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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glecs Jul 29. 2024

누구를 좋아하시나요


 인간은 언제나 행복을 추구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주변을 가급적 좋아하는 사람들로 채우려고 한다.............많은 면에서 서로 공감할 수 있을 때에 비로서 서로가 좋은 관계의 수립이 가능하다. 따라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많고 그 사람들도 나를 좋아하는 것이 확실하다면 나는 상당한 공감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인간의 지고(至高)한 행복의 원천은 개인의 높은 공감 능력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것은 결국 행복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기도 하다. 개인의 공감 능력은 오로지 개인의 내부에서부터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


 삶을 살면서 우리는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다. 그리고 어떤이는 싫어하게 된다. 만약 가족을 제외하고 우리가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 중에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면 비교적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가족들과의 충만한 관계가 있다는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지금 당장 머리속에 떠오르는 사람들이 주로 좋은 기억을 남겨준 언제나 행복하고 즐겁고 다정한 사람들 뿐이라면 우리는 실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싫어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우리가 언제나 행복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언제나 행복할 수는 없더라도 좋아하는 사람들의 비중이 더 높다면 우리는 삶을 행복한 시간으로 더 많이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행복을 추구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주변을 가급적 좋아하는 사람들로 채우려고 한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인간 본성에 따른 행동이다. 이렇게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을 갖기 위해서는 그들과 상호보완적 관계의 수립이 필수적이다. 어느 한쪽만 좋아하는 일방적인 좋아함은 조화로운 좋아함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나에게 호의를 배푼다고 해도 내가 그를 호의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서로 좋은 관계는 수립될 수 없다. 반대로 내가 상대방에게 호의를 배풀고 선의를 가져도 상대가 응답하지 않으면 이또한 일방적 관계일 뿐이다. 누군가와 좋은 관계를 수립하는 것은 이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서로 이견이 있더라도 자연스러운 암묵적 합의가 가능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매우 많은 면에서 서로 공감할 수 있을 때에 비로서 서로가 좋은 관계의 수립이 가능하다. 따라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많고 그 사람들도 나를 좋아하는 것이 확실하다면 나는 상당한 공감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인간의 지고(至高)한 행복의 원천은 개인의 높은 공감 능력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것은 결국 행복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기도 하다. 개인의 공감 능력은 오로지 개인의 내부에서부터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또하나 중요한 것은 그런 타인과의 관계가 진실로 어떤 의미를 가지느냐이다. 이는 바로 어떤 부분이 좋아서 서로 호감을 가지고 관계를 수립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무조건적 도움을 배풀거나 외모가 뛰어나기 때문에 좋아할 수도 있고, 서로의 삶에 진정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좋아할 수도 있다. 이렇게 우리는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왜 그런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사회에서 만난 인연들과 좋은 관계를 수립하면서 서로 공감하고 좋아하게 되는데 도대체 내가 왜 그들을 좋아하는지를 살펴 봐야 한다는 말이다. 정말 서로 공감하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서로 이용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서로의 위력을 알기 때문에 그것을 인정하고 서로 받아들이기로 암묵적인 합의를 한 상태로 관계를 유지해 왔을지도 모른다. 이런 경우라면 서로 공감하고 좋아했다기 보다는 서로 상대를 두려워한 것일지도 모른다. 혹은 서로 상대를 이용하려는 이기심을 호감으로 오인했을 수도 있다. 슬픈 이야기이지만 실제로 사회에서 서로 좋아하고 공감하는 경우 그것의 본질이 다름아닌 잠재된 두려움인 경우가 많다. 서로 밝은 얼굴로 이야기하면서 속으로는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거울 속의 나


 가족 관계를 벗어난 누군가를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한다면 그 첫번째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들이 자신의 가치관에 매우 잘 맞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과 생각이 많이 다른 사람을 좋아하기는 어렵다. 생각이 다르다는 것은 단순하게 취향이나 어떤 것에 대한 관점이 다르다는 것이 아니다. 삶을 바라보는 관점, 즉 삶에 대한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관점은 정확하게 내게도 적용된다. 내가 친밀한 관계를 오래도록 유지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가치관은 나의 가치관과 매우 유사하다. 그리고 나의 가치관에 맞지 않는 사람들과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인간이 삶에서 행복과 즐거움을 느끼는 원천은 다양하다. 물질적인 면은 물론 정신적인 면에서도 행복과 즐거움의 원천을 찾을 수 있다. 개인별 만족도의 차이에 따라서 같은 수준의 물질이 있더라도 어떤이는 만족하고 다른이는 만족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인간은 불과 백년을 살기 어려운 주제이면서도 영원히 살것처럼 행동한다. 그래서 물질도 영원히 지속되길 막연하게 염원하는 자신의 삶을 풍족하게 하기 위해서 끝없이 채우려고만 하는 성향이 있다. 물론 그것이 동력이 되서 인간 물질 문명을 크게 일으켜 세웠지만 그렇게 일으켜 세워진 물질 문명이 과연 올바른 길로 인간들을 인도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물질은 꼭 필요하기도 하지만 정도를 넘는 물질은 결국 짐이 되기도 한다. 나 또한 현대 문명 사회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물질을 배제하자는 말을 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물질에 대한 과도한 욕심을 너무 오랜 기간 지속하는 것이 과연 옳은 행동인지에 대해서는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사실 그런 행위(물질에 대한 과도한 욕심)는 옳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스스로의 행동을 부인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고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나 스스로도 물질에 대한 욕심을 여전히 부여잡고 있기 때문이다. 물질적인면과 정신적인면의 행복에 대한 나의 가치관은 방금 기술한 내용을 통해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약간 중립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물질 보다는 정신에 무게 중심이 가있다. 그래서인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이런 부류이다. 그렇다고 하여 그들이 가난하다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나보다 풍족하다. 

