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아시아대륙, 12번째 나라, 1번째 도시
사누르에선 뭔가를 정해서 하기보단 그날그날 우리 마음이 내키는 대로 움직였다.
아침에 일어나면 숙소에서 준비해 주는 조식을 먹고 동네를 어슬렁거리면서 돌아다녔다. 닭 소비량이 많은 나라답게 길가에 닭장을 진짜 많이 보게 되는데 인도네시아의 닭장은 나무줄기를 엮어놓은 거 같은 바구니를 뒤집어놓은 모양이었다. 꽤 견고하게 잠금장치가 돼있는 닭장이 있는 반면, 그냥 뚜껑만 덮어놓은 거 같아 닭이 조금만 움직여도 날아갈 거 같이 생긴 것도 있었는데 생각보다 튼튼한지 닭이 그 안에 그대로 있어서 신기했다.
사누르에는 한인교회가 있어서 일요일에는 우버를 타고 가서 예배를 드렸다.
대중교통이 잘 되어있지 않은 지역이라 우버를 불렀던 건데 꼬불꼬불 산길을 지나가길래 우리가 여행하던 시기에 안전한 나라 중 하나라고 생각했던 인도네시아에서 큰일 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기사님은 우리의 목적지에 안전하고 친절하게 잘 데려다주고 떠났다.
예배를 드리고 점심을 먹은 후에 사누르의 쇼핑몰인 플라자 레논(Plaza Renon)을 가기 위해서 우버를 다시 부르려는데 한 성도님이 집에 가는 길이라며 우리를 태워주셨다. 덕분에 편하게 이동도 하고, 인도네시아에 사는 교민들의 삶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우리가 간 플라자 레논은 우리의 여행 때만 해도 하나뿐인 현대적인 쇼핑몰이었는데 글을 쓰기 위해서 검색하다 보니 이제는 이 쇼핑몰이 없어지고 아이콘 발리(Icon Bali)라는 더 큰 쇼핑몰이 생긴 거 같다.
어쨌든 우리가 이 쇼핑몰을 찾은 이유는 이곳에 밀크티 맛집인 차타임(Chatime), 빵을 좋아하는 남편을 위한 빵집, 그리고 꽤 큰 규모의 마트인 파파야 슈퍼마켓(Papaya Supermarket)이 있어서였다.
한낮의 더운 시간에 시원한 쇼핑몰 안에서 밀크티를 하나 사서 마시면서 구석구석 구경하다가 빵집에서는 바나나 크로아상과 피자빵을 사고, 슈퍼마켓에서는 수박과 청포도 과일을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교회를 다녀오고 쇼핑몰까지 다녀오니 그날 할 일은 다 한 거 같아서 숙소 수영장에서 약간의 물놀이를 한 후 숙소에서 쉬다가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인도네시아에 와서 또 재밌었던 건, 음식을 꼭 식당이 아닌 간단한 생필품을 파는 매점 같은 곳에서도 간단한 라면 같은 건 현장에서 조리에서 판매하는 거였다. 우리 숙소 앞 매점에서도 현지인들이 2인용 나무테이블에 앉아서 면요리를 간단하게 먹고 일어나는 걸 보게 돼서 우리도 저녁으로 먹어보자 해서 계란프라이가 올려진 미고랭 2개와 콜라를 주문해서 먹었다.
사실 매점 주인분은 영어를 못해서 옆에 있는 사람이 먹는 걸 보고 손으로 표시해서 주문을 해야 했음에도 현지인들처럼 길거리 작은 테이블에 앉아서 먹으니 사누르가 더 친해진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쇼핑몰에서의 간식부터 매점에서의 미고랭까지 만원도 사용하지 않아 동남아의 물가에 다시 한번 행복해졌다.
사누르에 도착 후 이틀이 지나서야 바닷가에 가봤다.
제일 유명한 사누르 비치(Sanur Beach) 대신 우리 숙소에 가까운 신두 비치(Sindhu Beach)를 갔는데 그렇게 멀지 않은 거리임에도 점점 더워져서 중간에 보이는 맥도날드에서 선데이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슈퍼에서 콜라를 사 마셨음에도 남편이 더위를 먹었는지 힘들어했다.
일부러 분위기 좋은 해안가 식당에서 해물코코넛 요리와 인도네시아식 덮밥에 수박주스와 오렌지주스까지 시켜 먹었는데 특히 해물코코넛 요리는 꽤 맛있었음에도 남편이 입맛이 없다며 음식을 깨작깨작 거리다가 결국 남겼다.
난 맛있게 잘 먹었지만 양이 많아 결국 남겼는데 남기면서도 나중에 이거 생각날 거다 했는데 역시나 다음 여행지에서 남편이 해물코코넛 요리가 가끔 생각난다며 아쉬워했다.
사누르에서 잘 쉬고 잘 먹으며 별거 안 하고 보냈는데 4일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오랜만에 하루에 한두 가지 정도의 일정만 소화하는 동남아의 여유로운 일상을 보내니 동남아, 그리고 인도네시아 여행의 매력이 바로 이런데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쁘게 보냈던 미국에서의 시간이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는데도 먼 과거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친절하지만 우리나라식 정은 없다 생각했던 서구권에 있다가 사누르에서 여행자인 우리에 대한 호감의 미소를 담고 있는 동네 사람들의 우리나라 시골인심 같은 친절을 겪게 되니 여전히 이국땅에 있으면서도 우리나라에 가까워진 거 같은 편안함을 느꼈다.
나와 남편 모두 기대하는 섬여행을 앞두고 설레는 마음으로 사누르에서의 여행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