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 이 말을 자주 하는 나를 발견했다. 왜 이렇게 못 듣냐고 핀잔을 주기도 여러 번, 계속되니 이젠 포기한 눈빛이다. 그냥 대화할 마음이 사라진 듯하다.
회사에서는 증상이 더 심했다. 팀원이 보고한 내용을 자꾸 되묻고 있었다. 언젠가는 회의 중에 여러 번 단어를 떠올리지 못해 당황하기도 했다. 집중하려고 애써도 금세 주의를 잃었다. 얼마 전 대화한 이야기를 까맣게 잊는 일도 있었다. 빈도가 늘어나자 팀원들과 대화를 하는 게 꺼려지기까지 했고, 스스로를 자책하곤 했다.
'미친놈아, 대체 뭐 하는 거야.'
젊은 치매 환자가 늘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 있다. 괜한 걱정에 용산구 치매예방센터에 전화상담을 했다. 10분 정도 내 이야기를 듣던 상담자분께서는 치매 증세는 아닌 것 같다고 하셨다.
"선생님, 혹시 요즘 스트레스 많이 받으세요? 번아웃이 왔을 때도 이런 증세가 있습니다."
나름 '힘들 때 웃는 일류'라고 자부해 왔다. 순탄치 않은 인생이지만 잘 살았고, 창업하고 9년 간 망할 뻔한 위기를 여러 번 겪었지만 이 역시도 잘 넘겼다. 스트레스에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즘 모습은 확실히 이전과 다르다. 에너지 레벨은 낮아졌고 의사결정에 대한 두려움도 커졌다. 위염으로 밤을 지새우거나 병원을 찾는 날이 많아졌다. 흡연, 과식, 과음도 안 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는데 왜 그럴까 의아했다. 집중력과 기억력 문제까지 터지자, 비로소 몸이 보내는 신호라는 걸 알았다.
'이러다가 더 큰 게 올 수도 있겠구나.'
뜬금없게도 이 와중에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생활력이 강하고 늘 긍정적인 분이었다. 그러나 믿었던 사람의 배신으로 크게 사업을 실패한 후 일순간에 무너져 내리셨다. 일상을 회복하기까지 수년이 걸렸는데, 독서와 글쓰기로 일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도 아버지의 서재 한켠은 일기장이 차지하고 있다. 책과 글을 유산으로 물려주겠다고 하실 정도로 읽고 쓰는데 진심인 분이다. 아버지처럼, 나도 글을 쓰면서 회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글쓰기는 내면을 들여다보는 과정이었다. 나에게는 언제나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이것이 지나치면 타인의 평가를 과하게 의식하게 된다. 힘들다는 말을 할 줄 몰랐다. 나약하게 비칠까 두려웠던 것이다. 스스로를 칭찬할 줄 몰랐다. 그게 겸손이라고 착각했다. 돌이켜보면 모든 기준이 내가 아닌 타인이었다. 글쓰기를 통해 조금씩 나를 바로 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한 일도 인정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의 성과를 진심으로 인정할 수 있을까?'
그동안은 맥북 메모장에 글을 써왔다. 혼자만의 공간에 글을 써 온 것이다. 몇몇 지인들에게 최근의 상황을 얘기했다. 하나같이 블로그를 시작해 보라고 추천했다. 언젠간 해보고 싶었다. 오랫동안 미뤄왔던 일을 시작해 보기로 했다.
"스타트업 9년의 경험을 진심을 다해 써보고 싶다."
브런치 작가 신청서를 냈다. 운 좋게 한 번에 승인이 되었다. 지난 10주간 20개의 글을 발행했다. 한주에 2개씩 쓴 셈이다. 사업하며 든 생각, 사업하는데 도움 되었던 이론과 경험을 글로 정리했다. SNS를 열심히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쓴 글을 개인 SNS에도 공유했다.
"브런치에 올려주시는 글 잘 보고 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간간히 이런 피드백을 받는다. 오히려 내가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댓글을 통해 추가적인 정보나 생각을 묻는 분들도 있었다. 정성스럽게 답변했다. 경험을, 생각을 글로 나누었더니 공감과 소통이 시작되었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쓸 때보다 훨씬 재밌고, 계속할 수 있는 동기부여도 되고 있다.
그럼에도 글쓰기는 여전히 어렵다. 쓴 글을 두고 마지막 '발행' 버튼을 누르는 건 더 어렵다. 글쓰기를 방해하는 적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다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