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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glecs Jul 27. 2024

느리게 살기

 이동 속도가 달라지면 다른 삶을 살게 되기도 한다. 감속에 따라서 다른 것을 보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빠르게 달리는 기차에서 밖을 쳐다보면 눈에 담을 수 있는 광경은 매우 제한적이다. 전투기 조종사의 경우 극도로 빠른 속도로 비행을 하게 되며 따라서 그가 볼 수 있는 시야는 속도에 비례하여 매우 좁아진다고 한다. 속도를 얻으면 시야를 잃게 되는 것이다. 역시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잃게 되는 것이다. 








차단된 현실


 엊그제 저녁 모임 중이었다. 저녁 식사가 거의 파할 때가 다가와서 멤버들과 다음 일정을 정하고 휴대폰의 캘린더 앱에 다음에 만날 시간과 장소를 입력하려고 폰을 열었더니 배경 화면이 뜨지 않고 암흑뿐이었다. 분명히 베터리에 충분한 전력이 있었는데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난데없는 검은색 화면에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한 달 전에 휴대폰 2년 약정이 끝나고서부터 발열도 심해지고 해서 찜찜하던 차였는데 드디어 사단이 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줍지 않은 지식으로 폰에 발열이 좀 발생해서 베터리가 방전 된 것으로 단순하게 생각했었다. 얼마 전부터 가끔 발열이 나는 경우가 있었고 또 2년 정도 썼으니 베터리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덕분에 송도에서 집까지 오는 거의 2시간 가까이 걸리는 대중교통을 통한 이동 시간 동안 어쩔 수 없이 휴대폰에서 해방된 IT 디톡스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지하철에 탄 사람들은 십중팔구 폰에 머리를 처박고 있었다. 폰에 중독된 채 말이다. 열명 중에 한두명은 눈을 감고 있어서 폰을 보지 않을 뿐이기 때문에 눈을 뜨고 있는 사람들은 전부 예외없이 폰질을 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하겠다. 대부분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 동영상을 보고 있었고 또 어떤 사람은 한 손으로 미친 속도로 카톡 대화를 날리고 있기도 했다. 일부는 이메일 화면을 집중해서 노려 보고 있기도 했다. 어딘가로 향하는 사람들으로 빼곡히 들어찬 그 공간에서 눈을 뜨고 있어도 폰 이외의 다른 곳을 쳐다봐야 하는 사람은 폰이 고장난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사실 집에서 약속장소로 이동할 때에는 나도 폰에 머리를 처박고 이런 저런 글을 보면서 갔었다. 그때는 나도 폰에 머리를 처박은 그들과 마찬가지였다. 


 대중 교통을 이용할 때도 그렇지만 차에서 내려서 집까지 걸어가는 동안에도 늘 폰 속의 음악을 듣는데 그날의 귀가길엔 음악도 들을 수가 없었다. 예전에 MP3를 따로 가지고 다녔을 때는 이런 경우가 생길 수가 없는데 폰 속으로 많은 기능이 압축되면서 이런 불편이 생기게 된 것이다. 정거장에서 집까지는 불과 천 보 정도만 걸어가면 되는 거리임에도 언제나 음악을 들으면서 걸었었기 때문에 음악 이외의 소음을 듣는다는 것이 왠지 낯이 설고 이상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어폰의 노이즈켄슬링 기능을 사용하기 때문에 한 번 이어폰을 끼면 외부의 소음이 상당부분 차단되는데 그런 이중의 방패막이가 제거된 상태로 외부 소음을 직격으로 맞으니 좀 더 색다른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사실 외부로부터의 그런 소리가 진짜 삶의 소리인데 그동안 귀를 틀어 막고 다녔기 때문에 진짜 삶의 소리를 없거나 불필요한 것으로 알고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어폰에서 나오는 소리는 기계적으로 만들어진 소리이기 때문에 사실 인공의 소리일 뿐이다. 인공의 소리를 진짜 소리로 알고 살았는데 인공의 소리에서 해방되면서 진짜 삶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들이 재잘대는 소리, 그들이 보도블럭 바닥을 신발바닥으로 스치듯이 뛰어갈 때 나는 발걸음 소리, 자동차 타이어가 노면을 밟아 으깨는 둔중한 소리. 이런 수 많은 진짜 소리가 있었는데 그 모든 진짜가 내 두 귀를 꽉 막고 있었던 두 개의 흰 바둑알 크기의 이어폰에 차단 당했던 것이다. 모든 것이 그렇듯이 한 가지가 없어지면 또 다른 무엇인가를 발견하게 된다. 인공의 소리가 없어지니 비로서 진짜 소리가 나타난 것도 이와 마찬가지다. 그동안 나도 모르게 나 스스로 차단 시켰던 나의 현실이 비로서 드러난 것이다. 