 

 우리는 결국 우리와 비슷한 사람을 좋아한다. 거울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것과 같다. 당신이 만나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살펴보면 바로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될 것이다. 매번 느끼지만 유유상종은 정말 잘 만들어진 말이다. 부부가 헤어지는 가장 흔한 이유인 '성격차이'는 바로 가치관의 차이를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밝히기 어려워서 성격차이 운운 한다고 하는데 나는 성격차이 만큼 분명한 이혼 사유는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성격차이는 곧 가치관의 차이라고 볼 수도 있고 그것은 바로 삶을 살아가는 방식의 차이다. 이렇게 삶에 대한 태도가 다르기 때문에 더 이상 같이 살 수 없게 된 것이다. 돈 문제로 헤어지고 폭력 때문에 헤어지지만 큰 틀에서 보면 그런 문제들도 결국 그들의 삶을 대하는 태도로 수렴 될 것이다. 다양하고 복잡한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 배우자보다 돈에 가치를 두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고 배우자를 하나의 고귀한 인간으로 보지 않고 폭력의 대상으로 보는 왜곡된 가치관에서 서로 충돌이 일어났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좋은 사람 되기


 보통 사람들은 주변에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회사에서는 지휘 고하를 막론하고 이런 이유로 가능하면 모든 수단을 다해서 '자기 사람'을 주변에 빼곡히 채우려고 한다. 정도와 방식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있었지만 본질적으로는 나도 조직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어느 정도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즉 나와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으로 내 주변을 채우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나를 좋아해 주길 바라는 바로 그 타인이 좋아할 수 있는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게 바로 내 주변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이 있게 하기 위한 변할 수 없는 전제 조건이다. 닭(타인)이 먼저냐 달걀(자신)이 먼저냐의 문제로 보일 수도 있는데 이 문제에 있어서는 어디까지나 달걀(자신)이 먼저이다. 즉 내가 먼저 그런 사람이 되지 않고서는 그런 사람들과 함께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수 밖에 없다. 물과 기름이 합쳐지지 않듯이 서로 성질이 다른 것은 섞이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억지로 섞어 놓으면 결국 갈라설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나 개인의 행복을 위한 좋은 인연을 많이 만들기 위해서라도 타인의 행복에 내가 먼저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결국 우리 인간들은 서로 뭉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내가 왜 그들을 좋아하는지를 생각해보고 나도 그런 특질을 더 강화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나는 어떤 사람을 좋아할까?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 어지간 해서는 짜증을 부리지 않는 사람, 언제나 미소를 짓는 사람, 기꺼이 양보하는 미덕을 갖고 있는 사람, 힘을 가졌지만 진실로 겸손하고 약자를 배려할 줄 아는 사람, 가지고 있는 역량 한도 내에서는 그래도 최선을 다하는 사람, 잘못을 깨끗이 인정할 수 있는 사람,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비열한 사람이 아니라 약자를 보호하고 강자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사람, 한 인간으로써 매력이 넘치는 인간적인 사람, 나는 이런 사람들을 좋아한다. 너무도 감사하고 행복하게도 현재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중 이런 사람들의 비중이 훨씬 더 높다. 오히려 내가 그런 특질이 부족하기 때문에 더 많이 노력해야 하는 입장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유지하기 위해서 그리고 나도 그들의 삶속에서 긍정적인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나는 정말 많이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무엇이든 좋아하는 것만 취할 수는 없다. 반찬도 매일 맛난 것만 먹을 수는 없듯이 말이다. 24시간 내내 내가 좋아하는 사람하고 만 있을 수도 없다. 사회 생활을 하다보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겪을 수 밖에 없다. 우리가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선택은 나 자신을 타인이 좋아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위에 예를 들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특질들은 오로지 개인의 선택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것들은 결코 강제할 수 없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할지는 바로 우리 자신에게 달렸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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