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추억에 물드는 재미
쌀 소비가 감소하고 대신 밀의 소비가 증가한지 꽤 오래 되었다고 한다. 쌀의 소비가 감소한 것은 사람들의 식생활 변화에 따른 것이고 밀의 소비가 증가한 것도 동일한 이유이다. 특히 밀의 소비 증가는 사람들의 취향이 쌀보다는 밀가루를 소비하는 쪽으로 변한 것도 있지만, 밀로 만들어진 제품의 상업화가 가속화되면서 자연스럽게 밀의 생산과 수입 그리고 소비가 증가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통계를 보면 인당 쌀 소비는 2014년에 65kg에서 2023년 56kg으로 약 10년간 14%가 감소했다. 아마도 그에 비례하여 밀이나 다른 곡류 혹은 육류의 소비가 증가했을 것이다. 2022년 기준 인당 연간 밀 소비량은 33kg 이라고 하며 이는 같은 해에 56.7kg이었던 쌀에 비하면 여전히 비중은 낮다. 쌀의 소비량이 줄긴 했지만 여전히 밀 보다는 높게 유지되고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한국인은 여전히 밥이 주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사람들을 만나면 밥먹었냐고 하지 빵먹었냐고 하지 않는다.
밀 소비의 증가는 앞서 이야기했듯이 사람들이 밀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밀로 생산된 제품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거의 매일 밥을 먹는데 또 쌀로 만들어진 다른 상품을 만들어서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기는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트에 가보면 쌀로 만들어진 먹을 거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기껏해야 쌀과자 정도이다. 오죽 쌀로 생산할 제품을 찾기 어려우니 막걸리를 만들겠는가? 반면 밀로 만들어진 제품은 차고 넘친다. 마트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섹션이 과자와 라면아닌가? 죄다 밀이다. 식품 제조사 입장에서는 비교적 저렴한 원재료 비용(밀가루는 99% 가량이 수입이다)을 들여서 거기에 부가가치를 붙여서 판매하는 것이 돈이 된다. 쌀은 원재료 자체가 비싸서 추가 가치를 덧입이기가 너무 어렵다.
밥 이외에 꽤 많은 쌀 소비가 가능한 음식은 무엇일까? 기껏해야 떡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떡볶이가 아닐까? 물론 밀떡볶이를 선호하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떡볶이의 상당량도 밀이 점유하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쌀에 부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음식은 소수에 불과하다. 반면 밀로 만들어지는 제품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큰 들에서 보면 과자와 면으로 양분되지만 아다시피 과자의 종류는 수 천 가지이고 매년 엄청난 신제품이 출시된다. 면, 특히 라면의 경우도 역시 매년 다양한 신제품이 쏟아져 나오면서 밀의 소비를 증가시키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위 통계 자료와 같이 최근 몇 년간 쌀의 소비량은 줄고는 있지만 감소 추세는 상당히 둔화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정확한 이유가 무엇인지는 전문가의 연구 결과가 있겠지만 내 생각에는 경기 둔화가 오히려 쌀 소비량 감소를 늦추고 밀 소비량 증가의 속도도 동시에 늦추고 있는 것 같다.
최근 몇 년 동안 '과자값도 아끼고 집에서 혼술할 정도로 경기가 어렵다'는 말을 많이 들었을 것이다. 특히 물가의 폭등과 환율 변동으로 인하여 수입 물가 또한 증가하고 있어서 99%가 수입인 밀가루의 수입원가 증가는 제조 원가 증가 그리고 판매가 증가로 이어지며 이것은 자연스럽게 소비 둔화로 연결된다. 도미노 효과이다. 잔뜩 부풀어 오른 과자 봉지를 까면 불과 1/3만 차있는 경우가 많다. 어딘지 모르게 좀 변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과자나 파이류는 사이즈를 줄였을 가능성이 100%이다. 잘 모르겠지만 포장지는 같은데 용량을 400gram에서 380gram으로 줄이기도 한다. 20gram이면 5%의 원가 절감이다. 회사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5% 원가 절감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 것이다. 제조사가 그 유혹을 떨치기는 참 어려울 것 같다. 물론 그들을 두둔하는 것은 아니다. 얍쌉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80년대 초에는 쌀도 귀했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쌀이 귀한 것도 있지만 그 외에 먹을 거리가 별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주식으로 삼고 있었던 쌀의 소비량이 많을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가격도 만만치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당시 형편이 넉넉치 못한 집에서는 밀가루를 포대로 사 놓고 집에서 부침개를 많이 해 먹었었다. 간식의 개념도 있지만, 그와 동시에 끼니때 섭취하는 음식의 양과 영양이 부족하니 가끔 밀가루로라도 보충을 했던 것이다. 물론 가격이 쌌기 때문에 밀가루에게 그런 역할이 부여되었다.
