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개는 한국인에게는 특별한 음식이다. 고급 요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대부분의 식사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의 불가피성이 그 특별함의 이유이다. 면 요리를 먹을 때는 그렇지 않지만 밥을 먹을 때면 자연스럽게 찌개 혹은 국을 떠올리게 된다. 물론 국과 찌개는 같으면서도 다른 요리이다. 둘의 명확한 차이는 다름아닌 건더기의 비중에 있다. 대부분 건더기가 많으면 찌개이고 국물이 많으면 국이기 때문이다. 물론 짜글이도 있다.
이렇게 국물의 농도에 따라서 국, 찌개 그리고 짜글이 혹은 찜으로 나뉘어진다. 그리고 좀 더 세분하자면 국과 찌개 사이에 탕이 들어간다. 내가 한식 전문도 아니기 때문에 이들 사이에 무언가 더 있을지 모르지만 내가 아는 상식선에서는 그렇다. 국은 내용물이 적고 국물이 많은 것이고, 탕은 내용물도 비교적 많고 국물도 많은 요리이며, 찌개는 내용물이 훨씬 더 많고 국물은 적은 것이고, 짜글이는 국물이 극소량만 있고 거의 건더기로만 이루어진 요리이다. 그리고 짜글이의 확대판이 찜이다. 보통 짜글이는 작은 뚝배기에 요리하지만 찜은 뚝배기와 비교할 수 없이 큰 용기에 조리한다. 이들은 재료가 유사하더라도 재료가 무엇이냐 보다는 재료의 비중으로 요리의 성격이 구분되는 것 같다. 아무튼 무엇보다 큰 차이는 찌개부터는 단독 요리로 인정 받지만 국은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역할로 제한된다는 사실이다. 메뉴판에 김치찌개 백반은 있지만 김치국 백반이 거의 없는 이유이다.
물론 철따라 바뀌는 갖가지 반찬도 거의 밥상에서는 주연급에 해당할 정도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지역에 따라서 반찬의 종류와 가지수 그리고 조리방식도 다르긴 하지만 그 감초같은 반찬 역할 만큼은 동일하다. 그러나 반찬은 어디까지나 밥에 곁들여 먹는 보조적인 역할로 그 기능이 제한되는 면이 크다. 반면 찌개는 그 무게감에 있어서 국을 포함한 일반적인 반찬과는 완전히 다르다. 사실 찌개도 엄밀하게 말하면 반찬의 종류에 포함되지만 보통 찌개는 반찬이라고 부르지 않고 단독으로 찌개라는 명칭을 부여 받는다.
이렇게 찌개는 독립적으로 자기 혼자서 누군가의 밥상을 온전히 지탱할 수 있는 힘을 갖는다. 여러개의 반찬이 없어도 독립적으로 큰 힘을 발휘하는 찌개가 있다면 그 밥상은 제대로 된 밥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사실 그럴 수 밖에 없기도 한데 그 이유는 찌개가 다양한 반찬이 한꺼번에 들어간 복합적 형태의 요리이기 때문이다. 즉 이미 찌개속에는 다양한 반찬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김치찌개만 해도 그 안에 김치와 두부 그리고 돼지고기, 양파 등 각종 채소를 포함한 다양한 재료가 들어간다. 그 외에 갖은 양념류는 거론하지 않더라도 이미 여러가지 재료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반찬을 넘어서는 거대한 무게감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김치찌개 하나만 있어도 밥 한 그릇은 뚝딱이다'라는 말은 그래서 과장이 아닌 것이다. 김치찌개가 맛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맛이 없을 수 없는 재료들이 다수 포함된 음식이라는 점을 명백하게 드러내는 표현이다.
한식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몇 종류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밥만 해도 첨가되는 곡물이나 나물의 종류에 따라서 무슨 밥, 무슨 밥 하면서 다양한 종류로 갈라지면서 끝없이 분화된다. 국도 마찬가지고 찌개도 마찬가지다. 특히 김치의 경우는 그 종류가 수 백 가지에 이를 정도로 다양하다. 알려진대로 조선 시대에 고추가 우리 나라에 들어왔기 때문에 그때부터 매운 김치를 만들어 먹었을 것이다. 따라서 김치찌개 역시 조선시대부터 먹었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추정이 가능하다. 정확히 김치찌개라는 단어가 그 시대의 기록에는 없지만 '지짐이'라는 기록은 있다고 한다. 과거에는 김치국, 김치탕 혹은 지짐이 정도로 불리우다가 '김치찌개'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는데 그것도 상당히 최근인 20세기가 되서라고 한다.
찌개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몇 가지 설이 있지만 '찌'는 '국물을 찐다'는 의미로 알려져 있고 '개'는 '~것'의 뜻을 갖는 접미사다. 깔개는 까는 것, 마개는 막는 것, 지우개는 지우는 것, 쓰개는 쓰는 것 그리고 덮개는 덮는 것을 의미하는데 각 단어에 포함된 '개'가 바로 그 '개'이다. 따라서 찌개는 '국물이 어느 정도 졸도록 찐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 굳이 잘 알지도 못하는 밥상 이야기를 한 것은 사실 어제 아주 오래 간만에 정말 맛있는 '김치찌개'를 먹었기 때문이다. 내가 다녔던 회사 부근에 있는 작은 김치찌개 전문점인데 나름 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그곳에서 회사 후배와 오래간만에 점심을 했다. 간만에 즐긴 김치찌개의 깊은 맛의 감흥(感興)이 아직까지 남았던 모양이다.
