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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밍드림 Apr 30. 2024

우수아이아 '세상 끝에서 길을 묻다' ①

세계여행 에세이: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 (1화)

"더 이상 발 디뎌 앞으로 나아갈 데가 없다. 이제 세상의 끝이다.", 이런 상황을 로망으로 가졌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기억해 보면, 정작 내 스무 살 적에 아니면 서른 즈음에는 그런 로망이 없었다. 오히려 마흔 즈음의 어떤 날들에 머리로 써 보는 청춘일기 속에서 나는 과거의 내가 세상의 끝에 서 있었기를 소망하였다.


더 이상 젊지 않게 된 어느 날에야 알게 되었다, 내 청춘은 아팠다는 것을. 그리고, 그 시절의 나는 덥수룩한 머리에 반다나 헤어밴드를 질끈 동여매었고, 무릎 찢어진 청바지에 땀에 젖은 티셔츠를 입었으며, 다 해진 배낭을 등에 지고서 바람 세찬 어딘가 바닷가에 홀로 서 있어야 했다. "세상의 끝까지 와버렸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를 소리 없이 외치고 있어야 했다. 그게 로망이었다.


내게 세상의 끝은 아팠던 청춘으로 거슬러 오르는 치유의 땅이었다.



 

몇 년 전 우리나라와 대척을 이루는 지구 반대편의 아르헨티나까지 날아간 것은 당시 그 나라 경제상황이 급격히 나빠지고 있었고, 내게 월급 주는 회사가 그 나라에서도 사업을 벌이고 있던 탓(덕)이었다. 한 번은 파리를 경유하여 에어프랑스를 타고 날아갔고, 또 한 번은 아부다비를 거쳐서였다. 어느 루트든 간에 가도 가도 끝없는 머나먼 길이었다.


나에게 아르헨티나는 성장 드라마 같은 미성숙한 감성이 혼합된 피사체다


좌측 상단으로부터 시계 방향으로 '엄마 찾아 삼만리', '에비타',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아디오스 노니노', 그리고 '여인의 향기'


"엄마 찾아 삼만리"


어릴 적 보았던 일본 애니메이션 '엄마 찾아 삼만리'가 남긴 여운은 꽤나 길다. 아직까지도 "아득한 바다 저 멀리 산 설고 물길 설어도 나는 찾아가리 외로운 길 삼만리..." 주제가 가사와 멜로디를 또렷하게 기억한다. 엄마를 만날 듯 못 만나게 될 때마다 애타던 감정도 기억의 한쪽에 파편처럼 박혀있다.


'사랑의 학교'로 알려진 1886년작 이탈리아 동화가 원작인데, 마르코의 엄마가 이역만리 아르헨티나로 가정부 일을 하러 간 스토리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의 아르헨티나는 세계적 부국이었고, 어느 비평가의 말대로 우리나라에선 소달구지 타던 1913년에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지하철이 개통될 정도로 번성하였다.


지금은 콩(대두) 팔아서 대외채무를 갚는 신세로 전락했고, 나만 해도 회사에서 이 나라 올해 콩 작황이 어떠한지를 살펴보며 사업 리스크에 대비하던 때도 있었다.


"에비타"


미라 상태로 영면한 퍼스트레이디 에바 페론(Eva Perón, 1919-1952). 느닷없이 그녀를 세상으로 끌어낸 뮤지컬 에비타(Evita). 1978년 런던 웨스트엔드 초연 후 1979년 뉴욕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려졌고, 1996년에는 마돈나 주연의 영화로 개봉되었다. 이 뮤지컬의 압도적 넘버가 'Don't cry for me Argentina'이다.


90년대 즈음에 이 노래를 자주 들었고, 아르헨티나에 대한 고정관념이자 감성이 되었다.


밑바닥에서 출발하여, 스스로였든 남편 후안 페론(1946~1955, 1973~1974 대통령)의 그림자였든 간에, 거물이 되었고, 자궁암으로 33년 짧은 생을 마감하기까지 이 노래가 모든 걸 다 설명하는 듯했다. (사망 전 남편 행보에 같이한 그녀 몸무게 37kg이었고, 죽어서도 남편을 위해 미라가 되었다.)


페론의 포퓰리즘은 가난한 이에게는 열광의 대상이었지만, 나라를 병들게 한 원흉으로 지목되며, 에비타 또한 성녀와 악녀 사이에서 평가되고 있지만 말이다.


"탱고"


에로틱한 조명 아래 나름 멋스럽게 차려입은 연주자들, 뇌쇄적으로 자극하는 당김음 리듬 속에 말초적 자극의 스텝으로 엉겨 붙는 남과 여. 내 원초적 탱고의 시작점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탱고에 빠져든 계기는 2003년 KBS '한민족 리포트-부에노스아이레스엔 오리엔탱고가 있다'라는 다큐멘터리였다. 피아노 한 대와 바이올린 하나로 '고향의 봄'을 연주하던 모습은 VCR을 튼 것처럼 선명한 기억으로 남았다. 뉴에이지와 탱고가 오리엔트에서 만나는 장면이었다.


탱고는 멀리 있지 않았다. 1992년 영화 '여인의 향기' 속에 카를로스 가르델(Carlos Gardel, 1890~1935)의 'Por Una Cabeza'가 있었고,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는 김연아 선수가 아스토르 피아졸라(Astor Piazzolla, 1921~1992)의 아디오스 노니노(Adios Nonino)를 프로그램 곡으로 들고 나왔다.


나의 탱고 감성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누에보탱고(New Tango) 대표곡인 오블리비언(Oblivion)리베르탱고(Libertango)를 첼로, 바이올린, 피아노, 반도네온(아코디언) 앙상블 선율로 들을 때면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지와 상관없이, 아르헨티나 사람들 말처럼, 인간사 희로애락이 모두 탱고에 담겨 있는 것 같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밤 (feat. 탱고)


쇠락한 가문의 다시 못 올 영광을 보는 듯한 시내와는 달리 라플라타 강과 대서양이 만나는 곳, 탱고의 고향과 같은, 푸에르토 마데로(Puerto Madero)의 밤은 휘황찬란하기만 하다.


카바냐 라스 릴라스(Cabaña Las Lilas) 레스토랑에서 국룰처럼 스테이크와 와인으로 저녁을 먹어보지만, 마블링이 많을수록 좋은 것으로 아는 내겐 아르헨티나 소고기는 버겁고, 풀 바디에 탄닌이 많은 아르헨티나 말벡 와인은 피노누아(Pinot Noir) 취향의 나와는 가까워지기 어렵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탱고 공연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사람 냄새나는 탱고 바(카페)에 더 가보고 싶었으나, 오케스트라 연주에 노래와 춤이 어우러지며 탱고의 시대적 변천사를 보여주는 대형 쇼가 더 나을 거라는 충고에 휘둘려 탱고 포르테뇨(Tango Porteño) 극장식당에 들어선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밤은 탱고 쇼와 함께 저물어 가고, 내일 아침이면 티에라델푸에고(Tierra del Fuego)의 리오그란데로 가는 아르헨티나 항공에 탑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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