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곱가지 와인을 추천함
가을은 인류에게 수확의 기쁨과 나눔의 행복을 선사하는 계절입니다. 역사적 사건들과 즐거운 추억들에 연결된 다양한 와인들이 매월, 매순간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는데, 가을의 시작인 9월은 우리에게 어떤 와인을 남겨주었을지 기대가 됩니다. 먼저 제철음식과 마리아주를 잘 이루는 와인은 언제나 최고의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 9월의 제철 음식
가을은 식재료가 넘쳐나는 계절입니다. 그해 수확된 모든 식재료가 가장 빛을 발하는 시기이기도 하겠지만, 특히 굴, 전복, 송이버섯은 이때를 시작으로 가을을 이끌어가는 최고의 식재료들일 뿐 아니라, 와인과도 특별히 잘 어울리는 와인 매니아들에게는 기초 식량과도 같은 재료들입니다. 굴과 전복은 샴페인이나 드라이한 샤도네이와 훌륭한 매칭을 만들고, 송이버섯은 피노누아와 같은 고급 와인들과 고고한 향으로 경합을 이룹니다. 9월의 식재료와 어떤 와인들을 매칭할지, 익숙한 9월의 역사들에서부터 답을 찾아보겠습니다.
- 혁명의 아지트
1792년 9월 21일, 혁명을 통해 프랑스는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을 채택한다는 선언을 합니다. 궁정에 빌붙은 귀족들과 국정에 무관심한 왕이 재정위기 타파를 명분으로 과도한 수탈을 일삼고, 이에 항거한 민중들과 당시 계몽주의 철학자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이 결합되어 일어난, 당연하고도 위대한 인류역사 진보의 한걸음 이었습니다. 당시 혁명의 기반이 된 계몽주의 지식인들이 우리가 익히 들어온, 장자크 루소, 볼테르, 디드로 등입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은 각자의 처지와 경험을 토대로 인간과 국가에 대한 자기 견해들을 책으로, 강의로 당시의 사람들에게 펼쳐놓습니다.
우리도 그러하듯이, 당시의 지식인들도 프랑스의 위기와 민주주의에 대한 철학적 논쟁을 카페에서 했습니다. 그들이 낮에는 커피를 마시고, 저녁에는 와인을 마시며 프랑스의 미래와 철학에 대한 잡담을 늘어놓던 카페 중 파리에서 가장 처음 문을 열었고, 아직도 그 전통을 유지하며 영업하고 있는 곳이 파리 생제르망의 카페프로코프(Cafe Procope)입니다. 250년의 역사를 가지고 당시의 철학자들 뿐만 아니라 역사적 인물들의 방문도 많았던 것으로 보이는데요, 나폴레옹이 초급장교시절 이곳을 찾아 식사하고 지갑을 안가지고 와서 대신 맡겼다는 그의 모자도 전시되어 있으며 이런저런 다양한 역사적 사실들을 기념하면서 아직도 성업 중입니다. 9월 21일 성공한 혁명에 대한 선언을 기념하며, 프랑스대혁명의 철학적 기반을 제공한 지식인들의 아지트였던 카페 프로코프의 하우스와인인 자카르 모자이크 브뤼 샴페인(Champagne Jacquart Mosaique Brut)과 프랑 코트 드 보르도 샤토크뤼고다르(Francs Côtes de Bordeaux Château cru Godard)를 9월의 첫 번째와 두번째 와인으로 선정해봅니다. 자카르는 좋은 와인을 위한 3가지 요소인 재능,와인,테루아를 특징있게 블렌딩한 모자이크 샴페인이며, 샤도네이와 피노누아를 메인으로하여 풍미가 뛰어나고 가성비가 장점입니다. 샤토크뤼고다르는 VV(고목에서 생산)로 갤러리 라빠예뜨에서 인기가 많은 역시 가성비 와인입니다.
