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직위가 높으면 반말과 명령어가 많다.
조직을 관리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꼭 권위적이지 않더라도
경쟁상황을 극복하고
목표 달성을 위해서 힘을 하나로 모아가다 보면
우리나라 특유의 군사 문화가 발동될 때가 종종 있다.
단순히 효율만 따진다면
어느 정도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은 기계를 움직이는 부품이 아니기 때문에
리더의 인격은 그 조직의 효율성까지도 좌지우지할 때가 많다.
무조건 목표를 정하고
불도저 스타일로 밀어붙이는 방법으로는
멀리 갈 수가 없다.
목표를 공유하고
필요성을 인식하면
내부가 단단해지고
전투력이 상승하게 되어 있다.
나는 그 살벌한 군대에서
부하에게 존대를 하고 막말을 하지 않았던
중대장을 지금껏 기억하고 있다.
빠르고 강하게 전달해야 할 군대에서
부하에게 존댓말을 쓰고
합리성을 추구하려고 했던
그분은 우리들의 영웅이었다.
소령으로 진급을 앞둔 싯점에
중대 평가가 있었다.
그는 특별히 지적 사항만 나오지 않게 하라고 했지만
내무 반장 중심으로 회의를 하고
전체가 똘똘 뭉쳐 사단에서 1등 평가를 받자고 했다.
위에서 내려 꽂는 명령이 아니라
공감해서 자발적으로 움직인 행동이었다.
총기 관리, 연병장 청소, 취사장 위생 등
체크리스트를 선임들이 만들어서
매일 점검을 했다.
중대장이 자기 진급을 위해서
갈궈서 했던 것이 아니다.
저런 분은 우리가 진급을 만들어 드려야 한다고
전체가 공감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공개적으로 발표는 되지 않았지만
아마도 최상급 평가를 받은 것 같다.
중대장은 다음 해
소령으로 진급하여 군단으로 떠났다.
마지막 연병장에 모인 우리들에게
중대장은 자기가 만난 부대중에 최고라고 칭찬을 하면서
“너희들이 나를 위해 희생하고 노력한 거
군 생활 끝날 때까지 기억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1년 정도 지난 후에
제대한 나에게 전화가 왔다.
물론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니
집전화로 걸려 왔고
목소리를 듣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승리!”를 외쳤다.
우리 사단은 인사로 “승리!”를 외쳤기 때문이다.
제대한 중대 선임들에게 연락해
급히 나온 전우(?)가 4명이나 되었다.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고 2차 3차로 이어지면서
그는 우리에게 처음으로
강한 명령을 내렸다.
“장가갈 때 반드시 연락해라!”
중대장은 나중에 중령까지
진급하고 옷을 벗었다.
나와서 고향인 충청도에서
예비군 중대장으로 복무했다.
그가 서울에 올라오면 연락이 왔고
시간되는 부대 선후배가 나와 만나곤 했다.
그렇게 10년은 하다가 흐지부지 된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나 아쉽다.
그런 인생 선배를 만나
나도 리더가 되었을 때
그를 닮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그처럼 완벽한 리더는 아니었지만
골 죽이는 선배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