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이 지켜질지 그러지 못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가 아니라
우리가 이룬 성공의 크기일지도 모른다.
이 말은 보통 어떤 것에 대한 성취를 꽤 이룬 경우에 하곤 하는 말이다. 어떤 분야이건 한 분야에서 적당한 크기의 성공을 이루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만에 빠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 처하는 것을 예방하고 경계하기 위하여 '초심을 잃지 않겠다' 라고 자신에게 주문처럼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성공을 이룬 후 자만에 빠져서 다시 퇴보하기를 바라지 않는 타인에게 '초심을 잃지 말라' 라고 조언의 형식으로 해주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실패를 한 후에 이런 말을 하거나 듣는 경우는 별로 없다. 물론 실패 후에 '초심을 잃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어법상 틀린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실패에는 어울리지 않는 문장이다. 실패에는 '정신을 다시 차리겠습니다'가 더 어울리는 문장이다.
무슨 말이든 자신의 입으로 토해 내는 것은 쉽지만 그것을 그대로 지키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말을 하는 것과 그것을 온전히 지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입에서 나온대로 행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입에서 나오는 말중 상당 부분이 화자(話者)의 의지나 기대 그리고 희망을 주요 성분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랬으면 좋겠네요', '꼭 해내겠어!' 등과 같이 말이다. 희망과 기대가 담긴 근미래 표현은 거의 무한대로 존재한다. '내일 부터는 담배를 끊겠어', '다음주부터는 술을 입에도 대지 않겠다', '이달 예산은 반드시 200만원 이내로 통제할테다', '공부를 열심히 하겠습니다', '다시는 지각을 하지 않겠습니다', '정신 똑바로 차려서 실수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문장은 밤이 새도록 생각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근미래에 대한 희망과 의지가 담긴 말을 죽는 날까지 내 뱉는 것에 대하여 너무 죄책감을 가질 필요까지는 없다. 굳이 변론하자면 인간의 삶의 방향이 시간의 흐름을 따라 대부분 미래를 향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당장이 아닌 근미래의 상황에 대하여 말을 하는 경우가 많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입을 통하여 배출된 말들이 그대로 시행되는 경우가 극히 적기 때문에 함부로 말을 하지 말라고 옛부터 그렇게도 성현(聖賢)들께서 조언을 하셨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자신의 다짐에 대한 말이든 아니면 타인에 대한 평가의 말이든 모두 신중해야만 하겠다. 혀 아래 도끼가 들어있으니 말을 늘 삼가라는 설저유부(舌底有斧),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니 조심해야 한다는 설참신도(舌斬身刀) 등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사자성어는 상당히 다양하게 존재한다. 여기서 내 혀는 남의 몸을 벨 수도 있지만 동시에 자신도 무참하게 벨 수 있기도 하다. 바로 자신에게 하는 부정적인 말이 그것이다.
사실 '초심'이 지켜질지 그러지 못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가 아니라 성공의 크기일지도 모른다. 보통 작은 성공 혹은 보잘 것 없는 성공을 이룬 사람은 대부분 초심을 지킨다. 성공의 크기가 작다는 것은 그것을 시작할 때와 비교하여 별 차이가 없는 작은 진전만을 이루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초심을 지키지 않을 수도 없다. 뭐라도 이룬 것이 있어야 자만에 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신규로 점포를 열어서 매월 매출 5천만원 그리고 모든 비용을 제하고 2천만원의 순수익을 목표했는데 3개월이 지나서 월매출 3천 5백만원에 순수익 5백만원이 된다면 목표했던 수준과 비교할 때 아직 성공이라고 할 수가 없다. 적어도 완전한 실패는 아니지만 아직 기대하는 수준의 성공에 이르려면 한참을 더 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은 쉽게 자만할 수가 없다. 따라서 계속 초심을 유지하면서 열심히 일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반면에 비교적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은 초심을 잃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정치인으로서의 작지 않은 성공인 국회의원에 당선 된 후에 초심을 잃지 않고 진정으로 자신을 희생하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 정치가가 그렇게 많은 것 같지는 않다. 가정이긴 하데 특히 일부 정치인의 경우는 어쩌면 '당선되기 전에 품었던 초심'조차 위선이었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한다. 일부이긴 하겠지만 그들중 어떤 이는 국민을 위하여 봉사하기 위해서 출마했다고 목청껏 외쳐대는 구호부터 진심같지 않다. 정치인도 결국 하루 세끼를 먹고 80세 언저리면 세상을 떠나는 지극히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들만은 진정으로 자신의 한 몸을 바쳐서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희생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도 무리다. 그래봐야 우리와 같은 동물인 인간일 뿐이지 않는가? 물론 일부 초심을 심하게 잃은 자들을 두둔할 생각은 없다.
