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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glecs Aug 01. 2024

직장인에게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

가을 이야기 - 여섯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자기와 잘 맞는 사람만 이해해서는 별로 의미가 없다. 이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책임을 전가하는 사람, 말 끝마다 욕을 하고 트집을 잡는 사람,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지시를 내리는 사람, 아무것도 아닌 것 가지고 나를 협박하고 험한 말을 하는 고객 등과 같이 호의적이지도 않고 공감 능력도 떨어지는 사람도 부지기수이다.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이런 사람들까지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인문학을 단순화시켜서 사람 공부라고 늘 생각해 왔다. 실제로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많은 유형의 사람을 겪었고 그들로부터 해를 입기도 하고 덕을 보기도 했다. 내가 해를 입은 경우엔 이미 입어 버린 그 해로 부터 배울 것을 찾았고 덕을 보면 감사한 마음으로 그의 '덕'을 즐겼다. 이말을 통하여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인문학, 즉 사람 공부는 사람에 대한 이해이며, 이는 그러한 사람들로부터 초래된 여러 상황에 대한 이해까지 반드시 확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 공부


  이 글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밖에 없는 사회 생활을 하는 직장인, 특히 경험이 짧은 젊은 직장인에게 드리는 글이다. 물론 어느 정도 경륜이 되는 분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 독서량을 고려하면 직장 생활에 경륜이 많이 쌓여도 인문학에 대하여 많은 경험이 있는 분들이 적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인문학이라는 단어는 약간은 현학적으로 느껴지지만 사실은 매우 단순한 주제이다. 인문학은 그냥 사람 공부가 전부이다. 사람 공부라면 낯이 설 것이다. 당연하다. 그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살아 내느라, 직장 잡느라, 그리고 이것 저것 하느라 말이다. 정작 내 주변엔 온통 사람 밖에 없는데 사람에 대한 공부는 하지 않았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지 않나? 


 대기중의 공기가 없으면 우리는 몇 분안에 죽음에 이른다. 그런데 평소에 공기의 존재 그리고 그 고마움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언제나 있으니까 인지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 사람이 없다면 우리가 죽어 버릴까? 결국은 그렇게 되겠지만 몇 분만에 죽지는 않는다. 나를 제외한 사람이 정말 없어진다면 오랜 외로움을 겪어야 하고 그들로부터 향유해 온 다양한 기회와 서비스가 사라질 것이다. 이렇게 사람을 공기와 비교한 것은 그만큼 사람이 중요하고 우리는 그 중요한 사람을 소중히 생각해야 하며, 따라서 그 사람과의 관계를 상호 보완적으로 만들어 갈 필요가 있고 그러려면 우선 내 주변 사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선적으로 우리의 주변인들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결국 그게 사람 공부, 즉 인문학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첫 과정이 될 것이다.  


 한동안 인문학이 유행이었다. 물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있어 하는 영역이기도 하다. 어떤 이유에서 인문학이 한동안 유행이었고 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지 그 배경은 잘 모르겠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아마도 많은 사람들에게 인문학이 필요했을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찾는 것이지 다른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유행과도 같다. 너도나도 김밥 형태의 겨울 파커를 입고 다녔던 시기가 있었다. 한참 전 이긴 하지만 노스페이스라는 브랜드가 유행하여 학생들이 죄다 그 브랜드의 패딩을 입고 다닌 적도 있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인문학이라는 형이상학적 개념을 단순하게 의류하고 비교하려는 것은 아니다. 요점은 그냥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고 또 그걸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데에 그들 중 상당수가 공감하기 때문에 인문학이 유행이었던 것이고 여전히 유행을 하고 있는 중이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너도 나도 롱패팅에 관심을 두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러나 인문학 즉 사람공부는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데에 있어서 롱패딩 따위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큰 효용을 가진다.  




인문학이란  


 인문학(人文學,humanities)은 자연과학(自然科學,natural science)의 상대적인 개념으로 주로 인간과 관련된 근원적인 문제나 사상, 문화 등을 중심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을 지칭한다. 자연과학이 객관적인 자연현상을 다루는 학문인 것에 반해 인문학은 인간의 가치와 관련된 제반 문제를 연구의 영역으로 삼는다. (출처: 네이버)  