느리고 단순한 세상으로


 자연의 소리고 진짜 삶의 소리고 뭐고 간에 집에 오자마자 충전기에 폰을 연결했다. 그런데 왠걸? 곧 충전 상태를 표시하는 숫자가 빠르게 올라가더니 75%를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베터리 방전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 폰 속의 어딘가에서 전력을 차단하거나 끊기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문제는 문제니 수리를 맡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100% 충전 된 것을 확인하고 폰을 접어서(삼성 플립폰이다) 책상에 두고 다른 볼 일을 봤다. 그리고 잠시 후에 돌아와서 폰을 열어보니 또 폰은 꺼져있었다. 이때 단순한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계속 재부팅을 해보면서 이런 저런 방식으로 폰을 켜고 꺼봤다. 


 이제야 증상이 거의 완벽하게 드러났다. 폰을 접기만 하면 액정이 꺼져 버리는 것이다. 전원이 먼저 나가는 것이 아니라 액정으로 가는 전원이 차단되면서 화면이 먹통이 되고 그 후에 전원이 꺼지는 현상이었다. 혹은 접지 않아도 충전 연결선을 뺀 상태로 잠시 방치하면 얼마 후에 액정이 꺼져 버렸다. 그러면 이유는 두 가지로 압축된다. 액정이 나갔을 확률이 대충 90%이고 나머지 10%는 충전 연결선과 폰의 충전 단자간의 간섭에 의한 오작동이다. 다음날 서비스센터에 가서 확인한 결과 아쉽게도 나의 추측이 정확히 들어 맞았다. 액정관련 부속품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액정 자체에 문제가 없어도 한 어셈블리의 미세한 부분에 생긴 문제이기 때문에 액정 전체를 갈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나를 안타깝다는 모습으로 쳐다보면서 수리 기사님이 차분하게 알려줬다. 아쉽지만 보증 기간이 1달 지났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발생한다는 말도 잊지 않고 친절하게 전달해 주셨다. 친절한 기사님이었지만 그가 야속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품을 보증기간이 끝나자 마자 고장나도록 기가 막히게 만든 제조사도 아쉬웠다. 일부러 그러지는 않았겠지만 말이다. 그 수리 기사의 얼굴에서 자신과는 상관이 없지만 왠지 너무 미안해 하는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서비스 센터 직원은 거의 협력사 직원이기 때문에 삼성의 정직원이 아닌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발의 차이로 수십만원을 날린 고객을 보니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백만원이 넘는 폰의 주요 부품이 2년 1개월만에 망가져서 40만원 상당의 수리비를 부담해야 한다니 억울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달만 일찍 고장나지 겨우겨우 24개월을 버텨서 보증기간까지 가까스로 견딘 후에 이제야 고장이 난 점은 너무도 절묘했다. 사람들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내가 주로 활용하는 폰의 주요 용도는 금융, 음악 그리고 정보 확인이 거의 90%이다. 나머지 10%는 일상 사진을 찍는 용도이다. 내가 게임 등에 필요한 꽤 높은 사양의 고급 폰이 필요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무엇보다 당장 금융 관련된 앱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사정이 급해서 일단 집에 방치중이던 6년 된 오래된 보급형 삼성폰을 찾아서 유심칩을 갈아끼워서 사용하기로 했다. 


 6년 전인 2018년에 제조된 그 폰은 메모리가 32기가였다. 이번에 고장난 폰은 256기가다. 저장 용량이 1/8로 줄어든 것이다. 물론 속도도 비교할 수 없이 느리고 화면도 더 작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2시간 동안 부지런히 앱을 깔았다. 오래된 구형 폰으로 언제 사용될지도 모르고 방구석에 처박혀있던 폰이 느닷없이 끌려나와서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기존폰과 비교하여 확연히 느리게 작동하는 폰은 마치 일하기 싫어서 느릿느릿 책상에 자리잡는 만년과장 월급장이를 보는 느낌이었다. 게으르고 역량도 떨어져서 조직에 그렇게 필요 없는 사람일 것 같은데 언제고 꼭 필요한 경우가 생기는 그런 사람 말이다. 폰은 은 사양이기 때문에 앱을 설치하는 속도도 느렸고 적은 메모리 용량으로 중간에 더 이상 설치할 공간이 없다는 메시지까지 떠서 부랴부랴 폰 속의 음원을 7기가 정도 지우기까지 해야 했다. 


