 결국 그 끝에 도달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 사람에 대하여 견딜수 있는 당신의 '피로한도'의 정점말이다. 


 피로한도는 거의 모든 것에 적용된다. 예를 들면, 인체가 느끼는 피로감도 어느 한도를 넘어서면 더 큰 문제로 발전하게 된다. 병이 난다는 말이다. 물론 대부분의 피로는 적당한 영양섭취 그리고 휴식을 통하여 해소된다. 그러나 과도한 피로가 오랜 기간동안 지속되고 그게 완전히 해소되지 못할 경우 피로의 잔여물은 매일 조금씩 쌓이게 된다. 결국에는 좋은 음식을 먹고 충분히 잠을 자도 여전히 몸이 정상으로 회복되지 못하고 휴식 후에도 계속 피로를 느끼게 되며, 이것은 몸이 피로한도를 넘어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우리는 충분한 영양을 공급하고 휴식을 추가로 취하는 선택을 해야 하지만 대부분 경제활동을 하는 보통사람들인 우리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가해지는 압력과 충격을 근근이 감내하면서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선택을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렇게 피로는 쌓이고 또 쌓여서 결국 우리를 육체적으로는 물론 심하면 정신적으로도 파괴한다.  


 인체와 마찬가지로 물질에도 피로 한도가 있다. 반복적인 압력이나 충격을 받으면 물질도 그 힘의 영향을 받는다. 그 물질이 견딜 수 있는 최대한도까지는 계속하여 압력과 충격에 견디겠지만 그 물질이 받아 들일 수 있는 한도를 초과할 경우 그 물질은 파괴되고 만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철사는 나무젓가락처럼 쉽게 부러지지 않는다. 그러나 반복하여 구부렸다가 펴기를 지속하면 어느 순간에 그 접힌 부위의 색이 연하게 변하면서 철사라는 물질은 내부에서부터 파괴되기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힘없이 끊어지게 된다. 철사가 견딜 수 있는 피로한도를 초과하는 반복적 압력과 충격이 가해졌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물질이든 인간의 육체든 반복적 충격 에너지를 받을 경우 파괴되지 않는 것은 없을 것 같다. 인간은 몸으로 느끼는 피로한도를 초과하면 쓰러지게 되고 물질은 부서지거나 끊어지는 형식으로 파괴되고 만다. 이러한 피로한도는 물리적인 면에서 관찰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정신적인 면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소위 정신적 피로한도가 그것이다. 우리 인간은 정신적 혹은 심리적으로 무너질 때가 있다. 굳건하게 버텨오다가도 결국 어느 순간에 이르러서 심적으로 완전히 무너져서 좌절하고 화가나고 슬퍼진다. 인간의 정신적 피로한도가 처참하게 무너져 버리는 한계 상황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정신적 피로한도


 물질적 혹은 물리적 피로한도와 정신적 혹은 심리적 피로한도에는 상당히 큰 차이점이 있다. 물질적/물리적 피로한도는 같은 물성을 갖는 물질인 경우엔 거의 동일한 한계까지 버틸 수 있다. 예를들어서 1mm 두께의 철사가 끊어지려면 20번을 굽혔다가 펴야 한다면, 대부분의 1mm 두께의 철사는 비슷한 회수를 굽혔다가 펴면 부러질 것이다. 어느 제조사에서 만들었는지간에 말이다. 철사에는 인간처럼 의지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인간의 정신적/심리적 피로한도는 개인별로 모두 다르다. 심리적 그리고 정신적으로 비교적 유약한 사람은 쉽게 감정적 혹은 정신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작은 압력에도 쉽게 휘둘린다. 사소한 일에도 당황하고 얼굴이 붉어지며 심박이 빨라진다. 작은 과업을 받아도 스트레스를 받고 두려움에 쉽게 빠진다. 주변인이 가볍게 던진 말에도 쉽게 상처받고 오만가지 상상에 빠져서 스스로 좌절한다. 이런 사람의 경우 정신적/심리적 피로한도는 매우 약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유독 정신적/심리적 피로한도가 낮은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가정 내에서의 성장 배경, 교육 환경, 주변인의 영향 그리고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성향 등 여러가지 이유가 그 원인일 것이다. 선천적으로 타고났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에 못지 않게 큰 원인은 그가 자란 성장 배경일 것이다. 그러나 이미 성장을 끝낸 성인이 된 상태이기 때문에 그의 약한 피로한도를 단시간에 강하게 만들기는 매우 어렵다. 


