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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glecs May 08. 2024

소확행 그리고 소확횡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아서





소확행(小確幸)


 이 단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에서 처음 쓰인 말이다. 1986년도에 출간된《랑게르한스섬의 오후》라는 책이다. 막 구어낸 따끈한 빵의 부드러운 질감과 따스함을 느끼면서 찢어 먹을 때 그리고 옷장 서랍 안에 깔끔하게 정돈된 속옷을 볼 때 느끼는 잔잔한 행복감 혹은 만족감 같은 바쁜 평소의 일상에서 느끼는 작은 즐거움이나 행복을 소확행이라는 말로 표현한 것이다. 그 작가에게 작지만 정말 확실한 행복은 그런 사소한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보통 느끼는 소확행은 어떤 것을 소비하는데에 있는 것 같다. 작은 나만의 행복을 위하여 '뭔가 산다'는 느낌이 강하다. 나만의 소확행으로 작은 선물을 내게 주는 것을 보통 소확행이라고 이라고 하니까 말이다. 당신의 소확행이 소확행을 처음 사용한 원작자가 의도한 바로 그 '소확행'인지 아니면 꽤 왜곡된 '소비적 성향의 소확행'인지 잘 살펴보기 바란다. 


 우리의 '소확행'이 왜 소비지향적이 되었는지도 살펴 봐야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는 일단 뭔가 물질적인 면에서 우선적으로 행복을 찾기 때문이 아닐까? 따라서 큰 '소비'를 하면 더 행복하겠지만 형편상 그게 어려우니 '작은 소비'를 통해서 행복을 찾으려는 것이고 따라서 그게 우리의 '소확행'이 되는 것이다. 애초에 행복이나 만족감이 우리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온다는 명제가 우리 뇌리에 새겨져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행복이나 만족감은 외부에서도 찾을 수 있겠지만 동시에 내부에서도 찾을 수 있다. 욕망의 수준을 억제하여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부터도 충분한 만족을 얻을 수도 있고, 심지어 별로 가진 것이 없어도 자신의 현 상태에 대하여 불만이 없다면 그 상황에서도 그는 행복할 수 있다. 그의 행복의 원천이 내부에 더 많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없는 것을 갈구하고 욕망하면서 그것을 '혹시라도 얻을지도 모르는' 가능성만 쳐다보며 현실에 불만족하기 보다는 현 시점에서 내가 갖고 있는 것을 돌아보고 그것을 향유하면서 '이미 주어진' 것으로부터 나만의 행복을 찾는 것이 어떨까? 요즘 나만의 소확행 중의 하나는 이런 종류의 글쓰기이다.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어하고 만족해 할만한 수준의 글을 쓸 수는 없는 '내게 주어진 쓰기 능력의 제한적 수준'을 잘 알기 때문에 그냥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 한도 내에서 쓸 수 있는 글을 쓰고 그것을 다시 읽는 과정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 노트북 가동에 필요한 약간의 전기 이외에는 소비할 것이 없기도 하니 진정한 의미의 소확행에 가까운 듯하다. 




소확횡(小確橫)


‘소확횡’(小確橫)이란 말도 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횡령'이라는 뜻이다. 직장인들 사이에서 유행한 말인데, 경기가 둔화되고 그에 따라서 직장인들의 수입 증가 속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직장인들 중 일부가 회사와 무관한 일, 특히 비용이 수반되는 일을 회사에서 해결하곤 하는데 그걸 '횡령'이라고 표현한 것 같다. 예를 들면 개인적인 인쇄물이 필요할 때 회사의 프린터를 이용하고, 커피를 마시고 싶으면 탕비실을 자주 이용하는 식이다. 


 이정도 라면 나도 재직 중에 '소확횡'을 꽤 한 것 같다. 집에 프린터를 없앴기 때문이다. 사 놔도 자주 쓰지 않으니 몇 달 방치하면 잉크가 굳어버리곤 해서 프린터 3대 정도를 어쩔 수 없이 폐기한 후에 더 이상 프린터를 사지 않았다. 회사에서 다양한 업무 관련 자료도 프린트를 했지만 그 외에 사적인 인쇄물도 필요했는데 그때는 회사의 프린터를 사용했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니 소확횡이 맞다. 물론 탕비실도 이용을 했는데 이건 우리 나라 문화에서 일반적으로 허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있는 커피를 왕창 가져다가 혼자 독식을 한다던지 하는 수준만 아니라면 소확횡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아주 명확하게 '소소하지만 확실한 횡령'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친구를 딱 한명 경험했는데 회사 내에서 워낙 소문이 자자했고 그의 '소확횡'에 대한 목격자도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오해는 아닐 것이다. 그의 소확횡은 대충 아래와 같았다. 


