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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밍드림 Apr 13. 2024

사람의 여행은 늘 사람 속으로 떠나는 것

세계여행 에세이: 프롤로그

내가 난생처음 바다를 본 것은 열세 살 때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시선이 끝나는 지점이 어디여야 할지 모르게 광활하기만 한 시퍼런 일색(一色)의 포항 앞바다에 압도당한 채 서 있을 때 마치 줄탁동시(啐啄同時)처럼 나를 가둔 알을 밖에서 쪼아 깨트려준 존재가 바로 바다였음은 기억한다. 그때 나는 새로운 세상을 보았다. 지금은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하겠지만 그 시절에는 그랬다.


각색만 잘하면 심심치 않을 스토리의 성장소설 주인공처럼 불우한 환경을 탓하며 갈등과 번민 속을 헤매다 보니 화양연화(花樣年華) 같아야 할 학창 시절은 비루하게 지나가 버렸고, 불만족 자체가 내 인성의 아이콘처럼 굳어 버린 채 하필이면 유수의 대기업에 취업하게 되면서 더 교만하고 가식적이고 남들보다 나아 보이려고 애쓰는 외로운 청년이 되었다. 고쳐서 다시 쓰고 싶은 청춘일기라고나 할까. 지금껏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얻게 되는 감성으로 그 시절의 결핍을 메우고 있다고 본다.


첫 해외여행을 일본으로 떠난 것은 행운이었다. 신입사원 연수를 바다 건너 규슈로 보내주길래 주목적인 닛산자동차 견학은 잠깐이요, 하카타항에서 Ferry 하선 후 구마모토에서 아소산 구로카와에 이르기까지 어디 한 곳 허투루 지나칠 곳이 없었다. 망가(漫画) '오타쿠'같은 정체성이란 것도 없이 왜풍(倭風) 감성에 심취하여 일본 가서 엔카(演歌) 가수나 될까 생각까지 할 정도의 나였는데 미생의 왜풍 감성이 사람 냄새나는 현실을 만나더니 등 뒤로 땀이 흐르듯 내 등골을 타고 내렸었다. 그날들의 추억은 이후로 나의 해외여행 교과서 같은 것이 되었다. 인터넷에서 방송에서 무수한 영상을 볼 수 있는 지금에야 쉽게 공감이 가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때만 해도 그랬다.


신입 딱지를 떼자마자 해외출장을 자주 다녔다. 국적기에 탑승하면 맨 끝열에서 예닐곱 앞 열에서 승무원이 오버헤드 빈 (Overhead Bin)에 흡연석 스티커를 붙이면 그 줄부터는 졸지에 흡연석이 되었고, 연결 항공편도 쉽지 않아 파리 샤를드골 공항에 내린 저녁이면 오를리 공항으로 이동하여 하룻밤을 보내야 다음날 북아프리카로 갈 수 있는 그런 시절이었다. 지금처럼 여행객이 흔하지도 한국이라는 나라가 인지도가 높지도 않은 시절이라 사람들과 부대끼는 게 참 고단한 일이었지만, 혼자서 헤쳐가는 길에서 만나는 작은 에피소드 하나조차도 소중한 경험이었고 아직까지도 내 감성 스펙트럼을 구성하는 요소이다.


신혼시절 아내와 함께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다. 1989년 해외여행이 자유화되고 나서 강산이 한 번 바뀌는 사이에 예전과는 많은 것들이 달라져 있을 때였다. 일본에서 출간된 해외여행 안내서를 베끼거나 한 여행책자들이 넘쳐났고 젊은이들 사이에 배낭여행이 들불처럼 번진 때였다. 난생처음 둘이 하나처럼 다니다 보니 자는 것 먹는 것 불편함 투성이요 의견이 부딪히기 일쑤였다. 오죽했으면 런던 피카딜리 서커스 길 위에서 둘이서 서로가 싫어할 말만 골라서 상처를 주며 다투었을까. 서툰 여행은 때로는 상처를 남기기도 하는 법이다. 하지만, 그 모든 불편함을 감내할 가치가 있는 것이 또한 여행이고, 익숙함의 안전선(Safety Line)을 벗어나 여행을 떠나보아야 사람이 한층 더 성숙해질 수 있음을 그때 깨달았다.


아이들이 어려서는 유럽에서 살았다. 혼자서 하던 여행이 둘이 되었다가 넷으로 늘었고, 여행의 패턴이 달라졌다. 세계 경제위기가 닥친 후라서 일도 사람도 모두 힘들 때였지만, 차를 몰고, 배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유럽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닌 르네상스 시대였다. 현지에 기반을 둔 여행은 돌이켜 보면 좀 더 여유가 있어서 보는 것 이상의 체험을 하는 장점이 있는 것 같다. 해외여행 교과서까지는 아니더라도 참고서 정도는 적을 수 있게 된 것도 이때이다. 다만, 아이들이 주인공이다 보니 어른들의 감성까지 보듬지는 못한 것은 흠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이 좀 더 커서는 이번에는 중동 한가운데서 살았다. 살기에는 불편함이 있어도 유럽과 달리 일상 속에 어울리는 사람들에 대한 정감은 훨씬 깊어서, 그곳에 살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그들의 삶의 터전과 사는 방식에 대한 이해도 덩달아 깊어졌다. 하지만, 이때부터 이 나라 저 나라 다니기 힘든 지리적 환경 탓도 있고 해서 넷이 다니던 시대는 서서히 저물어 가기 시작했다. 다시 홀로 다니는 여행으로 회귀하였다.


최근 수년간 우리 가족은 각자의 방식으로 여행을 이어가며 자신만의 감성을 살찌우고 있다. 나도,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회사를 다니고 있고, 이런 곳 저런 곳 출장을 다니며 여행을 다닌다. 나이가 들어도 해외를 다니는 여행은 사람이 다르고 말이 다르고 음식이 다르고 사는 방식이 다른 것에서 오는 약간의 긴장감과 새로운 것에 대한 설렘과 기쁨으로 '도파민' 분출이 잘 되는 것 같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나서 가장 먼저 써 보고자 하는 글은 세계를 돌아보며 보았던 것, 느꼈던 것, 미처 몰랐던 것들에 대한 스토리와 처음 바다를 마주했던 감동에서부터 불우하고 외로웠던 청년이 세상 이런저런 사람들과 어울리며 그들 속에서 '감성'을 회복하기까지의 소박한 스토리이며, 이제부터 한 편 한 편 써 보려 한다.


(비록 활동 동영상을 틀어드리지는 않지만, 독자분들이 글을 같이 읽으며 마치 '그곳에 내가 있었던 것처럼' 느끼고 거기에 어울리는 감성을 찾으며 편안해 지시기를 소망하고, 이미 가 보신 곳이라면 추억을 보듬는 기회가 되고, 기회가 되면 직접 가 보시기 또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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