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제목>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장르> 사회 에세이 (과학 아님)
<저자> 룰루 밀러
<출판사> 곰출판
<출간일> 2021.12.17.
<가격> 17,000원
<페이지> 300쪽
"좋은 질문, 잘못된 조언자"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힘에 비해서는, 메시지가 아쉽다"
별점 ★★★ 3점/5점
- 본 목적의 성공: 고발
저자인 룰루 밀러의 본 목적은 아마도, '고발'이었을 거다. 읽기 쉽게, 그리고 감성을 집어 넣어 쓰다보니 얼핏 그렇지 않게도 보이지만, 결국은 그렇다. 룰루 밀러는 둘을 고발한다. 하나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과학자, 한 개인을 고발한다. 한편으로는 조던의 과거 행적을 여전히 벌하지도 않고, 옹호하며 방치하고 있는 미국 사회를 고발하고 있다.
사실 나에게는 아무래도 좋다. 이제 와서 우생학자가 도덕적으로 틀렸다고 말을 한들 새롭지 않다. 스탠포드 대학 창립 초창기의 '저명한 학자이자 행정가'가 실은 도덕적으로 악한 인물이라는 것도 별 관심 없다. 미국 법률이 아직도 우생학적이며 반인간적인 불임수술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점도 실망스럽긴 하지만, 큰 관심사는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미국 사회에 살고 있지 않으며, 스탠포드 대학은 미국 사회에서 높은 위상을 갖는 학교일 뿐이니까. 아 물론, 한국 사회의 대학 설립자 또는 학자와 한국 사회의 법률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주는 건 사실이다. 나는 다만 '직접적'인 관계가 약하다고 말하고 싶은 것뿐이다.
- 이 책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건 '서사',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3/4 지점까지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아마 끝까지 흥미롭게 읽은 사람들도 대다수일 수 있다. 저자에게는 사회 고발 이야기를, 자신의 '정체성 고민'으로 포장하는 재주가 있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도덕적으로 악하며, 미국 사회는 조던을 옹호하고 우생학적 관점의 법률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는 비판을, 이렇게 포장했다. '나, 룰루 밀러의 존재 가치는 무엇인가?'
룰루 밀러의 서사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서사, 이 두 주인공의 서사가 중간에서 만나면서 이 책의 흡입력은 최고조에 달한다. 바로 이 서사가 한국에 사는, 인문학 물이 한참 빠지지 않은 나에게 매력적인 이유였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었던 데는, 그런 배경이 있었다고 본다.
- 좋은 질문을 잘못 대답하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문제는 어느 시대를 사는 인간에게나 유효하다. 전통적인 질문이지만, 항상 필요한 좋은 질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서사의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룰루 밀러는 무언가 착각을 하고 있다. 이 질문을 과학의 힘으로 대답해야만 한다는, 오늘날 과학자들과 일반인들이 흔히 갖고 있는 착각이다.
과학은 하나의 관점이고 시각이며, '믿음'일 뿐 '진리'나 '사실'은 아니다. 룰루 밀러가 자신이 공부한 과학 또는 생물학에서 자기 자신의 존재 의의를 찾지 못한 건 당연한 일이다. 원래 이 학문 분과는 그런 문제를 제기하지도 대답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모든 생물을 모두 해부학적 관점으로 바라 보는 것, 진화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 이 어떤 것도 그 생물들의 '실제'를, 그 전부를 설명하지 못한다. 과학이라면, 인간이 만든 이론, 관점, 담론이라면 항상 무언가를 생략한다. 지극히 일부만을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 비판 대상과 똑같이 사고하고 있는 비판자
저자는 아가시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비판한다. 아가시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공통점은 '과학'을 '도덕'과 결합해 사고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저자는, '나의 존재 의의'를 과학이 아니라 다른 시각과 관점에서 획득해야만 한다. 그런데 기껏 폭력적인, 우생학적 '분리'와 '수술'에 의해 씻을 수 없는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만나러 가서는, 저자는 다윈에게 의지해서 해답을 찾아낸다. 애나와 메리의 상호 의지에서 대체 무엇을 본 것일까? 다양한 유전자의 '유전'이라는 관점에서 피해자들을 옹호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한다면 자신의 유전자를 이미 물려줄 수 없게 된 애나는 인류라는 종적인 측면에서 가치가 없게 된 것은 아닐까?
저자는 우생학적 관점이, "무한히 많은 관점 중 단 하나의 관점"(p.227)일 뿐이라고 한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분기학이든 생물학이든 과학이든 역시 단 하나의 관점일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과학에서 도덕을 찾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저자는 과학이 말하는 것이 '진실'이며, 거기서 우리가 우리의 행동원리와 관점을 획득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 과학은 '사실'도 '진실'도 아니다
"하나의 계층구조에 매달리는 것은 더 큰 그림을, 자연의, "생명의 전체 조직"의 복잡다단한 진실을 놓치는 일이다."(p.227. '진실'이라는 단어에 주목하자)
"좋은 과학이 할 일은 우리가 자연에 '편리하게' 그어놓은 선들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당신이 응시하는 모든 생물에게는 당신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p.227 '사실'이라는 단어에 주목하자)
"어류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세계를 경험하는 제한된 방식에 자신을 가두게 되는 것이 걱정되지 않느냐고 내가 [아버지에게] 묻자"(p.252. '제한된 방식'이라고 비판하고 있는 것에 주목하자)
"어찌된 건지는 모르겠디만, 혼돈의 차가운 수학.속에 결국 일종의 우주적 정의가 존재한다는 판타지 말이다."(p.246)
대체 무슨 권리로 우리는 일상에서 '물고기', '어류'라는 단어의 사용을 박탈하려고 하는가? 수산물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 해녀, 아쿠아리움 운영자, 저녁 안주거리를 고르는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그게 단 하나의 진실일까?
- 통쾌하지 못한 복수, 반박
저자는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가 과학이 말하는 '진실'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진실'이 마치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게 가한 진실 또는 사실 차원의 강력한 보복인 것 마냥, 우생학자들과 백인우월주의자들에 대한 강력한 반박의 근거인 것 마냥 말한다.
그것은 그저 '분기학'의 관점에서 그럴 뿐이다. '과학자'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과학에 의해 반박을 받았으니 스스로 원통하고 분해하겠지만, 일반인인 내가 보기에도 통쾌한 보복이 되는 건 아니다.
그 원인은 과학에서 찾을 수 없는 답을, 과학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아가시와 조던이 과학과 도덕을 결합시킨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과학이 말하는 진실'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비판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다윈의 이론에서, 또는 민들레 법칙에서, '우리는 이러저러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도덕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것 역시도 과학과 도덕의 결합이다!
- 과학제일주의는 그만 보고 싶다
과학자들이 여기저기 나와서 간섭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이러저러하게 행동하는 것이 좋다.'는 조언을 곳곳에서 한다. 식단이나 운동 같은 문제를 뛰어넘어서 인간의 삶의 영역까지... 일반인들도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과학에 달려가 묻는 일이 어색하지 않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의 문제는 굳이 과학에 물어보지 않아도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는 문제다. 아니, 과학이 답변하는 순간 더 혼란스러워지는 문제다. 과학이 답할 필요 없이 우리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비판할 수 있고, 백인우월주의자를 비판할 수 있고, 성차별주의자들을 비판할 수 있다. 과학이 말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다. 매력적인 서사에도 불구하고, 이런 점 때문에 아쉽다는 생각이 계속 들게 만드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