 이제 다시 나의 현역 폰이 된 구형 폰을 다시 흔들어 깨우면서 6년이라는 시간이 경과하면서 정말 많은 것이 변했다는 것을 절감할 수 있었다. 메모리용량이 대폭 증가했지만 그에 준하여 음악 파일의 크기도 커졌다. 과거에 한 곡에 5메가바이트 정도였다면 이젠 고음질 음악 파일의 경우 최소 수십메가에서 수백메가바이트가 넘기도 한다. 운용하는 앱의 크기도 역시 몇 배에서 열 배 이상 커졌다. 사진 파일도 고화질을 담으면서 몇 배로 증가했다. 폰의 화면이 좀 커지긴 했지만 설치되어 있는 앱의 종류가 증가하면서 화면이 아무리 커져도 좌우로 몇 번은 스크롤을 해야 설치된 앱을 겨우겨우 찾을 수 있을 정도다. 업무상 사용하는 파일도 역시 대단히 커졌다. 다양한 색상, 그림 그리고 동영상까지 포함된 파일은 그 크기가 커지지 않을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변해버린 환경을 생각하면 이 구형이된 '만년 과장'같은 폰은 사실 아무런 잘못을 한 것이 없다. 애초에 부여된 능력껏 충분한 성능을 발휘했을 뿐이다. 이렇게 '만년 과장 폰'은 전적으로 무죄다. 


 언제까지 이 구형 폰을 사용할지 모르지만 이번에 메모리가 1/8로 축소된 좀 더 단순하고 덜 복잡한 세상으로 다시 돌아간 이상 내가 줄여야 할 것이 좀 많아질 것 같다. 함부로 눈이나 비가 오는 풍경을 담기 위하여 쓸데없는 동영상을 찍지도 못할 것이고 고음질 음원 따위는 접근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휴대폰 메인칩의 성능이 기존폰과 비교하여 대폭 떨어지기 때문에 그만큼 느려진 폰의 속도에 적응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화면을 터치해도 그 다음 화면으로 전환하는데 기존 폰과 비교할 때 너무 느린 속도로 내가 제대로 눌렀는지 의문이 들 정도이다. 다시 누르려고 하면 그때서야 비로서 화면이 넘어간다. 




속도를 늦추면 보이는 것


 그러나 폰이 갑자기 망가져버린 의외의 상황은 내게 있어서 오로지 불편만 주지는 않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될 뿐이다.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기 위해서 1~2초 정도 더 기다리는 것이 문제가 될 정도로 나는 바쁘지도 않다. 그리고 초고음질 음원과 기존 MP3음원의 차이도 사실 크게 느끼지 못한다. 화면이 조금 작아지긴 했지만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의 폰이 사실 휴대하기도 편하고 한 손으로 사용하기도 용이한 장점도 있다. 게다가 가볍기도 하다. 기존폰은 아무래도 화면이 더 컸기 때문에 무거울 수 밖에 없었다. 특히 아무런 비용이 들지 않았다. 묵혔던 폰을 재 활용하는 것이니 말이다.   


 어쩌면 그동안 너무 바쁘게 살았으니 이젠 좀 천천히 여유롭게 살라는 하늘의 뜻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삼성의 뜻일지도 모른다. 내가 재직시에 삼성도 우리 회사의 고객에 포함되어 있었는데 자주는 아니지만 간혹 나를 애먹게 한 경우가 있었다. 그때의 미안함을 이런식으로 갚는지도 모를 일이다. 특히 이젠 당분간 일도 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바쁠 일도 서둘 일도 없어서 더이상 쫓기듯이 살아야할 이유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빨리 빨리를 입에 달고 사는 모습에서 헤어나오기가 쉽지 않았는데 이렇게 반강제적으로 느리게 살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진 것은 오히려 잘 된 일일지도 모른다. 


 이동 속도가 달라지면 다른 삶을 살게 되기도 한다. 감속에 따라서 다른 것을 보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빠르게 달리는 기차에서 밖을 쳐다보면 눈에 담을 수 있는 광경은 매우 제한적이다. 전투기 조종사의 경우 극도로 빠른 속도로 비행을 하게 되며 따라서 그가 볼 수 있는 시야는 속도에 비례하여 매우 좁아진다고 한다. 속도를 얻으면 시야를 잃게 되는 것이다. 역시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잃게 되는 것이다. 이번에 나는 속도를 잃었지만 그 덕에 새로운 시야를 얻게 된 것이다. 


 당분간 과거에 비하여 확연히 느려진 속도로 삶을 살아가면서 과연 어떤 것을 보게 될지 많이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바로 어제 느린 폰으로 바꿨기 때문에 나의 느린 삶의 시작은 아직 24시간도 되지 않았다. 더 오래도록 느려진 삶 속에 남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일단 너무 빠른 속도에 질렸기 때문일 것고, 그 외의 다른 이유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지금은 느린 세상 속에서 느리게 그리고 더 느리게 살고 싶다. 그래서 자동차 여행 보다는 자전거가 좋고 자전거를 타기 보다는 천천히 걷는 것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천천히 걸으면 정말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순간을 더 세밀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죽은 벌레를 나르는 개미, 길가의 도랑 주변에 만개한 야생화 그리고 들 풀에 맺힌 투명한 이슬같은 것들은 천천히 걷지 않으면 내게는 없는 존재일 뿐이다. 속도가 느려지면서 그것들이 다시 내게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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