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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밍드림 May 06. 2024

프로방스 '알퐁스, 빈센트, 라벤더, 해바라기' ①

세계여행 에세이: 프랑스 프로방스 (1화)

프로방스에 7월이 오면, 라벤더꽃이 활짝 피어나 세상은 온통 보랏빛으로 물든다. 들도 사람도 모두 보랏빛 향기에 취한다. 그뿐이랴. 프로방스의 7월은 해바라기가 만개하여 들도 사람도 모두 샛노랗게 물든다.




"우리 주위에는 총총한 별들이 마치 헤아릴 수 없이 거대한 양떼처럼 고분고분하게 고요히 그들의 운행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저 숱한 별들 중에 가장 가냘프고 가장 빛나는 별님 하나가 그만 길을 잃고 내 어깨에 내려앉아 고이 잠들어있노라고..."


프로방스는 알퐁스 도데의 '별'의 고향이다. 7월의 어느 날, 갑자기, '별'에나 나올 법한 프로방스의 어느 촌스러운 마을이 그리워진다. 낮이면 내리쬐는 따가운 햇볕에 쿰쿰한 가슴을 열고, 밤이 되면 창가에 서서 무수히 빛나는 별들을 세고 싶어 진다. 한 번 충동에 사로잡히니 쉽게 헤어나질 못한다.


급하게 마음먹었지만, 막상 프랑스 남동부 끄트머리 지중해 가까운 곳까지 가려니... 쉽지 않은 길이다.




리옹(Lyon) 옆 깊은 산골


암스테르담에서 시작하여, 벨기에 브뤼셀을 지나고, 프랑스 영토로 들어와 부르고뉴프랑슈콩테 지방의 디종을 지나고, 오베르뉴론알프 지방의 리옹에 이르기까지 쉬지 않고 차를 달린다. 애초에 무모한 시작이다. 비행기를 탔으면 한국까지도 갈 시간이다.


리옹은 프랑스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다. 프로방스로 가는 길이니 쉬어 가더라도 깊고 깊은 산골이 좋겠다. 프로방스와는 반대 방향인 남서쪽으로 한 시간 남짓 더 숲속으로 산속으로 파고들어 여행책자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 '생 보네 르 프롸'라는 마을에 도착한다.


눈이 닿지 않는 가까운 곳에 새끼 여우가, 푸르른 숲 속에는 어미 곰이 어슬렁 거릴 것만 같은 끝 간 데 모를 깊은 산속에 외떨어진 곳이다. 내일이면 가 볼 프로방스의 강렬한 색채와는 확연하게 대비되는 차분한 초록 풍경이다.


드넓은 들판과 숲을 품은 수영장에서 우리 집 악동들은 한껏 산골의 즐거움을 들이마신다.


Hob Fort du Pré 호텔


이삼 분 떨어진 마을로 가본다. 난데없는 이방인을 내심 신기해하는 듯한, 말은 잘 안 통해도 후덕한 인심으로 맞아주는 시골 마을회관 같은 조그만 비스트로 바에서 막 구워낸 피자와 안심 스테이크, 그리고 멀지 않은 곳 론(Rhone) 밸리의 와인 두 잔을 아이들의 수다와 어른들의 잔소리를 곁들여 먹어본다.

 



프로방스, 인상파 화가들이 빛을 쫓은 곳


프로방스로 떠난 이튿날, 생 보네 르 프롸를 뒤로 하고 세 시간여 남진하여, 드디어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Provence-Alpes-Côte d’Azur) 지방에 다다른다. 아비뇽(Avignon)이다. 남(南)프랑스가 시작된다.


한낮의 하늘은 놀랍도록 파랗고, 태양은 유황빛으로 반짝이며, 들판엔 라벤더가 보라색 호수를 이룬다. 마을 사람들은 태양을 닮은 노란색으로 벽을 칠하고, 열어젖힌 덧창 사이로 놓인 창백한 빨간색 화분에는 메리골드, 에키네시아, 노랗고 빨간 꽃들이 빼곡히 모여 앉았다. 살짝 엿보이는 주방의 식탁 위로는 라벤더 한 다발이 무심히 놓여 있다.


프로방스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별이 빛나는 밤이 오기 전 프로방스의 사람과 자연이 어울려 사는 풍경은 이럴 거라고 한껏 기대에 부풀어, 머릿속으로, 멋지지만 어설프기만한 풍경화 한 폭을 그려본다.


출처: voyageinstyle.net


프로방스는 넓고 넓다. 모든 곳에 다 발길이 닿을 수는 없으니, 여느 여행자의 눈에 가장 프로방스다워 보이는 마을을 경품 제비 뽑기 하는 듯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골라본다. 아비뇽에서 이내 동쪽으로 방향을 잡고 고르드를 향해 다시 떠난다.


프로방스의 시작, 고르드(고흐드)


라벤더의 호수를 바라본다. 프로방스는 라벤더로 시작해서 라벤더로 끝난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라벤더의 호수를 건너고, 올리브 나무 사이를 빠져나가다 보면 저 멀리 높은 언덕 위에 중세풍 마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고르드다.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손꼽히는 곳.


고르드(Gordes) Free Image


'고르드'의 뜻은 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나무로 울타리를 세운 방어요새라고 한다. 8세기에 베네딕틴 수도회의 ‘생 샤프레’ 수도원이 속세를 멀리하고 이곳으로 찾아들었고, 11세기에 권세 높던 가문이 마을을 굽어보는 언덕 위에 거대한 성을 세운 것이 오늘날의 고르드다.


고르드의 아름다운 위용은 스페인의 톨레도와 상당히 닮은 꼴이다. 하지만, 무언가 목가적이어야 할 프로방스에 대한 기대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낮은 돌담이 쭉 이어진 산길을 걸어 오른다. 햇살이 따가워 등으로 땀이 흘러내리지만, 고르드 속살에 대한 궁금증으로 마음은 벌써 안달이고 발걸음은 빠르다.



고르드의 속살은 따가운 햇살을 받아 샛노랗게 달아오르는 거만한 노란색의 흙벽과 돌벽이다.

 


크지 않은 마을을 이곳저곳 둘러보며, 프로방스에 대한 새로운 색채와 형식을 알아간다.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다. 덩치만 컸지 순둥순둥한 개를 데리고 산책하고, 돌로 지은 집에서는 여행객의 허기진 배를 위해 파스타를 내어온다.



조그만 광장 길모퉁이 카페에서는 뜨거운 햇볕을 가려주는 파라솔 아래 동네 주민인 듯 우리 같은 여행객인 듯 삼삼오오 모여 앉아 오후 한때를 한가로이 즐긴다.


프로방스의 뜨거운 오후를 즐기는 나름 한 가지 방식이렸다.



두 번째 마을 루시용으로 다시 길을 떠난다.




다음 편에서 프로방스로 떠난 이튿날 두 번째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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