 회의 후에 회의실에 남겨진 음료와 스낵 그리고 컵등을 챙겨간다. 그 많은 음료가 그의 집 냉장고에서 발견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가 챙긴것이 확실하다. 무엇보다 나도 그가 챙기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고객 전용 화장실의 핸드 타월 화장지를 통째로 빼낸다. 이건 회사 미화반 여사님의 불평의 소리를 내가 직접 들었다. '도대채 채워 놓기만 하면 조금도 아니고 통으로 빼가요' 라는 여사님의 짜증섞인 목소리를 아직도 기억한다'. 그리고 여사님의 불평을 듣던 그날도 난 그가 상당히 불룩해진 백팩을 매고 만족한 얼굴로 퇴근하는 것을 봤다. 


 그리고 다른 방식도 있었다. 그는 부서원들과 부페로 회식을 가면 피자를 꼭 챙겼다. 친절하게 그 노하우를 동료들에게 알려주기도 했었다. 종이컵속에 피자를 둘둘 말아서 넣는 것이다. 약간 큰 컵 몇개면 피자 한판이 들어간다고 했다.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이런데 아이디어를 짜내느라 일할 여력이 없었던 듯 싶다. 그가 우수한 업무 능력을 보이지는 못했으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고객을 모시고 식사를 하면 먹은 것 이상으로 결제를 하고 나중에 와서 그 차액 만큼 포장을 해서 갔다고 한다. 그외 더 무엇이 있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한 번이면 애교로 봐주겠지만 반복적이었기 때문에 소확횡을 넘어선 그냥 '횡령'이 아닐까? 이에 비하면 프린트나 탕비실 커피는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왜 횡령을 했을까? 

 

 도벽일까? 만약 맞다면 그는 이별, 헤어짐 등 중요한 개인적 관계의 종결과 같은 매우 커다란 스트레스라도 있어야 한다. 그런 시기에 병적 도벽이 일어나는 경향이 있으니 말이다. 병적 도벽은 불필요한 물건을 계속 훔치려는 '항거할 수 없는 충동이나 욕구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이 주요 증상이다. 


 이런 사람도 자신의 행동에 죄책감을 느끼고 수치스럽게 여긴다고는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충동을 이길 수 없다니 병은 병인 모양이다. 그의 경우는 수 년간 그런 행위가 지속되었기 때문에 소확횡을 넘어선 병적 도벽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래도 동료의 물건이나 금품에 손을 대지 않으니 범죄가 될 수는 없고, '유죄가 내려질 수 있는 도벽'의 범주에 들어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 


 아무튼 그가 너무 음료와 스낵에 손을 많이 대서 탕비실을 관리하는 여직원이 분주하게 돌아다니면서 회의가 끝난 방에서 남은 비품을 황급히 수거하곤 했는데 아마도 여전히 서로 숨바꼭질을 하고 있을 것 같다. 그가 왜 그랬고 왜 지금도 그러고 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다만 그가 도를 지나쳐 동료의 물건에만 손을 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때는 감옥에 가야 할 것이다. 




진짜 도둑은 누구일까?


 여러분들이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당신이 소확횡을 하는 동안 회사는 당신들 자신의 모든 것을 훔치고 있으니 말이다. 월급 받고 일하는데 무슨말이냐고? 다는 아니겠지만 많은 회사에서 10분 지각하면 휴가로 처리한다. 그런데 1시간 일찍 출근하면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한 시간 일찍 퇴근하면 조퇴 처리하라고 하지만, 야근하면 수당을 주지 않는 경우가 매우 빈번하다. 무슨 제5공화국때 이야기냐고 이야기를 하는 분도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 나라의 기업 문화는 여전히 20세기에 머물고 있다. 당신이 다니는 회사는 그렇지 않다고? 축하한다. 당신은 운이 꽤 좋은 편이다. 늘 그렇듯이 운이 좋은 사람보다는 운이 평이하거나 나쁜 사람이 많다. 즉, 운이 좋을 확률이 높지는 않다는 것이다.  


