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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준 May 31. 2024

하하, 이러려던 게 아닌데!

묘비 문구로 만나는 평범한 사람들

어떻게 죽을 것인가?

묘비 문구를 모으다 보니 그런 생각이 문득 드는 요즘이다.


여태까지 살면서 모르는 곳, 낯선 곳에서 죽는 마음은 어떨까.

살아서도 내 집에 사는 게 편하듯, 죽어서도 내 집에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지난 "관심 좀 꺼주세요."에서 죽은 사람들이 묘비 문구에서 남들에게 까칠하게 대했던 것도,

배경에는 나와 정말 가까운 가족, 친구들이 있다는 자신감(?)이 바탕이었다.

낯선 곳에서는 이런 연결이 모두 끊어지고 만다.


이런 소릴 하는 이유는 타지에서 죽고, 타지에 묻힌 사람들의 비문을 봤기 때문이다.

29세의 나이로 죽었다는 한 미국인의 묘비 비문이다.

낯선 손으로 눈을 감겨주었다.
낯선 손으로 사지를 정리해 주었다.
낯선 손으로 소박한 무덤을 꾸며 주었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그를 기렸으며, 애도했다.

_1844년 29세의 나이로 죽은 미국인. 남성. 헨리 켄들. 신문 편집자. 황열로 타지에서 사망.


자살이 아니고서야 예정된 죽음은 아니었을 것이고, 갑작스럽고 쓸쓸했을 터.

외출, 여행을 했다가 집에 돌아오면 편하게 느끼는 것처럼,

모르는 곳에서 죽어 친지들이 모르는 곳에 묻히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헨리도 그랬겠지.

헨리는 묘비 문구를 생각할 틈도 없이 병에 시달리다 죽었는지도 모른다. 묻어준 불특정한 착한 이들이 이 비문을 썼겠지. 29세, 안타까운 마지막이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는 '시신 수습' 때문에 다 이긴 전투를 마무리하지 못하기도 했다.

고대 아테네는 해전(바다에서의 전투)이 아테네가 승리할 길로 제시된 이후, 시민들의 권리가 매우 신장되었다. 배 위에서 싸우는 해전은 높은 숙련도가 필요했다. 아테네 사람들은 상업 활동을 하려고 먼 바다로 나가 무역을 하였고, 노 젓는 일이라면 큰 자부심을 갖고 상대가 누구든 끼어들어 훈수질을 하곤 했다.

이 아테네 해군의 사령관이 전투에서 승리하고도 해임당하는 일이 생겼다. 전투의 승리를 중요시한 나머지 전사한 시민들의 시신을 제대로 바다에서 건져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 이후로 아테네 해군 사령관들은 전투에서 승기를 잡아도 머뭇거렸다. 적을 추격해 전투를 마무리하기 보다는, 시신을 건지도록 지시를 했다. 아테네 도시에서 이탈리아, 소아시아, 북아프리카 등까지 무역하러 다니는 아테네인이었지만, 시신을 "집"에 갖고 돌아오는 일은 이토록 중요했다.

<<오디세이아>>의 오디세우스가 그렇게도 살아있는 동안 집에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처럼, 사람들에게는 연고지에서 죽고 싶다, 그리고 연고지에 묻히고 싶다는 의식이 강하게 있었던 것이다. 서양은 물론이고 조선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가족 무덤도 마찬가지 현상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위에서 말한 고대 아테네와 그래도 그리 멀지 않은 시기의 비문도 찾았다.


나, 크레타인인 고르튀나의 브로타쿠스가 여기 잠들다.
이러려고 여기 온 게 아니라
무역하러 온 거였는데.


기원후 1세기 정도의 묘비 문구인데, 꽤 위트가 있다.

삶은 예상하지 못한 일들로 가득하고,

그 와중에 불쑥 찾아오는 죽음도 있다.

브로타쿠스는 예상 못한 장소에서 예상 못한 죽음을 맞이했지만, 여유있게 농을 던진다. 같은 타지에서의 급작스런 죽음이어도 헨리의 죽음보다는 브로타쿠스의 죽음이 낫다는 생각이 든다.

비문에서의 브로타쿠스의 여유가, 그의 삶의 태도를 살짝 보여주기 때문은 아닐까.

살아있는 동안에도 예상하지 못한 일들에 부딪힐 때마다,

찡그리는 대신에 이렇게 여유있게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하하, 이러려던 게 아닌데 말이지!" 하면서 말이다.


이 글을 다 쓰고 나서, 찡그림의 순간이 분명 생길 것이다.

최소한 가장 첫 찡그림의 순간이라도,

나도 그때 이렇게 말해야겠다.

"이러려던 게 아닌데? 하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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