- 역사의 아이러니 귀부와인
카페와 더불어 당시의 귀부인들이 각자의 공간을 열어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을 위해 제공했던 살롱이 존재했었는데, 루이 15세의 강력한 국정 조력자이자 애첩이었던 퐁파두르 부인은 이와 같은 살롱문화를 선도하였습니다. 계몽주의는 당시 귀족들 사이에서 나름 핫한 컨텐츠였고, 이를 지원했던 카페와 살롱은 당시 지식인들의 교류와 정치세력화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 시절 아직은 미미해보였던 철학자들의 모임과 삼부회의 민중들의 커져가는 역량을 우회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왕권에 도전하는 귀족들과 성직자들을 견제하기 위한 수준 높은 정치행위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퐁파두르 부인은 볼테르를 비롯한 당시의 철학자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 대표적으로 정보의 보편화를 두려워했던 국가가 불법화했던 백과전서의 출판을 가능하게 만들어 줄 정도로 적극적이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퐁파두르 부인은 당시 루이15세가 전대로부터 특별히 애정 해왔던 와인을 계몽주의 철학자들에게 선물하기도 하였는데, 그들은 왕가로부터 선물받은 이 와인을 마시면서 그 와인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던 왕과 그 왕가의 몰락을 위해 토론했던 역사 속의 아이러니를 확인하게 됩니다. 9월을 위한 세 번째 와인은 퐁파두르 부인이 계몽주의 철학자들에게 선물했던 부르봉 왕가의 애정와인인 헝가리의 귀부와인 토카이입니다. 유럽의 수많은 군주와 제후들이 즐겨했던 토카이 와인은 프랑스의 루이14세가 ‘와인의 왕, 왕들의 와인’이라고 칭할 정도로 고귀하게 취급받았던 귀부와인의 원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2차 대전을 거치면서 헝가리 귀부와인의 유럽 공급이 어려워 진 까닭에 프랑스 귀부와인이 그 자리를 낚아 채갔지만, 사실상 역사와 명성, 품질 면에서 헝가리의 토카이는 최상의 귀부와인 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 혁명과 치즈
역동의 세월중에는 변화의 중심에 있는 지식인들은 언제나 부침이 있기 마련인데, 장자크 루소는 “에밀”, “사회계약론” 등의 저술로 인하여 프랑스의 왕가와 귀족들로부터 미움을 받아 체포명령이 내려지자, 프로이센으로 피신하고, 프리드리히 대왕의 명령으로 뇌샤텔이란 지역에서 보호받으며 지내게 됩니다. 프랑스와 인접한 스위스에 위치한 뇌샤텔은 부드럽고 모든 와인과 찰떡궁합인 하트치즈로 매우 유명한 마을입니다. 힘들었던 루소의 방랑을 떠올리면서, 하트치즈와 9월의 와인을 함께 하면 좋겠습니다.
퐁파두르 부인의 초상화에 등장하는 백과전서 1권의 저술과정에서, 음악관련 내용을 루소에게 부탁하며 이 책의 저술을 주도했던 당대의 계몽주의 철학자이자 프랑스의 대표적 유물론자인 드니 디드로가 태어나고 자란 곳도 치즈로 매우 유명합니다. 프랑스 상파뉴의 고원지대인 랑그르가 바로 그 마을이고, 이곳의 랑그르 치즈는 발효시 겉을 계속 세척해주는 과정에서 속은 부드럽고 겉은 딱딱해지면서 주름과 상부가 움푹 들어간 퐁텐을 형성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곳에 샴페인을 부어서 마시는 것이 전통이라고 합니다. 마치 돌멍게 껍질에 소주를 부어 마시는 것이 연상됩니다. 랑그르 치즈와 9월의 샴페인을 함께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 혁명은 원점으로
프랑스 대혁명은 왕정의 포기와 공화정의 선언으로 일면 성공하는 것으로 보였으나, 지속되는 사회의 혼란이 정돈되지 않고, 정치세력들의 전쟁같은 권력 쟁투와 숙청등으로 하층민의 삶은 더욱 피폐해져 갔습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구테타에 성공한 나폴레옹의 셀프 황제 등극과 제정으로 대혁명을 통해 쟁취했던 프랑스 제1공화국은 수포로 돌아가고, 이후 나폴레옹의 실각으로 부르봉 왕가가 부활하게 됩니다. 대혁명과 정복의 프랑스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 바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입니다. 한쪽 면에서는 실패한 정치인이자, 다른 면에서는 위대한 정복자로 기록되는, 카페 프로코프의 단골이기도 한 나폴레옹도 와인에 있어서는 진심이었는데요, 여러 와인들 중 전투에 참여하면서도 잊지 않고 꼭 챙겨갈 정도로 나폴레옹이 특별히 애정했던 부르고뉴의 샹베르탱을 9월을 위한 네 번째 와인으로 추천하면서, 9월의 식재료 중 단연 최고봉인 송이버섯과의 마리아주를 제안합니다.
