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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밍드림 May 15. 2024

와디럼 '삶이 사막 같을 때에는' ②

세계여행 에세이: 요르단 와디럼 (최종화)


"누구나 꿈을 꾼다. 그러나 그 꿈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밤에 꿈을 꾸는 사람은 아침이 되면, 잠에서 깨어나 그 꿈이 헛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나 낮에 꿈을 꾸는 사람은 위험하다. 그런 사람은 눈을 부릅뜬 채, 자신의 꿈을 향해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낮에 꿈을 꾸었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실존 인물 토마스 E. 로렌스(1888~1935).


매일 거울을 볼 때는 모르다가 (아니, 애써 외면하다가),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나도 참 많이 변했구나.


나도 가끔 한낮에 꿈을 꾸기도 한다. 하지만, 몽상과 망상의 그 사이일 뿐. 눈을 부릅뜰 만한 꿈을 꾸지 않으니... 내가 사막 같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보다 보면 롱샷 장면이 자주 나온다. 사막 끝에서 아지랑이 속 점 하나가 나타나더니 아주 천천히 그리고 점점 크게 다가온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낙타를 탄 사람이 된다, 이 과정에서 내가 실제로 사막 속에 들어앉은 듯한 착각이 든다. 이내 잠이 들고 만다. 지루하다.


'아라비아의 로렌스' 스틸컷


낙타를 타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낙타가 일어설 때 또 쪼그려 앉을 때 자칫 땅바닥으로 고꾸라질까 무섭다. 낙타는 성질이 포악해서 사람을 물어뜯어 죽이고, 짓밟아 죽이기도 한다, 주인도 늘 조심한다.


사막이 그런 것 같다. 참 쉽지가 않다.




'나는 오늘도 사막을 꿈꾼다'


이 책을 지은이는 사막 레이스에 여러 번 참여했단다. 평범한 여성이 세계 5대 사막 레이스를 모두 완주했단다. 진통제를 먹어가며 열 시간 동안 같은 속도로 속보를 하기도 했단다. 처음엔 그저 자아(自我)를 찾으려 했던 것인데, 그다음부터는 주변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단다.


사막에서는 주변 사람이 궁금하다.


사막은 혼자의 힘으로는 견뎌 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낙오하면 죽고 만다.   


광활한 아랍 사막의 모래바람과 태양, 그 속에서 베두인(Bedouin) 사람들이 살아간다. 우리가 제대로 사막을 만난다는 것은 어쩌면 제대로 그들을 만나는 것이다.




다시, 와디럼, 그리고 출정식


강렬하게 타오르던 태양도 오후 5시를 지나자 기세가 한풀 꺾인다. 석양을 볼 수 있는 시간과 사막을 둘러보는 시간을 정확히 계산했는지, 때를 맞춰 그제야 픽업트럭 편대가 베두인 베이스캠프를 박차고 출발한다. 트럭 위로 올라탄 이들의 표정이 아주 신나 보인다. 그 가운데 끼어 앉았다.



단단한 모랫길, 푹푹 빠지는 모랫길, 길 타입에 맞춰 어찌 달리면 더 신이 날지 잘 짜인 매뉴얼이 있는 게 틀림없다. 다들 자기만의 목소리 무늬로 환호성을 질러댄다. 가만히 있으면 '찐따'다.


"소리 질러~!"


출처: Wadi Rum Nature Tours


손님을 짐짝처럼 싣고 달리던 트럭은 지루해질 때쯤이면 알아서 멈춰 선다.


가파르게 경사진 모래언덕을 비슷한 각도로 몸을 구부려 걸어 오른다. 앞서 가는 이들의 모습이 당최 사람의 걸음걸이 같지가 않다. 있다가 씻어내려도 끝도 없이 기어 나올 모래알을 이겨보려고 안간힘을 써 본다.


'마션'의 맷 데이먼을 흉내 내어, 사막의 고정관념인 황금빛과는 아주 다른, 불그죽죽한 사막을 바라본다.


'쓸쓸하다.'


시선이 머무는 저 멀리에서 작은 점 하나가 나타나지는 않을지 기다려본다. 지루해질 틈도 없이 가이드가 다음 길을 재촉한다.


트럭은 암각화 포인트도 놓치지 않는다. 이번엔 사람들이 바위 위를 기어 올라간다.


트럭은 높은 절벽이 둘러싼 계곡 속으로 파고든다. 파이살 왕자의 흔적이 남은 곳이다. 왕자의 병사들은 이곳을 요새 삼아 오스만 공군의 공격을 피했고, 왕자가 소리 높여 연설을 할때면 울림으로 되돌아왔다.

 


'파이살 왕자'


와디럼은 근대 아랍의 살아있는 역사다.


