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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밍드림 May 11. 2024

프로방스 '알퐁스, 빈센트, 라벤더, 해바라기' ③

세계여행 에세이: 프랑스 프로방스 (최종화)

어디를 가든, 무엇을 보든, 누구를 만나든 간에 여행의 순간들이 힐링이 되고 오래도록 추억 속에 살아 숨 쉴 수 있을 때는 바로 '교감'(交感)이 함께 하였을 때이다. 내게 '여행의 교감'이 어떤 것이냐고 묻는다면, 'Beyondness'(뻔하지 않음)과 'Betweenness'(서로 이어짐) 두 단어로 대답하겠다.


햇살과 빛깔이기도 하고, 노점상 과일과 길거리 꽃이기도 한 아주 특별하다고 할 수 없는 것들을 프로방스에서 만났을 때에 아주 특별해지는 감정, 그것이 'Beyondness'이다. 스테파네트 아가씨 곁에서 목동이 올려다보았을 프로방스 밤하늘의 ''들과 '아를르의 여인'과의 불운한 사랑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만 스무 살 청년 쟝이 느꼈을 비탄을 상상할 때 이어지는 알퐁스 도데와의 감정선이 'Betweenness'이다. 또한, 샛노란 '해바라기'와 '별이 빛나는 밤' 풍경을 바라볼 때 문득 빈센트 반 고흐의 예술혼이 느껴진다면 그건 프로방스가 매개하는 화가와 나 사이의 'Betweenness'이다.



    

프로방스를 관통하듯 동쪽으로 움직여 두어 시간 차를 달리다 보면,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 다음으로 규모가 크다는 베르동 협곡(Verdon Gorge)에 이른다. '최고'의 그랜드 캐니언을 가 보았으니 굳이 그다음의 것을 멀리 찾아갈 이유는 없으나, 들을 지나고 산을 넘으며 혹시라도 프로방스 시골의 또 다른 정취를 찾아볼까 기대해서였다.  


틀리지 않았다.


산속을 몇 번씩 들고나며 조우하는 작은 마을들을 허투루 볼 일이 아니다. 여행안내서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어도, 애써 꾸미지 않았어도, 많지 않은 집들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경치 좋은 명당자리에 모여 그들만의 프로방스 타입이 되었다. 길가 외떨어진 마스(Mas) 담벼락 위에서 빨갛고 노란 꽃들이 무심한 듯 제 할 일을 하고 있다.


"봉쥬르 마담 무슈" 불러보면, 인상 좋은 촌노가 빠끔 내다볼 것만 같다. 무척 궁금하다.   




베르동, 잠시만,


그랜드 캐니언 같은 압도적인 위용은 부족하다. 배부른 돼지 같은 생각일까.


프로방스에 쭉 살다가 여름 한때 노르웨이로 구경온 것 같은 느낌이다. 협곡을 따라 높은 산의 길에서 낮은 땅의 길로 십여 킬로미터 가까이 점점 내려가며 차를 몬다. 노르웨이 험한 길도 잘 달리던 운전자인데 협곡 초입의 천길 낭떠러지 길에서는 아찔아찔하여 앞만 보고 살금살금 움직일 도리 밖에 없다. 그래서, 베르동은 베르동이다.


가까이 내려가 보면, 계곡의 짙푸른 물 위로 여러 대의 카누가 둥둥 떠 노닌다. 여기도 프로방스임을 깨닫는다.


 

조금만 더 남동쪽으로 나아간다면, 눈부신 햇살아래 코발트블루 빛깔로 바닷물이 반짝일 게다. 번잡한 니스(Nice)는 은퇴한 뒤에나 장년을 위로하기 위해 남겨둔다고 하자.



레보드프로방스(Les Baux-de-Provence), 오후 4시 50분의 태양


다시 프로방스 서쪽 끝의 아를(Arles)로 되돌아갈 시간이다.


아를 가까이에서 생레미드프로방스(Saint-Remy-de-Provence)와 레보드프로방스(Les Baux-de-Provence) 두 마을이 서로 멀지 않다.


노스트라다무스의 고향이기도 한 생레미드프로방스에는 고흐가 일 년 동안 입원했던 정신병원, 생폴드모졸(Saint-Paul De Mausole) 수도원이 있다. (원래 퇴마 수도원이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별이 빛나는 밤'을 그렸다. 고흐 삶의 비극적 결말이 상흔으로 남아있는 ('까마귀 나는 밀밭'과 고흐 형제의 무덤을 가 보았다.) 파리 외곽 오베르쉬르우아즈에서 너무 아팠던 교감의 기억이 떠오른다. 가지 말아야겠다.