다들 알겠지만 예전에는 밥그릇이 상당히 컸었다. 내가 겪은 80년대에도 밥 그릇의 크기는 상당히 컸다. 최소한 지금 밥그릇 보다는 2배의 용량은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진에 따르면 2013년에 190ml로 나오는데 2024년 현재 식당에서 나오는 공깃밥을 보면 150ml도 안되는 것 같다. 옛날 밥그릇의 1/2 크기 만한 납작한 쇠밥그릇을 사용하면서 그나마 꽉 채우지도 않고 잘해야 3/4 정도 채워서 나온다. 밥을 좀 먹는 사람은 3~4수저를 뜨면 없을 양이다. 물론 크기가 줄은 데는 이유가 있다. 예전처럼 밥만 든든히 먹고 식사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다채로운 반찬과 함께 밥을 먹기 때문에 밥의 양은 그에 비례하여 서서히 줄어갔다. 이런 식으로 밥 그릇의 크기가 줄긴 했지만 아무튼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이 작아져 버렸다.
빵의 어원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불어로 Pain이고 이걸 대충 '뺑'이라고 발음한다. 스페인어도 Pan 이다. 모두 그리스어인 pa 그리고 라틴어인 panis 에서 유래되었을 것이다. 내가 본격적인 빵의 역사를 말할 정도로 아는 것은 물론 없다. 다만 가랑비에 옷 젓듯이 각종 빵이 우리 주위를 완전히 둘러싸게 되었다는 것만은 명확히 인지하고 있다. 1980~90년대만 해도 동네 빵집에서 직접 만들어서 파는 형식이 대 부분이었지만 요즘은 다양한 체인식 베이커리가 동네의 주요 모퉁이에 점포를 열고 '빵집'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작은 빵집에서 체인점 형식의 베이커리로 진화한 '빵집'의 진화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초대형 베이커리라는 신문화를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지난 3월에 가족과 함께 방문한 김포에 있는 포지티브스페이스566이라는 초대형 카페는 내 상상을 뛰어넘는 '빵집'이었다. 가장 많은 좌석(2천석이 넘는다)이 있어서 기네스북에 올랐다고 한다. 순전히 기네스 북에 올리기 위하여 의자와 탁자로 온 공간을 꽉 채워놔서 여유로운 카페의 모습은 아니다. 아무튼 빵집이라고 할 수 없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써의 역할에 모자람이 없을 정도였다.
누가 봐도 빵집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이 공간에서 가장 큰 역할을 차지하는 제품은 카페의 주 메뉴인 음료와 더불어 빵이 차지하고 있다. 아니 빵이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엄청난 자본을 들여서 어마어마한 크기의 특이한 볼거리가 탄생한 것이다. 건물 외관부터 황금색으로 매우 특징적이었고 내부로 들어가면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다양한 장식으로 뒤덮여 있어서 놀라움과 희안함을 동시에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즉, 큰 시각적 자극을 받게 된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어떤 큰 자극을 받으면 그 다음엔 더 큰 자극이 필요하다. 나의 경우도 이 때 큰 자극을 받았기 때문에 다음엔 더 큰 자극이 필요할 것 같다. 다시 말에서 다시 거기에 갈 것 같지는 않다는 말이다. 마구 때려 부수고 우주 공간을 날아다니는 장관으로 가득찬 액션 영화를 볼 때 큰 흥미를 느끼지만 그런 영화를 다시 또 볼 생각이 나지 않는 것과 약간 유사한 것 같다.