예언자 무함마드의 직계로서 이슬람 성지 메카를 지키던 하심(하시미테) 가문. 아라비아의 서쪽 헤자즈를 지배하던 하심가의 샤리프 후세인은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당시 독일과 한편이던 오스만제국을 분열시키기 위한 영국의 책략으로 오스만제국과의 독립전쟁(아랍봉기, 1916~1918)을 치른다. 아들 파이살 왕자는 리더가 되어 아라비아반도 서쪽을 따라 북방원정에 나선다. '아라비아의 로렌스', 케케묵은 영화 이야기가 그런 과정 속에 숨을 쉰다.


와디럼을 지나며 아카바로 진군하는 로렌스와 전사들 (출처 : CNN)


전쟁의 끝에, 샤리프 후세인과 왕자들은 헤자즈(1916~1925), 트란스요르단(1921~), 이라크(1921~1958), 시리아아랍(1921~1930)과 같은 왕국을 세운다. 샤리프 후세인 본인은 헤자즈를 통치하고, 압둘라 왕자는 트란스요르단을, 파이살 왕자는 이라크와 시리아아랍을 통치한다.


왕국은 번성하고 왕자들은 행복했을까? 헤자즈 왕국은 현재의 사우디아라비아 왕조인 사우드 가문에 빼앗겼고, 시리아아랍 왕국은 프랑스로 넘어갔다. 이라크에서는 1958년 쿠데타로 왕조가 멸망했고, 유일하게 남은 게 오늘날의 요르단이다.


와디럼은 붉은 모래를 영사막 삼아 아이러니한 역사의 희귀 영상을 틀어준다.



와디럼 너머로 지는 해


암벽을 기어올라 해가 지기를 기다린다.


아랍인들은 말한다. 베두인이 있었기에 그 옛날 사막을 건너고 또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고. 그리고, 도시로 가지 않은 베두인 사람들은 여전히 사막 속에서 살아간다.


요르단 국왕과 더불어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팔레스타인에서 피난 왔거나 베두인 사람들이다.


픽업트럭을 타고 환호성과 함께 와디럼 속으로 출정했던 요르단 사람들은 석양 아래 마냥 행복해 보인다.


'무슨 생각에 그리 즐거운 것일까?'



해가 진다. 와디럼의 석양은 붉은 모래 위에 노란색을 덧칠한다. 더 이상의 붉은색 추가는 의미가 없나 보다.





트럭은 사람들을 다시 제자리로 데려다 놓는다.


베두인 사람들이 저녁 뷔페를 근사하게 차려낸다.


밤이 깊어지고, 피곤한 몸을 끌고 텐트 밖으로 나와 보니, 밤이 하늘 한쪽에 은하수를 그려놓았다. 내가 처음 본 은하수인지, 아니면 어릴 적 보았으나 전혀 기억이 없는 것인지 헷갈린다.


와디럼에서 바라본 은하수 (출처: 오마이뉴스)


와디럼 사막을 누비던 밝은 시간들의 이야기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난다. 으스스하다. 밤의 사막은, 이곳저곳 사람의 소음은 들려와도, 절대적인 고요 속에 고독 그리고 깊은 사색을 선물한다.



사막이 필요한 이유


나의 내면에는 더없이 척박한 땅, 사막이 들어앉았다. 가끔씩 진정 화가 날 때면 또 크게 좌절할 때면, 사막과 나는 민낯으로 서로 만난다.


누군가, 세상 존재의 가치를 알게 하기 위해 모든 불필요한 것들을 없애버린 땅이 사막이라고 했다. 내 삶을 구성하는 하나하나의 요소들을 되짚어본다.


사막은 참 묘하다. 낮과 밤이 참 다르다.


낮에는 작은 모래언덕 하나를 오르기 위해 수 백번 작은 걸음을 옮겨 큰 걸음 여럿을 만들어야 했고, 역사 이야기에 심취했다. 밤이 되니, 머릿속은 분명 텅 비어져 있는데, 이런저런 짧은 생각의 단편들이 마구 헤집고 다닌다. 그런데, 마음에는 정적이 흐른다. 아마도, 그 순간 오로지 내 내면의 사막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겠다. 다른 사람들과 섞여, 그럼에도 지금 편히 쉬고 있는 것이겠다.


루소가 말했다. “욕구를 그리 많이 갖지 않고 자기를 다른 사람들과 자주 비교하지 않을 때 인간은 본질적으로 선량하게 된다. 반면 많은 욕구를 갖고 남의 평판에 지나치게 집착할 때 인간은 본질적으로 사악해진다.”


나도 한낮에 두 눈 부릅뜨고 꿈을 다시 꾸고 싶다. 남을 의식하지 않고, 순수한 내 꿈을 꾸고 싶다.


잡념이란 해충은 계절이 바뀌면 어김없이 다시 찾아올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때맞춰 해충제를 뿌려주어야 하겠다.




와디럼 사막 이야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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