 그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은 아니다. 그래도 더 줄여보자. 내 생각에 인문학은 그냥 사람에 대하여 배우는 것이다. 위에 인간과 관련된 이라는 전제가 있었듯이 인문학은 오로지 사람에 관한 것이다. 즉, 다른 사람과 어떻게 하면 잘 지낼 수 있는지를 배우는 것이다. 너무 저렴한 표현인가? 그런데 이렇게 쉽게 접근해야 인문학의 본질에 정말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고 난 감히 생각한다. 그 개념을 설명하면서부터 무슨 사상이니 문화니 하면서 말이 길어지면 이미 독자는 눈빛이 흐려지면서 집중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가능하면 간단하고 쉽게 표현하는 것이 평균적인 지식과 이해도를 가진 사람들에게 좋다. 물론 나를 포함해서다. 만약 시험에 기업이 추구하는 바에 대하여 설명하라는 질문이 나온다면, 그에 대한 답은 상당히 다채로울 수 있다. 주어진 분량(답도 분량이 정해지는 경우가 있다)에 제한이 없다면 책을 한 권 써도 모자랄 정도로 폭넓고 깊은 대답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간단히 답을 하는 경우라면 '영리를 추구하기 위하여 일련의 활동을 효율적으로 하는 법인으로 자본, 자원 그리고 인적 자원을 활용하여 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1차적 목표로 하며....' 와 같은 류의 기술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위와 같이 수사적으로 길게 늘어 놓은 답도 간단히 줄여서 말하면 '기업이 추구하는 바는 영리를 추구하는 것'이다. 여기서 더 줄이면 '돈 버는 것'이다. 맞지 않나? 수익이 없는데 자원을 계속 투입할 도리는 없다. 따라서 수익이 당연히 제일 우선시 해야 할 핵심 요소이다. 그걸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기업이 존재할 토대와 근거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간편한 방식으로 기업 혹은 회사를 규정했듯이 같은 관점에서 인문학은 사람 공부라고 단정하고 싶다. 


  그러면 왜 직장인에게 인문학이 필요할까? 다시 말하면 직장인은 왜 사람 공부가 필요할까? 전자의 질문의 경우 일단 그 답을 하기 위해서는 한 템포 쉼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인문학'이라는 단어가 이미 비교적 높은 수준의 형이상학적 의미를 내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후자의 질문에는 아마 바로 답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인문학'이라는 말 대신에 '사람 공부'라고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럼 직장인은 왜 사람 공부가 필요할까? 일을 할 때 기본적으로 사람을 계속 상대해야 하므로 사람에 대하여 공부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게 오늘 주제의 답이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여기에서 글을 끝낼 수는 없다. 그러면 아래와 같은 추가 질문이 나올 수 있고 거기에 대한 답도 필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1. 왜 우리는 사람에 대하여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을까?


2. 그러면 사람에 대한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3. 그 공부를 하면 내게 어떤 이득이 있을까?   



 간단하게 3개의 질문에만 답을 해 보도록 하겠다. 




왜 우리는 사람에 대하여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을까? 


 내 생각엔 우리의 학교 시스템에는 인간에 대한 공부를 하는 과목이 구체적으로 지정되어 있지 않고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그 비중이 너무 낮아서 그런 공부를 했다 해도 한 것이 아닐 정도이다. 잘 알 듯이 학교에서는 대입을 위한 국영수 위주로 가르친다. 영어와 수학은 말할 것도 없고, 국어의 경우도 그 공부 과정 속에서 당연히 인문학적 접근을 피할 수 없지만 거기에서 사람에 대하여 배우는 것이 아니라 어떤것이 답인지를 찾는 것을 우선적으로 추구하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인문학 관련된 내용이 교재에 있었음에도 사람에 대하여는 배울 수 없는 모순이 성립되는 과목이 되어 버렸다. 나머지 과목도 비슷하지 않을까?   


 우리나라의 교육 시스템이 여전히 진화중(미성숙의 완곡한 표현)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인문학 교육은 대학이나 가야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역시 대학에서도 그 이후의 경쟁, 즉 취업을 위하여 취업에 유리한 전문성이 요구되는 영역에 집중을 할 수 밖에 없고 따라서 그 4년의 시간 동안에도 사람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하고 배울 기회는 별로 없다. 정확히 말하면 있지만 그걸 하기로 선택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학을 마치고 취업을 한다.     


 물론 사람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아도 그간 오랜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을 겪어왔기 때문에 사람과의 관계 정립은 어느 정도 할 줄 알고, 기본적으로 높은 공감 능력을 갖춘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의 비중이 많을 것 같지는 않다. 만약 사람을 이해하는 공감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이 지구상에 많다면 분쟁이 좀 줄어야 하지 않나? 그러나 주변을 둘러보거나 혹은 TV나 신문을 보면 우리 주변에서는 사람 간의 관계가 매끄럽지 못하여 발생하는 분쟁에 대한 기사나 정보가 넘쳐 흐른다. 사람 공부가 제대로 된 사람의 비중이 더 적다는 증거다.  