풍족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내서 그런지 그때 먹을 수 있었던 빵은 기껏해야 단팥빵이었다. 물론 자주 먹지도 못했다. 간혹 페이스츄리 빵을 먹기도 했지만 매우 드문 경우였고 잘 해야 맘모스빵이었다. 그런데 아주 간혹가다가 아주 달고 부드러운 카스테라 빵을 먹기도 했다. 다들 알겠지만 카스테라(정확한 발음은 카스텔라이다. 스펠링이 Castella 다)는 일종의 구운 케이크인데 매우 푹신푹신하고 우유 혹은 커피와 매우 잘 어울린다. 당시엔 우유도 귀했기 때문에 물과 같이 먹어도 그 맛은 너무도 달고 좋기만 했었다. 지금도 베이커리에 가면 한 켠을 차지하고 있다.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일 것이다.
어제 집 근처로 내가 퇴직한 회사 후배 사원이 찾아 왔었다. 집에서 가까운 카페에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뜻밖에 그 친구가 카스텔라를 가져왔던 것이다. 난해하여 도저히 손에 잡기가 두려운 마르셀 프루스트의 A la recherche du temp perdu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화자인 '나'는 마들렌을 홍차에 찍어 한 조각 먹으며 콩브레에서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그 길고 긴 소설이 시작된다고 한다. 그의 책을 읽어 보려고 시도는 했지만 곧 포기할 정도로 난해했고 그의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기는 내게 너무 벅찼기 때문에 빠르게 포기했던 기억이 난다. 유일하게 기억하는 것이 마들렌을 홍차에 찍어 먹으면서부터 그의 기억이 소환되어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고 매우 세밀하게 주변의 먼지 한 톨의 움직임도 놓치지 않고 면밀하게 묘사하는 길고도 긴 글이 끝없이 계속된다는 것 정도이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마들렌처럼 카스텔라도 내게 과거의 향수와 기억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한 곳에 담은 커다란 추억의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이곳에서 추억의 이야기를 더 하지는 않을테니 걱정 말라. 내가 그 추억에 잠긴 것은 오늘 아침에 커피와 함께 먹을 때였다. 어제는 그런 과거의 추억 보다는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느껴지는 감사함과 고마움 그리고 표현하기 어려운 뿌듯한 느낌 뿐이었다. 퇴직한 상사를 그것도 본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노땅'인 사람을 젊은 사원이 일부러 시간을 내서 찾아와 안부를 묻고 마음을 전해 준다는 것은 그런 대접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무한한 가치를 갖는다. 30년간 회사 생활을 하면서 단 한명이라도 진심으로 나를 기억해 주고 고마워해 주는 동료나 후배가 있다면 그 사람은 단언컨데 회사 생활을 헛되이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 생각이다. 내게 그런 마음을 느끼게 해 준 젊은 후배에게 감사할 뿐이다.
그 후배는 매우 똑똑하고 현명하고 업무 능력은 말 할 것도 없이 뛰어나다. 무수한 장점을 갖고 있는 우수한 사원이다. 물론 단점은 있다. 어제 그 친구에게도 이야기 했지만 단점은 당사자도 잘 알고 있으니 굳이 이야기할 필요 없고 따라서 늘 장점을 보도록 노력하라고 이야기를 했었다. 그런데 난 오늘 그 친구의 단점을 이야기 하려고 한다. 당사자도 다 알고 있으니 단점은 말하지 말라고 하고 내가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앞뒤가 맞지 않지만 이건 해야 하겠다. 무엇이냐하면 그 친구의 단점은 자신의 능력을 여전히 약간 의심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자신에 대한 신뢰가 약간 부족하다는 것이다. 어제 반복하여 이야기했으니 이젠 자신에 대한 신뢰가 꽤 두터워졌을 것으로 믿는다.
어제 거의 2시간 정도 많은 이야기를 해 줬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했고 꼭 들었으면 하는 이야기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언을 다 했다. 꼭 카스텔라는 받아서 그런 것은 아니다. 아무튼, 오늘 아침에 귀한 선물로 받은 카스텔라와 블랙 커피로 모처럼 과거를 회상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그 친구 덕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추억에 한 명이 추가되었다. 그래서 더 행복한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