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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May 05. 2024

작고 소중한 나의 고양이

작아서 더 소중한

작고 소중한 나의 고양이는 원래 뚱냥이였다.

수수를 처음 만난 건 2013년 가을.


내 필명은 반려묘 수수 이름에서 따왔다.

누군가 박스에 새끼고양이 6마리를 넣어 청계천에 버렸고 그걸 본 어떤 사람이 당시 내가 살던 집 앞 동물병원에 갖고 왔다고 했다.


수의사는 무료분양이라는 종이를 써 붙여놓고 아기 고양이를 창가 잘 보이는 쪽에 뒀다.


퇴근하고 내리는 버스정류장 앞에 동물 병원이 있었기에 나는 매일 퇴근하며 아기 고양이를 지켜보았다.

한 마리 한 마리 누군가 데려가는 것도 봤다.

그중 유독 한 마리가 내 눈에 들어왔다.


고양이임에도 반려견 짱가와  뒤통수가 꼭 닮았다.

둘 다 갈색털을 가지고 있어서 인지도 모른다.

근데 6마리 아니 한 마리는 턱시도였으니 치즈 5마리 중 이 녀석만 계속 눈에 들어왔다.

'발가락을 닮았다'가 아니라 뒤통수를 닮았다.

자신의 운명도 모른 채 벌러덩 누워 속 편하게 자는 것도 꼭 닮았다.

그렇게 이 녀석을 포함해 3마리가 남았을 때 나는 사진을 찍었다.

아무리 봐도 자는 모습이 짱가 같다.


볼 때마다 저렇게 벌러덩 누워서 속편하게 자고 있었다.

두 마리가 남았을 때 난 녀석을 데려왔다.

그렇게 우리는 가족이 되었다.


270g의 작고 소중하던 아기 고양이는 곰팡이 피부염으로 고생을 하며 코 밑에 털이 나지 않았고,

요조숙녀 같았던 작은 아기 고양이는 이른 사춘기를 겪으며 6개월 즈음 참 빨리도 발정이 났다.

중성화 수술을 하기 위해 겨우 겨우 살을 찌웠다.


270g 시절 곰팡이 피부염을 앓고 있지만 빛나는 미모.


중성화 수술 후 작고 소중하던 아기 고양이는 성욕을 식욕으로 이겨냈다.

그렇게 무럭무럭 자라 6킬로를 넘어섰다.

(골격이 작은 편이라 정말 뚱냥이가 되었다)


아빠가 내 반려묘와 반려견을 보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고양이는 얼굴은 쪼끄만데 몸은 뚱뚱하고, 강아지는 삐쩍 말랐고...."

엄마는 고양이가 들을세라 소근소근 이렇게 말씀하셨다.

"쟤 얼굴에 비해 몸이 너무 뚱뚱한데... 쟤 비만 아니가?"


6키로가 조금 넘는 뚱냥이 시절

그리고 지금 나의 작고 소중한 고양이는 11살을 몇 개월 앞둔 4.7kg

어찌 보면 정상 몸무게일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정말 작고 소중한 고양이가 되어 버렸다.


작고 소중한 내 고양이는 비만세포종이라는 피부암을 앓았다. (살쪘다는 비만과는 관련이 없다.)

다행히 장기로는 전이가 되지 않았고,

수술 후 귀 쪽에 재발을 의심하며 항암치료를 했다.

귀를 자르겠다는 결심까지 했건만 병원에서 위치가 너무 애매해 항암을 권유했다.


그리고 지금은 항암을 하고 있지 않다.

귀 쪽 병변이 만져진다고 하기도 애매할 만큼 너무 작은 데다 약을 먹으면 다 토해버리는 작고 소중한 고양이를 보며 고민을 많이 했다. 

다른 병원 의사 선생님은 병변이라고 보기에 너무  애매하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작고 소중한 내 고양이가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다.

비만세포종. 심지어 매우 위험도가 높은 악성임을 알기 전까지 어렸을 때 앓았던 곰팡이 피부염인 줄 알고 피부병 치료만 했었고, 생존 가능한 몇 프로의 확률이라는 연구결과가 무색하게 작고 소중한 내 고양이는 건강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 아이와 지금처럼만 지낸다면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다.

(어떤 선택을 하든 나중에는 후회하겠지만.)

그렇게 나는 작고 소중한 아이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작고 소중한 내 고양이가 진짜 작아져버린 건 암 때문은 아니다.

언제부턴가 원인을 알 수 없는 구토가 잦아졌다.

사료를 먹으면 그대로 다 토를 했다.

병원에서 온갖 검사를 다했지만 무척 건강하다고 했다.


그러다 알게 된 것이 식이 알레르기.

닭고기 식이 알레르기로 추정을 하고 닭고기 베이스를 뺐다.

작고 소중한 내 고양이는 닭고기를 정말 좋아한다.

내가 행복을 하나 뺏은 것 같았다.


그런데 닭고기를 안 주니 구토가 확연하게 줄었다.

닭고기가 안 들어간 사료, 간식은 너무도 찾기 어려웠다.

LID 사료조차 닭고기 들어간 것을 제외하니

먹이는데 더 한계가 왔다.

구토는 어느 순간부터 다시 시작됐다.

다시 병원을 찾았다.

몸무게는 4.8kg

정말 작아졌다. 슬펐다.

의사 선생님은 습식으로 바꿔보자고 하셨다.

그리고 4.2kg이 되면 반드시 병원에 데려오라고 하셨다.


습식과 사료를 교차해 먹이다

지금은 완전 습식으로 바꿨다.

구토는 종종..

몸무게는 4.7kg

다행히 더 줄어들진 않는다.


이제 계절이 바뀌면 작고 소중한 내 고양이는 11살이 된다.

누군가엔 1kg 정도 줄어든 걸로 뭘 그래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작은 아이에겐 몸무게의 20% 정도는 줄어든 셈이니 사람으로 생각해 보면 좀 더 감이 올 것이다.


이렇게 수치로 계산하지 않아도 눈으로 보기에 확연히 작아졌다. 그래서 더 소중해졌다.


예전보다 더 작은 곳에 끼어있는 걸 즐긴다.

내 첫 그림책의 주인공 짱가가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

몸무게는 고작 2kg이었다.

6킬로였던 아이는 그렇게 작아졌다.


장례를 치르기 위해 몸무게를 쟀고

2kg을 듣고 오열하던 나를 보고 도와주시던 분이 조심스레 말씀하셨다.

"원래 죽기 2~3달 전부터 살이 많이 빠져요."


그래서 나는 작아지는 내 고양이를 보면 불안하다.

부디 나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아있기를.


욕심일 수도 있겠지만 부디 지금까지 함께 온 시간만큼만 건강한 모습으로 더 함께하게 해 주세요.


작고 소중한 내 고양이야,

나에게 사랑을 주어 고마워.

나도 언제나 너를 사랑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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