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전쯤
나는 회사에서 인재 육성 프로그램으로
뉴욕에 갈 수 있었다.
파슨스에서 한학기 강의를 듣고
뉴욕의 선진 광고물들을 보고 오라는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뉴욕을 간다’라는 관광 안내책을
서울에서 사가지고 가
수업이 끝나는대로 주로 걸어서
돌아다녔다.
아마도 매일 4,5시간씩은 걸은 것 같다.
그래도 피곤하지 않았다.
지금이야 우리가 한류로 세계 관광 시장에서
선두그룹에 있지만 당시만 해도
뉴욕은 한국 사람들에게 꿈의 여행지였다.
1월 중순에 뉴욕의 ‘스탠포드호텔’에 짐을 풀자 마자
센츄럴파크로 향했다.
영화에서 본 것처럼 조깅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공원에 들어서자 정말 영화에서 본 것처럼
젊은 남녀들이 조깅을 즐기고 있었다.
나도 눈치를 보다가
한가한 곳으로 가 뛰어보았다.
그렇게 매일 쳇바퀴 돌 듯하다가
하루는 한국 음식이 땡겼다.
호텔 근처가 바로 한인타운이기 때문에
먹으려면 언제든 할 수 있었지만
한동안은 현지식으로만 했다.
마치 뉴요커가 된 것처럼…
그토록 가고 싶었던 뉴욕에서
대한민국이 그리워진 이유는
순전히 음식 때문이었다.
난 여행을 가면 대부분 현지식으로
맛있게 먹는데
이번 연수기간은 무려 6개월이나 되어서
쉽지 않았다.
그리고 굳이 한식을 피할 이유도 없었다.
한동안 책자에 소개된 맛집을 찾아 다녀서인지
아니면
음식이 워낙 기름져서 그런지
된장찌개나 김치찌개가 그리웠다.
기왕이면 김치찌개가 나을 듯해서
검색해 보니 호텔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맛집이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이른 시간임에도
한걸음에 달려 갔다.
김치찌개와 된장찌개 두개를 주문했다.
다 먹을 것 같아서 주문했지만
반에 반도 먹지 못했다.
다만 고향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시간만으로도
그날 저녁은 훌륭했다.
우리 유전자 속에 있는 한국 음식에 대한 향수가
더욱 한국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촬영 차 세계 곳곳에 다녀봤지만
한식이 없는 곳에도 중국식은 있었다.
아직 우리 동포들이 자리 잡지 않은 곳에도
중국인들은 일찍 세계 곳곳에 진출해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호주의 사막 지방에서 촬영할 때도
30분 정도 차로 달려가
중국식을 먹으면서 챙겨간 고추장으로
향수를 달랜 적도 있다.
음식은 쉽게 바뀌지 않는 것 같다.
난 아이들이 캐나다 토론토에서 살고 있는데
여전히 한국식으로 식사를 한다.
물론 밖에 나가서 일할 때는
현지식으로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한식으로 끼니를 해결한다.
그래서 민족 문화가 형성되는 것 같다.
쿠바의 아바나에서 만난 애니깽 후손 분들도
김치를 담가 먹고 있었다.
엄마가 해준 음식이 몸에 받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맛있는 현지식을 먹고 들어와도
김치 한조각을 먹어야 시원해진다는 것이다.
지금은 포장 음식들이 잘 되어 있어
마트에 가면 대부분 있는 세상이지만
오리지널에 대한 향수는 강한 것이다.
그들이 한국에 오면 찾는 음식점이 삼겹살 식당이거나
김치찌개, 된장찌개 식당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호주에서 사업하는 후배가 한국에 들어오면
인사차 전화하고 꼭 묻는 게
요즘 핫한 한정식 식당 추천을 부탁한다.
유전자의 힘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다행이 한류 열풍으로
많은 외국 관광객들이 들어와 한식을 즐기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