오후 5시가 되며 강렬하던 기세가 조금은 죽은 듯한 태양이 비추는 레보드프로방스의 골목을 따라 걷는다. '중세'와 어우러진 프로방스 방식이 어디 이곳뿐이겠냐만, '중세의 중후함 >= 프로방스의 아기자기함'의 독특한 포뮬러의 아리따움에 눈길이 쉴 새 없이 분주하다.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나는 곳이 아닌데도, 동네가 막 신비하다기보다 이곳이 처음이 아닌 듯 아주 익숙하게 느껴진다.


고급 레스토랑이 여럿이요, 지갑이 절로 열리는 이런저런 가게들이 다양하다. 우리 집 현관 마주한 벽에 걸어둔 시계가 그런 사연을 품고 있다가 가끔씩 떠나온 고향 풍경 이야기를 내게 들려준다.


 



알퐁소, '풍차 방앗간의 편지'


아를에서 가까운 조그만 마을 퐁비에유(Fontvieille). 이곳을 찾아가는 이유는 오직 하나. 알퐁스 도데(1840~1897) 연작단편소설집 'Letters from My Windmill'의 바로 그 풍차를 찾아서다.



세월이 흘러도 감성만은 여전한 '별'들의 고향이다.


"그리고 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서로의 곁에 앉아 있었습니다. 만약에 당신이 별들이 아름답게 빛나는 밤을 지새운 적이 있다면 우리가 잠을 자야 하는 것으로 아는 그 시간에, 신비로운 또 다른 세계가 고독과 고요 속에서 깨어나는 것을 아실 겁니다"


프로방스의 온전한 감성이다. 프로방스 이름을 들으면 알퐁스 도데가 떠오르고, 알퐁스 도데 이름을 들으면 프로방스가 생각날 지경이다.



내 어릴 적 아무것도 모르고 알퐁스 도데의 '아를르의 여인'을 읽었다. 스무 살 청년 쟝의 허망한 죽음 앞에 적잖이 충격을 받은 기억에도 불구하고, '아를르'(아를) 그 이름을 더 신비롭게 기억하였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별을 바라보는 목동도 그렇고 쟝도 그렇고, 불행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고향 프로방스에 대한 애착이 이 짧은 소설들의 탈고가 있게 하지 않았나 싶다. 프로방스 밤하늘에 내가 바라본 어떤 별들은 150년 전 알퐁스가 바라본 별들과 같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요즘처럼 마음이 불안하고 욱하며 화를 내는 상황이 잦을 때, 인간 본성 심연의 순수한 선함을 찾아 다시 읽어보는 '별'이다.


사이프러스 나무가 여전히 멋지게 서 있는 곳 옆 풍차 상점에서 'Letters from My Windmill' 책 한 권 사서 아이들에게 건넨다. 그 후로 그 책을 읽었는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



빈센트, '밤의 카페테라스', '해바라기'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외에도 마네, 모네, 세잔, 고갱 같은 인상파 화가들이 하나같이 프로방스를 좋아했다.  


아를로 들어선다. 말 그대로 '예술과 역사를 가진 도시’다. 2천 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아를이지만, 이 도시가 유명한 이유 중의 하나가 빈센트 반 고흐의 짧디 짧은 화양연화 흔적을 간직한 곳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를을 찾아든 두 번째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요 며칠 프로방스 시골을 휘젓고 다녔다고 번잡한 도시를 걷는 사이 금세 지친다.



1888년 2월 (사망하기 2년 전) 빈센트는 파리를 떠나 프로방스로 옮겨와 아를에 머물렀다.


프로방스의 태양과 빛깔을 좋아했다, “여기에 있는 내 집은 신선한 버터의 색깔인 노란색이고 창문엔 밝은 초록색 덧문이 있다. 이 집은 온몸에 햇빛을 받으며 싱싱한 초록색 나무와 월계수, 아카시아가 있는 정원의 모퉁이에 있다.”


생애 전체 작품의 1/3 이상인 300여 점의 그림을 이곳에서 그렸다.


아를의 노란색은 빈센트에게 영감과 열정을 선물했고, 1890년 37세 때 오베르쉬르우아즈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할 때에도 이곳 프로방스에서 여전히 매혹적이었을 것이다.


좌측 'Cafe Terrace at Night' (1988. 고흐 35세때). 우측 여전히 영업중인 '밤의 카페(Le Café La Nuit)


빈센트가 떠난 지 130년 이상 세월이 흐른 후에 아를을 찾은 이방인 여행객에도 이곳의 노란색은 여전히 매혹적이다.


뜬금없이 프로방스 해바라기 밭에 서서 "러블리! 러블리"를 연발하던 노신사가 생각난다.


Sunflowers. 좌측 (암스테르담 반 고흐 뮤지엄) 우측 (도쿄 솜포미술관). 두 작품 모두 1889년 1월




프로방스 이야기를 여기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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