 반면 심리적 그리고 정신적으로 강인하고 견고한 사람은 외부로부터의 감정적 혹은 정신적 영향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이런 사람은 자존감이 높고 용기가 있는 성향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들은 비교적 큰 압력을 받아도 거기에 휘둘리는 경우가 적다. 오히려 높은 압력이 가해지면 힘이 더 생기기도 한다. 즉 심각한 문제를 만나면 당황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강한 호기심이 발동되어 그 문제를 게임처럼 해결하려고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사람은 삶을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자신에게 압력을 가하는 '문제'들이 그렇게 실질적으로 심각하게 악화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것을 경험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떤 '문제'가 발생해도 그 문제 자체에 휘둘리는 일이 거의 없다. 


 이런 사람들은 큰 과업을 받으면 즐거움을 느끼는 '변태적 성향'을 보이기도 하며 주변인이 좀 센 표현으로 의견을 전달해도 거의 영향 받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적절치 못한 방식의 소통을 하는 주변인의 부적절한 행위를 안타깝게 생각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의 경우 정신적 피로한도는 상당히 강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운동선수의 경우 유독 큰 경기에 강한 사람이 있다. 평소에는 별로 두각을 내지 않다가 결승전과 같은 중요한 게임에서는 유별나게 기여도가 높은 선수말이다. 그리고 득점 상황에서 특히 타율이 높은 야구 선수도 있다. 이들이 바로 중요한 상황을 버텨내는 무언가를 가진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적 성향은 '여유'이다. 그리고 '여유'는 긴장과 긴장 사이에 존재하는 '쉼' 혹은 '틈'이라는 공간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심리적, 정신적 피로한도가 약한 사람을 발견하기는 어렵지 않지만 반대로 강한 사람을 발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지금 주변을 둘러보고 어느쪽이 더 많이 떠오르는지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성향도 한 번 스스로 점검해 보기 바란다. 나의 정신적/심리적 피로한도는 어디까지일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 잠시라도 자신의 본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나의 모습이 피로한도가 약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어떻게 하면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쉼, 틈 그리고 긍정성    


 어떤 일 혹은 어떤 사람에 대한 정신적/심리적 피로한도가 초과되어 무너져내리는 것은 결국 부정성에 휩싸여서 멘탈이 흔들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어떤 상황을 냉정하게 관찰하고 인식하지 못하면 우리는 멘탈이 무너진다. 냉정하게 관찰하고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그 상황의 무게에 강하게 눌리기 때문이다. 당장 심각해 보이는 상황이 눈앞에서 벌어질때 냉정하게 관찰하고 그 상황을 인식하는 작업은 상당히 어려워진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런 상황에 압도되어 무너져버린다. 반면 그런 상황을 딛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원래 어떤 영역에서든 뛰어난 사람은 소수일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이때 평범한 사람에게 필요한 작업이 바로 앞서 언급한 '쉼'이다. 심호흡을 하면서 2~3초를 버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즉 뜻밖의 상황이 닥쳐서 약간 당황스러운 기운이 들면 일단 생각을 멈추고 자신의 모습을 제3자의 시각으로 관찰하는 것이다. 단지 그 상황에서 한 발짝만 뒤로 물러나면 된다. 그래야 그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본질을 좀 더 세밀하게 볼 수 있고 내가 어떤 반응을 할지 선택할 틈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된다. '참을 인(忍) 세번이면 살인을 면한다' 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어떤 반응을 하기 전에 일단 참아야 한다는 말이다. '쉼' 혹은 '틈'은 바로 부적절한 행위나 언행과 같은 부정성을 반영한 반응이 일어나지 않도록 잠시 동안 시간을 내서 참는 것과 다르지 않다. 


 개그맨 박명수는 '참을인 세번이면 호구'라고 이야기를 했고, 또 어떤 사람은 '살인 한 번이면 참을인 세 번을 면한다'고 한탄조의 말을 하기도 했다. 박명수의 말은 참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무조건 참기만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살인 한 번이면 참을인 세 번을 면한다'는 말은 끝없이 반복적으로 참을 만한 상황을 만드는 우를 범하지 말고 아예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하여 문제의 뿌리를 뽑아 버려야 한다는 뜻을 과격하게 표현한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피로한도를 초래하는 '피곤한 상황'에서 완전히 벗어난 삶을 살기는 불가능하다. 그런 현실을 직시하고 수용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적극적으로 대응할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그 방안은 의외로 간단하다. 앞서 언급한 한 템포 '쉼'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편안하게 숨을 쉬면서 2~3초만 안정을 찾아도 과도하게 감정에 치우친 행동이나 말을 할 가능성은 대폭 줄어들게 된다. 