그리고 일반인과 비교하여 비교할 수 없이 높은 수입을 올리는 연예인의 경우도 초심을 잃지 않은 연예인은 성공하지 못한 연예인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초심을 잃지 않은 프로 운동 선수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선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최근 구속된 오재원이라는 프로야구 선수가 만약 초심을 잃지 않았다면 마약 사범까지 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해당 구단에서 나름 상당한 위치를 오랜 기간 누려왔고 그에 따라서 많은 수입을 얻으면서 프로야구 선수로서 성공했지만 결국 초심을 잃고 마약에 빠져버린 것이 아닌가. 그에게 있어서 성공은 초심을 잃게 하는 강력한 도화선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성공은 참으로 달콤하지만 그걸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성공의 무게에 짖눌리게 될 수도 있다. 성공의 무게에 짖눌려서 초심을 잃은 사람은 특히 조직 속에서 많이 발견된다. 직급이 올라가면서 심하게 권위적이 되고 남의 말을 무시하고 듣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바로 그들이 성공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밑천이 드러난 사람들이다. 재미있는 것은 직급이 올라가서 조직 내에서 권위를 차지하게 되면 자신이 전혀 전문 분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그 생소한 분야에 대하여 아는 것이 늘어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 사사건건 간섭하면서 자신의 보잘것 없는 '전문 지식'을 과시하려고 든다는 말이다. 그런자들은 보통 이미 자신의 제한적 지식이나 경험에 따라서 자기만의 결정을 내놓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묻는다. 따라서 그가 이미 마음 먹은 결론은 진짜 전문가들이 어떤 훌륭한 의견을 내 놔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절차상 물어본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성공을 이루고 나면 초심은 거의 잃을 수 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 물론 초심을 잃지 않고 삶의 균형을 잘 유지하면서 명예와 부를 견고하게 잘 유지하고 있는 정치인도 있고 연예인도 있고 프로 선수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기업이라는 조직 속에서도 성공을 이룬 후에도 변함없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도 분명히 다수 존재한다. 아무튼 약간 회의적인 관점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초심을 잃지 않겠습니다!' 라고 스스로 다짐하는 것은 어차피 잃을 가능성이 높지만 그래도 최선은 다 할테니 내가 성공 후 초심을 잃어도 그런 줄 알라는 말을 돌려서 한 것일지도 모른다. 조금 냉소적으로 이렇게 이야기 한 것은 그만큼 성공 후에 '초심'을 유지하기가 버겁다는 말이 하고 싶어서이다.
간혹 내 눈에 좋은 문장이 써지면 행복감을 느끼기도 한다. 내가 쓴 글을 누군가 보고 한 톨이라도 그의 삶에 도움이 된다면 이것도 타인에 대한 기여라고 할 수 있다..............아무튼 나의 경우 글쓰기에 대한 나의 '초심'을 잃을 수 없는 상황임에 만족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룰 외적인 성공이 없으니 잃을 초심도 없다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가진 것이 없으면 잃을 것도 없다. 거지가 도둑 맞을 일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초심을 잃지 않겠다'라는 말은 처음에 세운 뜻을 이루기 위하여 한결같이 밀고 나가라고 스스로에게 당부하는 말이다. 처음에 그렇게 하기로 마음 먹은 대로 행동하고 사고하면서 내가 맞고 싶은 미래를 계속 완성해 가겠다는 말이다. 그리고 맨 처음에 가졌던 열정을 단 한톨도 잃지 말고 견고하게 유지하자는 단호함까지 들어있는 말이다. 어쩌면 무언가에 대한 성공의 염원이 가득 담긴 말이다. 단순한 세 마디로 이루어진 말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처절함과 절실함 그리고 간절함마저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욕망 덩어리일지도 모른다.