 심지어 집에서도 가족(아내나 남편, 혹은 자식)들과도 다투지 않나? 서로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믿지 못하는 분도 많겠지만, 만약 사람에 대한 공부가 충분하여 그 이해의 수준이 올라간 사람이 아내나 남편 중 한 명이라도 있다면 분쟁 혹은 싸움의 빈도는 극단적으로 낮아지게 된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한 쪽이 '다른 한 쪽의 인간'을 이해하고 포용해 주고 수용해 주면 싸움이 성립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떤 식이든 분쟁이 종료되는 방식은 매우 간단하다.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수용해 주면 분쟁은 종료될 수 밖에 없다.     




그러면 사람에 대한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게 참 어렵다. 실로 재미 없는 과정이고 많은 참을성이 필요한 과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대부분 이 공부를 오래 지속하지 못하곤 한다. 아무튼, 이 공부를 위하여 관련된 강좌를 들어도 되고, 책을 봐도 된다. 내 생각엔 본인의 성향과 맞는 인문 고전을 선정하여 반복적으로 책을 보는 것이 제일 효과적이다. 100권의 좋은 책을 딱 한 번씩 보는 것 보다 1권의 좋은 책을 10번 보는 것이 훨씬 효과가 좋다. 내 경험에 따르면 그렇다는 말이다. 다분히 개인적인 경험이 반영된 것이기 때문에 내 말이 옳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약간 벗어난 이야기이긴 한데, 독서에 대하여 잠깐 이야기하고 넘어가야 하겠다. 우리는 책을 본다. 많이 보는 사람도 많다. 일년에 몇 권을 봤네 하면서 독서량을 자랑하는 분도 계시다. 그런데 정말 그걸 읽었다고 생각하는가? 일부 두뇌가 아주 명석한 사람들은 책을 읽는 것도 빠르고 이해력도 높고 읽고 습득한 정보를 보관하고 처리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그런 분들은 정말 책을 읽는 양과 속도가 어마무시하다. 앞서서 ‘일부 두뇌가 아주 명석한 사람’ 이라고 했다. 이런 분들은 일부라는 말다. 그것도 극히 일부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범하다. 따라서 평범한 사람일 뿐인 나의 경우도 책을 한 번 읽고 덮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거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고, 그 책이 대충 어떤 내용이었다는 흐려진 기억만이 남게 된다. 기억력이 나빠서 일 수도 있는데, 사실 만화책을 봐도 책장 덮으면 얼마 가지 않아서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지 않던가? 재미있었던 상황 그리고 인상 깊었던 대사가 일부 기억날 수는 있지만 그 정도 일 것이다. 아주 재미있게 읽은 만화책도 이렇게 조금만 시간이 경과하면 기억에서 거의 사라진다. 그런데 책, 특히 인문학 책의 경우는 만화책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한 내용 그리고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책이다. 그런 책을 한 번 보고 봤다고 할 수 있을까? 내 상식으로는 불가능하다. 심지어 책 제목도 몇 일 지나면 가물가물할 때도 있다. 그런데 어떻게 그 책을 제대로 읽었다고 할 수 있을까?    


 여기에서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 무엇일지 유추할 수 있다. 사람에 대한 공부는 어떻게 하는가가 질문이었고 답은 ‘본인의 성향과 맞는 인문 고전을 선정하여 반복적으로 보는 것’이라고 하였다. 요점은 반복적으로 보는 것이다. 그래야 진정한 공부가 된다. 만화책도 아니고, 소설도 아닌 인문학 책을 반복적으로 보라는 말인데, 이게 정말 어렵다. 어지간한 독종이 아니고는 그 두꺼운 책을(인문학 책은 두꺼운 경우가 많다) 여러번 반복해서 읽기는 매우 어렵다. 심지어 대부분 그런 책들은 재미도 없다. 그러나 그런 과정을 거쳐야 책 속의 내용이 진정으로 몸과 마음속에 체화 될 기회를 얻게 된다. 책에 어떤 내용이 쓰여 있는지 보통 사람들이 몇 회의 독서를 하더라도 외울 수는 없지만, 그런 반복 학습을 지속하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책 속에서 안내받은 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게 되는 빈도가 증가하게 된다. 나도 모르게 그런 행위가 내 정신과 몸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고, 그 빈도수를 증가시켜가는 식으로 인문학 책 속의 정수를 내 속으로 체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어린 아이는 말하기를 따로 배우지 않는다. 반복적으로 우리말에 노출될 뿐이다. 그리고 어느 시점이 되면 입이 트이고 말을 하기 시작한다. 체화는 이런 식으로 이루어진다. 좋은 인문학 책에도 이런식의 노출이 필요하다. 그런데 책에 대한 노출은 스스로 해야 한다. 그래서 어려운 것이다. 만약 이런 작업이 쉬웠다면 이미 대다수의 사람들이 서로를 깊게 이해하고 존중하는 상태가 되었을 것이고 따라서 이미 세계 평화는 달성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아직 세계는 평화롭지 않다.      




