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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밍드림 May 12. 2024

와디럼 '삶이 사막 같을 때에는' ①

세계여행 에세이: 요르단 와디럼 (1화)

두통이 찾아와서 머리가 콕콕 쑤시는 듯 아프다. 애드빌을 찾았으나 한 알도 남지 않았다. 짜증스레 타이레놀 먹긴 했어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안산에 오른다. 올해는 아카시아꽃이 너무 많이 피었는지 무게를 이기지 못한 듯 부러진 가지가 도처에 널브러져 있다.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길 옆으로 보이는 이름 모를 나무의 파릇한 이파리 위로 자세히 보니 누렇고 하얀 벌레들이 다닥다닥 붙었다. 이미 지나왔을 자리에 작은 구멍을 송송 뚫어놓았다.


내 일상을 좀먹는 잡념이란 벌레에도 해충제를 뿌려 줄 때가 된 것 같다. 이놈의 벌레들은 없어지지도 않고 때맞춰 잘도 나타난다.




'당신에게는 사막이 필요하다.'


산다는 것 자체가 사막과 같다. 사막의 낮처럼 뜨거웠다가 사막의 밤처럼 춥기도 하다. 그런 게 반복된다.


"끝이 없는 모래의 광야 가운데에 서면, "머리는 맑았고, 모든 것은 밝고 청명했다. 모든 것을 내던진 느낌, 모든 것을 저들 뜻대로 내버려 둔 느낌, 다시 한번 모든 것을 시작하는 느낌"이 나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듯하게 변화시켜 줄 것이다."


독일 작가 아킬 모저(Achill Moser)의 동명 책 제목처럼, 사막처럼 살면서 힘들고 위로가 필요할 때, 이유이자 과정이고 또 결과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듯'한 안식을 안겨줄 사막이 필요하다.


하지만, 사막을 여행한 이야기만으로 책 한 권을 펴낼 정도면, 거기에 날 투영했을 때, 그게 '적응'하는 과정일지, 아니면 '부적응'하여 도피하는 것일지 판단이 매우 어렵다. 감당해 낼 수 있을 만큼 사막이 필요하다.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돌과 모래밖에 없는 불모의 땅이기 때문에 사막을 찾아간다고 말한다. 사막을 찾는 이들에게는 그래서 저마다의 특별한 이유나 사연이 있을 것이다.


"사막에는 왜 가는 거죠?"

"가서 보니 어떻던가요?"

"다녀온 다음 뭐 좀 달라진 게 있나요?"


사막만큼은, 내 이야기 전에, 남의 이야기가 무척이나 궁금하다.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는 어딘가에 샘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야.”라고 어린왕자가 말했지만, 과연 사막에서 샘을 찾을 수 있기는 할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저마다의 사막이 다르다


두바이의 대개 당일치기 사막 투어는 지프나 쿼드바이크의 속도를 스릴의 원천으로 하여 모래언덕을 튕기듯이 오르내리며 질주한다. 샌드보드를 타고 내려오기도 한다, 다시 오르기는 힘들 모래언덕을.



"어땠어요?"


"완전 재밌었어요."


모로코 천년고도 마라케시까지 찾아온 기회에, 2박 3일 짐을 꾸려 길을 떠난다. 알제리 국경 가까이 사하라 사막 깊숙이 들어가는데만 밴을 타고 한나절보다도 훨씬 더 걸린다. 도중에 카스바도 들르고 해서 지루함이 덜하다. 베두인(아랍 전역에 퍼져 사는 유목민) 텐트에서 잠을 자고, 그들이 차려주는 밥을 먹고, 밤하늘의 별을 본다. 중간 날이 되어 모래 지평선 너머로 붉은 태양이 떨어질 즈음 낙타를 타고 사막 위를 걷고 석양을 바라본다. 모래, 바람, 태양, 찌는 더위, 목마름, 밤, 별, 뼛속을 파고드는 추위, 그리고 낙타... 이들 요소의 조합으로 사막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된다.



"어땠어요?"


"인생에 한 번쯤은 꼭 경험하세요."


마라케시로 돌아가기 전날밤 텐트 앞 모래 둔덕에 앉아 은하수를 올려다본다. 거리를 두고 앉아있는 프랑스인 남녀가 고개를 돌려 말을 건넨다.



"Why did you come to the desert?" (사막엔 왜 오게 된 거예요?)


"......"


순간 떠오르는 이런저런 사연들. 대답하기까지 정리의 시간이 필요한, 굳이 대답할 필요가 없는, 대개는 해충제 역할의 사막이 필요했던 기구한 사연들, 정리할 미련들, 새롭게 시작할 다짐들.  


저마다의 사막이다.


(몽골 고비 사막과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부족하다.)




나의 사막 이야기, 와디럼


아무 걱정 없이 행복하게만 웃어본 기억이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다. 그렇다고 딱히 삶이 힘들거나 한 것은 아닌데 사는데 활기가 없다. 삶이 사막 같은 어느 한때, 사막 어딘가에 감춰져 있을 샘을 찾아서 와디럼(Wadi Rum)으로 향한다.


와디럼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접경한 요르단 남쪽에 있다. 붉은색을 띠어서 '붉은 사막'으로 불리는 데다, 협곡이며 절벽이 여느 사막 풍경과 사뭇 다르다. 게다가 수 만점의 암각화 등 만 년 이상 세월의 유적까지 안고 있다.


요르단 암만을 출발하여 와디럼까지 네 시간 이상 차를 달린다. 잘 닦인 길도 있고, 새로 닦는 길도 있고, 불편한 길도 있다. 중간에 멈추고 아이스크림도 사 먹지만 지루하다. 그래도, 1박 2일이 가능하게 멀고 먼 길이 아닌 게 어딘가.


이곳 가이드들이 널어놓는 자랑은 이곳에서 촬영한 영화에 대해서다. '마션'(2015)의 화성이 있고,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2009),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2019), '알라딘'(2019)도 있다. 아, 듄(2021)도 있다. (우리나라 드라마 '미생'도 이곳을 왔었는데, 모른다.)


마션 한 장면


고전 명작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 러닝타임 3시간 42분. 난 두 번 시도해서 보다가 두 번 다 중간에 잠이 든 지루한 영화지만, 가이드들이 가장 힘주어 말하는 와디럼의 산 역사이다. 반백 년 넘은 영화 얘기를 한다고 비아냥대는 사람도 보았지만, 그럴 게 아니다.


와디럼 (핸드폰으로 찍은 것 중에 드물게 마음에 드는 사진이다)




와디럼 사막 이야기가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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