역설적으로 만약 초심을 잃어 봤다면 무언가에서 성공을 이루어봤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성공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초심을 잃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에 내가 세운 목표에 대한 나의 초심은 무엇이었을까? 사실 7월 1일에 이 한 달 만큼은 열심히 읽고 쓰자는 마음을 먹었었다. 시간이 흘러서 오늘이 바로 7월 말일인 31일이다. 7월 한 달도 계속해서 무엇이든 글을 쓰는 것이 목표였다. 쓰여진 글들이 많이 읽히건 적게 읽히건 관계 없이 계획한 대로 하루 한편 혹은 이틀에 한 편의 짧은 글을 써 오면서 7월 1일에 다짐한 초심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내가 초심을 잃지 않고 이렇게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니 아직 나는 글쓰기에서 제대로 성공을 이루지는 못한 모양이다. 글쓰기를 통해서 뭔가 이뤘다면 초심을 잃었을 텐데 그렇지 않아서 하는 말이다.
사실 내가 글을 쓰는 것을 통해서 성공의 형태로 얻고자 한 것은 특별히 없었다. 주로 내 가치관에 따른 다양한 사항에 대한 의견을 끄집어 내서 쓰기로 마음 먹었고 그래서 그런 내용을 주로하여 글을 쓰고 있을 뿐이다. 재미가 없는 것이 단점이긴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쓰고 있다. 이렇게 글쓰기를 통해서 당장 얻고자 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없었기 때문에 나의 글쓰기에는 성공에 대한 욕망이 없었다고 볼 수도 있다. 따라서 만약 '초심'이 성공을 이루고 나야 비로서 그 존재가 위태로워지는 것이라면 역설적으로 나는 당분간 '나의 초심'을 잃을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글쓰기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무언가 이루고자 하는 욕망은 없지만 그것을 당분간 계속 유지하고자 하는 목표는 있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성공의 욕망이 없는 목표다. 다분히 나의 가치관에 따른 목표이긴 하지만 어쩐지 헛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아주 조금있기는 하다. 내 말대로 성공의 욕망이 없는 목표도 결국 목표이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통해서 뭔가 이루려고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잠시 곰곰히 생각해 보니 그것은 다름아닌 내적 안정과 행복 그리고 자기계발 혹은 타인에 대한 기여 등이 아닐까 한다. 글을 쓰면 정신이 좀 정리되고 머리도 맑아 진다. 그리고 간혹 내 눈에 좋은 문장이 써지면 행복감을 느끼기도 한다. 내가 쓴 글을 누군가 보고 한 톨이라도 그의 삶에 도움이 된다면 이것도 타인에 대한 기여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분해해서 설명해 놓고 보니 외적인 성공의 모습은 갖추지 않았지만 그래도 내 기준에서는 만족할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나의 경우 글쓰기에 대한 나의 '초심'을 잃을 수 없는 상황임에 만족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룰 외적인 성공이 없으니 잃을 초심도 없다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가진 것이 없으면 잃을 것도 없다. 거지가 도둑 맞을 일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성공을 이룬 후에 혹시 잃어버린 初心이 있는가? 있다면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당신의 성공을 축하한다. 일단 성공을 했기 때문에 초심을 잃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을테니 말이다. 그러면 이제는 당신이 잃어버렸던 초심을 다시 찾을지 말지를 스스로 되짚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초심을 잃은 것'은 자만에 빠질 위험에 있고 결국 이룬 성공을 되물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