보통 식당들은 그 생명이 비교적 짧다. 어지간한 내공이 아니면 몇 년 버티지 못하고 철수하는 식당이 좀 많은가? 그런데 유독 오래가는 식당이 있는데 그들은 대부분 우리가 별로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 친숙한 음식을 조리하는 곳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중 하나가 김치찌개집이다. 물론 대부분의 김치찌개집은 삼겹살도 팔고 제육볶음도 판다. 그러나 메뉴에 있어서 최소한의 다양성을 표현하기 위한 구성일 뿐이지 어디까지나 주메뉴는 김치찌개이다. 내가 어제 방문한 '뚱이통돼지 김치찌개'도 상호에서부터 김치찌개가 주메뉴임을 매우 명백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런 식당은 보통 위치도 좋지 않고 주차도 불편한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음식점의 기본은 역시 맛인 모양이다. 게다가 가격까지 경쟁력이 있다면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곳이 바로 그런 곳이다.
따라서 그 식당은 주변 직장인들이 자주 방문하는 맛집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 말고도 저렴한 가격에 배부르게 한 끼를 만족스럽게 때우기 위하여 그 식당을 방문하는 일용직 노동자들도 두터운 주고객 층이다. 내가 방문했을 때에도 손님의 70~80%는 한 눈에 봐도 노지(露地)에서 따가운 태양빛을 받으며 일하는 분들이었다. 검게 그을린 얼굴, 거친 손, 결코 깨끗하다고 할 수 없는 복장, 먼지로 뒤덮인 낡은 안전화 그리고 깊게 패인 주름이 가득한 얼굴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은 그분들이 방금 어디에서 어떤 종류의 일을 했는지 분명히 말해주고 있었다. 그분들은 삼삼오오 테이블에 모여 앉아서 보글 보글 끓는 밥상의 주인공인 김치찌개가 푹 끓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 일부는 소주를 노동주로 곁들이면서 곧 이어질 오후의 노동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오후에 전혀 노동이 이어질 이유도 그리고 계획도 없는 나도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김치찌개를 그냥 밥하고만 먹으면 어쩐지 기이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내게 있어서 그런 특별한 김치찌개에 곁들이는 몇 잔의 소주는 일종의 반찬이기도 하다.
나와 후배가 그 식당에서 머문 시간은 불과 30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다. 허겁지겁 밥을 먹기에도 충분치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그집의 깊은 김치찌개 맛을 충분히 느끼면서 말로 설명하기 쉽지 않은 어떤 편안함과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인은 말할 것도 없고 이제는 많은 세계인들도 즐기게 된 김치는 정말로 맛이 있는데 그 맛을 명확하게 표현하기는 꽤 어렵다. 김치의 확장판인 김치찌개의 맛을 표현하기는 그래서 더 어려운 것 같다. 김치는 소금의 짠 맛, 고추의 매운 맛, 같이 곁들여져서 발효된 다양한 채소의 맛, 젓갈이 발효된 맛 그리고 그 모든 재료가 어우러져서 함께 발효되면서 나는 오묘하게 깊은 맛, 배추와 채소가 아삭아삭 씹히는 맛과 같이 다양하게 표현이 가능한데 보통 사람들은 이 모든 맛을 하나로 뭉쳐서 '정말 맛있다'라고 할 뿐이다. 아마도 그이상 더 표현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정말 아름다운 여인을 볼 때 특정 신체 부위를 칭하면서 어디 어디가 아름답다고 하지 않고 그냥 '정말 아름답다 혹은 정말 예쁘다'라고 말 할 수 밖에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일지도 모른다. 그집의 김치찌개도 그렇다. 내겐 정말 맛있을 뿐이었다.
그 식당은 맛도 10년 전의 맛 그대로였지만 가격도 거의 변화가 없었다. 요즘 1만원 미만으로 식사를 할 만한 곳을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맛과 양은 물론 가격까지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은 주인장의 너그러움으로 밖에는 해석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아마도 매일 점심을 떼우러 오는 '노지에서 일하는 분들'에 대한 주인장의 사랑과 배려가 포함된 가격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뚱이통돼지 김치찌개집 사장님이 그 작은 건물의 건물주일지도 모른다. 가게의 위치가 비록 번화가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외떨어진 곳이지만 그래도 삼거리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부수고 새로 지으면 꽤 짭짤한 임대 수익이 가능할 것 같은 자리인데 계속 그 낡아빠진 건물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랜 기간 그곳을 지키면서 손님을 맞이할지 모르지만 그집 만큼은 다른 어느 곳 보다도 더 오래 지속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누구보다도 평범한 사람들이 마음 편하게 들려서 언제든 한끼를 떼울 수 있는 곳으로 남아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평범한 사람들이 먹는 평범한 음식이지만 그 곳의 김치찌개는 그래서 너무도 특별한 음식이다. 20세기에 비로서 시작된 김치찌개의 역사는 여전히 전국 방방곡곡에서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이집도 그 역사의 한 장면으로 오래 오래 남아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