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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준 May 28. 2024

관심 좀 꺼주세요

묘비 문구로 만나는 평범한 사람들

평범한 묘비 문구, 재기발랄한 묘비 문구를 남기는 고인과 유족들이 있는가 하면, 신경질적인 묘비 문구를 남기는 사람들도 있다.


아래는 미국 버몬트주 스토에 있다는 한 비문의 내용이라고 한다.


나는 누군가였어요.
당신들과는 아무 상관도 없죠.


묘비의 주인의 자세는 정중한 듯 하면서도 도도하다. 통신판매 전화를 받은 사람이, "아, 괜찮습니다."라고 말하고 끊는 것 같다고나 할까. 묘지에 방문한 사람들은 우연히, 또는 흥미를 갖고 여러 묘비의 문구를 읽게 된다. 묘비에는 보통 "이름, 생년, 몰년, 하고 싶은 말", 이런 순서로 문구가 새겨져 있다. 그런데 이 사람의 묘비는 대뜸, "나의 아무것도 알려고 하지 말라."고 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었을까.


조금 더 강한 어투도 있다. 1882년에 죽었다는 미국 하트퍼드시에 남아 있는 비문의 내용이다.


그가 살아있는 동안 돌봐줬던 사람들은
누구 시신이 여기 묻혔는지 알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출처: “LITERATURE, HUMOR AND DEATH IN OLD AMERICAN CEMETERIES GRAVESTONES ON DEATH: WORDS ON LIFE”


비석을 읽고 있는 분, 그냥 지나가십시오.
바보 같은 일대기나 엉망인 라임에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마시고요.
예전에 저는 제 이웃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만,
지금의 저는 당신들이 알 바 아니거든요.

출처: Wright, G. N. "Discovering Epitaphs."


방문판매원의 벨 소리에 미동도 없는 집주인, SNS에서 모르는 이웃은 칼차단하는 계정 주인, 통신판매 첫 소절이 들리자마자 전화를 끊는 사람의 바로 그 자세다. 평범하게 이름과 생몰년만 쓰는 묘비도 많은데, 이런 문구를 쓴 사람은 한 명이 아녔다.

첫 번째 비문에서 분명한 이유를 말하지 않은 것과 달리, 두 번째와 세 번째 비문은 살짝 힌트를 준다. 자신들의 묘비가 진짜 의미가 있는 건 매우 가까운 사람, 가족, 이웃들이지, 우연히 지나가다 마주친 당신이 아니다. 정말 가까운 사람들은 별다른 표식이 없어도 잘 찾아올 수 있다. 그러니 지정된 손님(?)만 받지 뜨내기 손님들은 저리가라고 한다.


지당하신 말씀이지만, 마지막 가는 사람의 말 치고는 독다. 사람은 역시 끝까지 바보여서, 죽을 때가 되어도 용서할 수 없는 들이 있는 걸까? 불특정 다수의 행인들을 거부하는 이 무덤 주인들은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마을에서 떠도는 뜬소문에 시달렸을까. 미스터리 소설 같은 데서 보일 법한 장면을 떠올려 보면 이렇다. 어떤 돈 많은 노인이 한 명 갑자기 타지에서 이사 와서는 비어 있던 유서 깊은 저택을 사들였다. 가족은 한두 명 있거나 없고, 고용인이 두세 명 있다. 노인의 성격은 무척 괴팍하고 성질이 더러워, 고용인들은 마을에 나와 그를 헐뜯는다. 마을에서는 이 노인이 이십 년 전 모 사건의 범인이라는 소문이 떠돌고, 어느날부터 노인에게 마을에서 떠나라는 경고장이 온다. 울타리에도 같은 내용의 낙서를 한다. 이 노인이 죽게 되었고, 묘비에는 '내가 누군지 당신들이 알 바 아니다.'라는 문구가 붙었다.

아니면 사람들에게 배신당했다고 생각했던 걸까. 마을에서 장래를 촉망받던 한 청년이 있었다. 아는 것도 많고 호기심이 많아 곧잘 새로운 것을 익혀 마을 사람들의 부러움과 시기심을 함께 샀다. 머지않아 사업을 차려서 돈을 긁어모으기 시작했고 동향 사람들의 질투심은 더 커졌다. 그는 결혼도 했고 아이도 얻었다.  사람들은 그를 질투하면서도 어떻게든 돈을 얻어내 보려고 접근해왔다. 날마다 식사자리, 술자리가 이어졌다. 그러다 어느날, 예기치 못한 사고로 (그냥 맘편히 화재라고 치자) 그는 재산과 가족을 모두 잃었다. 그는 모든 것을 잃었고, 흔한 공식대로 지인들도 모두 떨어져 나가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남은 것은 빚뿐이었다. 그는 쓸쓸한 말년을 보내다 묘비에 '내가 누군지 당신들이 알 바 아니다.'라는 문구를 써달라고 부탁한다.

어쩌면 드라마틱한 스토리 없이, 남의 시선을 못 견뎌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눈치가 빠른 탓에, 남이 나 어떻게 나쁘게 생각할지, 험담을 하고 다닐지가 빤히 보이는 사람. 그런 사람이라면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 살아있는 동안 남의 관심을 거부하지 않을까. 이 사람은 죽게 되자 마침내 더욱 용기를 내어, '다들 저리가 !'라고 외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래, 왠지 이쪽이 제일 설득력이 있다.


이것저것 생각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묘비 주인들의 사연은 내가 생각한 것만큼 드라마틱하지 않을 수도, 아니면 오히려 상상을 뛰어넘을지도 모른다.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마지막 죽을 때까지 사람들과 가까워지고 싶지 않은, 마음의 응어리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나와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만큼은 죽을 때 이런 마음이 없기를 바라본다. 세상은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너무도 힘들고 처참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름답고 빛나고 있으니까. 그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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