(출처 : 네이버 이미지)


 회사의 성장과 발전을 통하여 개인의 경력을 개발하고 그에 준한 보상을 받기 때문에 이정도는 희생해야 한다고 말 할 사람은 오너 밖에 없다. 직원 중에서 그렇게 이야기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렇게 이야기 하지 않으면 입장이 곤란해지기 때문인 경우 밖에 없다. 다 마음 속으로는 불합리함을 알고 있지만, 그게 현실이니 감내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을 뿐이다. 


 365일 그러는 것도 아니고 간혹 가다가는 야근도 할 수 있고 주말에도 업무를 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니냐, 그러니 좀 늦게 퇴근 하고 일찍 나오는 것에 대하여 매번 보상을 요구하면 조직인으로써 자격도 없고 로열티도 없는 문제가 있는 사람이 아니냐? 라고 말하는 사람 역시 오너 혹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을 속이는 사람 밖에 없다. 아무튼 일회성이나 매우 낮은 빈도가 아니라 매우 잦은 빈도로 반복적으로 끊임없이 사원에게 불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이건 사원에 대한 회사의 도둑질, 즉 도벽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사원의 시간, 즉 사원의 삶의 지속 기간 중 상당한 부분을 허락도 없이 그리고 보상도 없이 "뽀린 것" 아닌가? 물론 내가 이 글을 통해서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상황은 바뀌지 않을 확율이 200%이다.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면 당신은 뭘 바꿔야 할까? 당신이 바뀌면 된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려하지 말고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것이 현명하다.   


 많은 수의 대한민국 직장인들은 이런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면서 계속 자신의 삶을 내 주고 있다. 충성심, 회사의 목표 달성이라는 목적을 위하여 자신을 내 버린다. 당신에게 달성하도록 부과된 목표는 회사의 목표이다. 자신의 목표가 아니다. 회사에 다니면서 어떻게 그렇게 이야기하냐고? 두 손을 가슴에 얹고 생각해 봐라. 회사가 목표를 달성했을 때 본인에게 주어진 것이 무엇인지. 아마도 다음 목표를 달성하면 뭔가 해 주겠다는 공허한 약속이 주어졌을 것이다. 


 회사라는 시스템은 그렇게 여러분들의 영혼을 "뽀리고" 있다. 약간의 보상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 보상에 만족한 적이 있었나? 다른 예를 들어서 설명하겠다. 고객이 만족할 만한 서비스나 품질의 수준이 무엇인지 아는가? 반품할 정도가 아닌 수준의 품질과 고객이 비즈니스 관계를 끊을 정도로 화를 내지 않고 참을 정도의 '최저'의 서비스 수준이다. 왜냐하면 그 수준의 제품과 서비스가 가장 비용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회사에게 있어서 사원도 고객이다. 회사나 장사꾼은 보통 물건을 팔고 이익을 남긴다. 회사는 사원에게 급여를 주는데 일을 한 만큼 줄 생각 자체가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이익을 더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재직하고 있는 회사가 당신에게 당장 퇴사하지 않을 정도의 급여와 불만은 있지만 폭동이 일어날 정도가 아닌 업무 환경을 제공하는 이유이다. 그 환경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따라서 회사가 바뀌기를 기대하는 것 만큼 여유로운 생각도 없는 것 같다. 다시 말하지만 회사가 아니라 당신이 바뀌어야 한다.    


 진짜 도벽은 소확횡을 하는 그 사람인가 아니면 그가 속해있는 그 회사인가? 어쩌면 그 회사는 소확횡이 아니라 대확횡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 개개인의 개성을 제거하고 몰살하면서 회사라는 시스템을 위해서만 살기를 강요하니 말이다. 물론 나를 비롯한 일반 직장인들은 자신들의 선택에 따라서 그런 삶을 살았거나 살고 있는 것이니 그 현실을 비판하면서 불평만 하는 것도 현명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냥 조직속에서 매일매일 매몰되어 있지만 말고 잠시라도 깨어나서 하늘을 보면 어떨까? 당신이 속한 회사는 지구라는 땅덩어리의 수억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디 작은 영역에 불과하다. 당신이 고개를 처들기만 하면 볼 수 있는 하늘의 크기는 설명할 필요 없이 거대하다. 시각을 넓혀서 더 넓은 곳이 존재함을 늘 잊지 말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횡령'을 하는 친구도 남은 음료와 스낵 그리고 핸드 타월을 찾아서 회의실과 고객용 화장실을 기웃 거리지 말고 그 시간에 넓은 하늘을 쳐다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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