 사실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일들은 나중에 돌아보면 사소한 일들이었음이 드러나는 경우가 태반이다. 부부끼리 치약을 중간부터 짜냐 끝부터 깔끔하게 짜냐를 두고 싸운다. 자신과는 거의 상관이 없는 이슈에 대하여 의견 대립이 생겨서 친구나 동료와 말다툼을 하기도 한다. 두 경우 모두 아무리 후하게 생각해도 중요성이라고는 1%도 찾기 어려운 사소한 일들이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일어나기 전에 다른 이유로 감정적 골이 깊게 패여있었다면 이 1%도 되지 않는 사소한 일이 뇌관이 되어 크게 일이 터져 버리는 것이다. 치약짜는 방식의 차이 때문에 이혼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이런 사소한 일이 심각한 상황을 초래하는 마중물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는 '쉼'이 필요한 것이다. 


 당신의 아주 까탈스러운 상사는 언제나 당신의 보고서를 보고 트집을 잡을지도 모른다. 1년 전에도 그랬고 오늘도 그는 동일한 태도를 보인다면 그는 앞으로도 계속 그럴 가능성이 높은 사람일 것이다. 만약 당신이 진정 제대로 일을 했다면 문제는 당신의 보고서가 아니라 습관적인 비난과 비평을 통하여 존재감을 찾는 그 상사에게 있음이 거의 분명하다. 상사를 바꿀 수 있다면 바꿔야 하는데 그게 어렵다면 그런 상사의 존재를 인정하고 한 템포 쉬면서 그의 요구를 들어주면 그뿐이다. 순순히 그의 지시를 따르고 그를 인정해 주면 그는 어쩌면 당신의 그런 태도로 부터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것으로 방법을 바꿀지도 모른다. 습관적 비난과 비평의 빈도는 그에 준하여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이런 방식은 부끄럽고 처참해 보일 수도 있지만, 실상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단순한 적응 방식의 하나 일 뿐이다. 우리는 바꿀 수 없는 것을 인정하는 것도 배워야 한다. 

 

 우리는 언제나 긍정할 필요가 있다. 긍정적 태도 속에서 긍정적인 결과물의 씨앗이 잉태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우리가 매사 긍정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은 결국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렇게 심각하게 큰 일은 아니라는 사실로 증명될 수 있다. 전쟁통에도 출산율은 올라간다. 전쟁이 나도 할 일은 한다는 것이다. 회사가 망해도 내가 갈 곳은 넘친다. 세상은 넓고 회사는 많기 때문이다. 눈만 낮추면 취직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상태나 상황을 보는 방식이 그 상태나 상황을 규정한다. 물이 반 컵이나 남았다는 관점과 물이 반 컵 밖에 남지 않았다는 관점은 동일한 상황을 보는 극단적인 시각 차이가 무엇인지 매우 잘 설명해 주는 사례이다. 


 긍정성 그리고 쉼, 틈 혹은 사고의 여유는 우리를 피로한도에 이르게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견고한 방어막 역할을 할 것이다. 사실 오늘의 이 글은 최근 내가 약간의 정신적 피로한도 상황에 몰렸었기 때문에 쓰게 되었다. 약간의 즉각적 '쉼'을 통하여 긴장은 완화시킬 수 있었고 따라서 위기 상황에 내 몰리지는 않았지만, 쌓인게 많아서 인지 짧은 여유와 만으로는 완벽하게 해소되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이 떠오른 김에 그런 감정에 휘말리면 누구라도 겪게 수 밖에 없는 피로한도대하여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조금 더 '생각의 쉼'을 만들다보니 이렇게 짧지 만은 않은 글이 되어 버렸다. 다행스럽게도 상당히 '쉼'을 가진 덕분에 나는 정신적 피로한도에 굴복하지 않고 다시 원상태로 돌아갈 있었다. 그리고 고백하자면 어제 내가 겪은 '정신적 피로한도 상황' 역시 아주 사소한 문제였다. 다행스럽게도 하찮은 일을 정말 중대한 상황으로 발전시키는 마중물이 되도록 허용하지는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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