그 공부를 하면 내게 어떤 도움이 되는가? 


 상당히 다양한 도움이 되기 때문에 할 말이 무지하게 많지만, 간단하게 몇 가지만 설명하고 이 글을 마치려고 한다. 먼저 난 이 글을 직장인을 대상으로 썼다. 따라서 직장인에게 필요한 인문학적 소양, 즉 사람에 대한 이해를 높게 했을 때 얻어지는 효과를 기술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회사에서 일할 때 모든 상대방은 사람이다. 후배도 사람이고 상사도 사람이고 고객도 사람이다. 그들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내가 공감능력이 있다는 것이고 이것은 그들과 잘 지낼 수 있는 기초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자기와 잘 맞는 사람만 이해해서는 별로 의미가 없다. 이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책임을 전가하는 사람, 말 끝마다 욕을 하고 트집을 잡는 사람,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지시를 내리는 사람, 아무것도 아닌 것 가지고 나를 협박하고 험한 말을 하는 고객 등과 같이 호의적이지도 않고 공감 능력도 떨어지는 사람도 부지기수이다.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이런 사람들까지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군상들을 이해한다는 말인가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는데, 만약 제대로 공부했다면 이해가 불가능하지는 않다. 물론 쉽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 지난(至難)한 공부를 오래도록 끈기 있게 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인문학을 단순화시켜서 사람 공부라고 늘 생각해 왔다. 실제로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많은 유형의 사람을 겪었고 그들로부터 해를 입기도 하고 덕을 보기도 했다. 내가 해를 입은 경우엔 이미 입어 버린 그 해로 부터 배울 것을 찾았고 덕을 보면 감사한 마음으로 그의 '덕'을 즐겼다. 이말을 통하여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인문학, 즉 사람 공부는 사람에 대한 이해이며, 이는 그러한 사람들로부터 초래된 여러 상황에 대한 이해까지 반드시 확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충분히 이해했지만 어떤 예기치 못한 상황(사람과의 관계에서 초래된)을 이해하지 못하면 별로 의미가 없지 않을까? 도대체 어디까지 이해를 해야 하냐는 말이 내 귓가를 스쳐지나가는 느낌이다. 진실을 말하자면 그것은 끝이 없을 것 같다. 우리가 사람이고 사람으로서 존재하면서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삶을 살아가는 한 그 끝은 우리의 삶이 끝나는 순간과 같을 것이다. 삶이 끝나면 더 이상 인간의 생명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해야 할 사람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람에 대한 공부, 즉 인문학에 대한 공부는 끝 없이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너무 멀리 갔나? 직장인의 인문학이 어쩌고 하더니 결국 죽을 때까지 사람 공부하라는 말이 아닌가? 


 맞긴 한데, 굳이 너무 멀리까지 보고 고민하지는 말라. 단순하게 접근하자면 지금 여러분이 지나고 있는 바로 이 순간에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먼저 이해하기만 하면 된다. 물론 시간이 걸리는 지루한 작업이다. 어쩌면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다. 아니 성공은 불가능하다. 어떻게 남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단지 얼마나 더 이해할 수 있냐이지 100% 이해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도 도전해야 한다. 그런 과정을 통과해서 가는 것이 삶이 아니겠는가? 인간인 이상 거쳐가야만 할 과정 말이다.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공부하냐고? 이 글을 제대로 읽었다면 뭘 해야 할지 감이 잡힐 것이다. 봐라, 이 짧은 글도 읽다보면 앞에 본 것이 기억나질 않지 않는가? 


 오늘 꽤 많은 말을 했다. 아무리 인내심이 많은 독자라도 이런 지루한 글을 여기까지 봤으면 더 이상 내 말을 듣기 힘들지 않을까? 그래서 길게 말하지 않고 책 추천으로 글을 마치려고 한다. 류시화 시인이 번역한 인디언 추장들의 연설문을 엮은 책인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 인가' 라는 책을 한번 읽어 보기를 권한다. 이 과정을 통과하면 인문학 혹은 사람 공부를 할 준비가 비교적 모라라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니 도전을 바란다. 물론 당연한 말이지만 단순한 추천이지 류시화 시인하고 나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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