- 9월의 음악
풍요로운 9월이 혁명의 역사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1791년 9월 30일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모차르트의 오페레타 마술피리가 처음으로 연주 되었습니다. 제가 매우 좋아하는 21세기 최고의 소프라노 담라우의 ‘밤의 여왕 아리아’를 다들 한번 들어보시기를 추천 드립니다. 마술피리는 주연인 파미나 공주나 타미노 왕자보다, 일종의 조연인 밤의 여왕이나 새잡이 파파게노의 노래가 훨씬 유명합니다. 파파게노가 그의 짝인 파파게나와 함께 부르는 2중창 “파파파파파게나”는 마술피리의 가장 아름다운 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 폰타나프레다에서는 “바르베라 달바 슈페리오레 파파게나”라는 이름의 오페레타 마술피리와 파파게나를 기념하는 와인을 출시하고 있는데, 가성비도 뛰어나면서 평균적 이탈리아 와인을 느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9월의 다섯 번째 와인으로 음악과 함께 파파게나를 추천합니다. 바르베라는 이태리에서 산지오베제와 몬테풀치아노 다음으로 가장 많이 수확하고 제조되는 유명한 풀바디의 레드와인을 위한 포도품종입니다. 파파게노와 파파게나의 아름다운 2중창을 들으면서 즐기는 바르베라 달바가 9월의 저녁을 더욱 풍요롭게 채워주면 좋겠네요.
- 라인가우 와인
1869년 9월 22일에는 독일의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가 작곡한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의 4개 라인 중 첫 번째인 ‘라인의 황금’이 뮌헨에서 처음으로 연주 되었습니다. 5월의 와인에서도 베토벤과 브람스가 사랑했던 독일의 라인가우 리슬링을 추천했었습는데, 독일, 특히 라인가우 지역의 리슬링은 품질이 좋기로 유명합니다. 게오르그 뮐러라는 와이너리에서는 리하르트 바그너를 기념하는 라인가우 리슬링으로 “게오르크 뮐러, 슈티프퉁 바그너 리슬링 카비넷 트로켄”을 출시중입니다. 와인라벨에 작곡가 바그너의 얼굴이 멋있게 새겨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바그너가 작곡한 라인강의 노래와 함께 바그너를 기념한 리슬링을 9월의 여섯 번째 와인으로, 9월의 식재료인 전복, 생굴을 곁들여 함께 마실 것을 추천합니다.
- 9월의 소울
가을의 음악 감상에는 클래식도 좋지만 소울도 빠질 수 없습니다. 1930년 9월 23일, 미국 조지아주 올버니에서 흑인 아이 한명이 태어나고, 7살이 되던 해 녹내장에 의해 시각을 잃어버리면서, 그의 음악적 재능은 더 깊어갑니다. 귀가 더 밝아져서인지는 몰라도, 그가 바로 “Hit the road, Jack”, “Come rain or come shine”, “I gotta women”, “Georgia on my mind 등 수많은 명곡을 탄생시킨 소울음악의 대부, 레이 찰스입니다. 그를 기념한 영화 ”레이“에서 그 명곡들의 연주가 배경으로 흘러나오는 가운데 발폴리첼라 와인병이 등장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발폴리첼라는 베로나 북부 지역으로 코르비나 또는 코르비노네 품종으로 레드와인을 만드는데, 유사한 품종의 포도를 아파시멘토 공법으로 만든 아마로네가 알려지면서 더 유명해진 와인입니다. 베로나의 아마로네와 레치오토, 발폴리첼라와 리파소 등은 다음 기회에 또 비교해보기로 하고, 9월의 일곱 번째 추천와인은 마시의 ”발폴리첼라 보나코스타“입니다. 재즈와 블루스의 감성속에서 9월 가을의 정취에 빠져봅시다.
풍요로운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9월, 역사속의 재미들과 아름다운 선율을 와인들과 함께 즐겨보시기를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