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굴곡은 늘 예측할 수 없는 곳에서 시작된다.

by 생각쟁이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의 지은이 조승리는 열 다섯부터 서서히 시력을 잃어 이제는 눈앞이 어둠으로 가득하지만,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거나 어둠에 사로잡혀 있지 않다. 열 다섯이라는 나이에 처음 자신의 눈이 10년 안에 멀게 된다는 사실을 접하고 엄마가 알게 되면 혹여 엄마가 슬퍼하거나 절망하지는 않을까 싶어 겉으로는 오히려 더 담담한 척했던 이미 어린 나이부터 성숙하고 단단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이 책이 왜 나에게 왔을까. 의료 사고로 실명하게 된 김동현 판사님의 이야기. 원추각막을 늦게 발견하는 바람에 서서히 왼쪽 눈의 시력을 잃게 되었다는 소재원 작가의 이야기. 그리고 15세부터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게 된 조승리 작가의 이야기. ‘눈’ 과 관련된 이야기를 접하면, 나의 이야기인 마냥 더 몰입하게 된다. 본의 아니게 어둠의 시간이 길었던 연유도 나 역시 ‘눈’에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인생의 굴곡은 늘 예측할 수 없는 곳에서 시작된다.


동네 후배를 만나러 가던 화창한 길목에서 눈 앞에 번개 모양의 선 하나가 가로로 뉘여진 모양으로 나타났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번개 모양은 점점 길이와 개수가 더해져 온 시야를 가렸고 무서운 마음에 안과에 갔더니, 검사해보나마나 망막에 이상이 생긴 것 같으니, 괜히 여기서 시간 낭비하지 말고 큰 병원에 가 보라 했다.


다음 날 큰 병원에 갔더니, 망막이 얇고 모양이 이상해 보이니 미리 360도 레이저를 돌리자하셨다. 금방하고 여행을 가도 될 만큼 간단한 처치라는 말씀에 점 뺄 때 하는 레이저시술처럼 간단한 건가보다. 아무 의심도 없이 ‘알겠다’고 말씀드리고 처치를 받았다. 그 때부터 나의 지옥은 시작되었다. 눈이 타 들어가는 듯한 고통에 나도 모르게 아아악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도 그럴 것이 레이저는 ‘태우는’ 거다. 태워서 상처를 내어, 테두리를 만들어내는 것인데 왜 나는 ‘조금 더 생각해 보겠다’ 혹은 ‘안 하겠다’는 말 한 마디 못한 거였을까? 그 순간부터 내내 후회했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레이저를 받은 눈 쪽에서는 번쩍 번쩍 광시증이 사라지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하얀색 우주선 모양의 형체도 왔다갔다 떠돌아다녔다.


무서워서 매일을 울었다.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예방용이라는 것을 정확히 설명해 주셨다면 좋았을텐데. 눈 앞에 번쩍 거렸던 번개모양의 형체들은 편두통의 전조증상이라고 말해 주셨다면 좋았을텐데..처음엔 의사선생님을 원망했다. 그 다음에는 진료실에 같이 들어가 주지 않고 폰만 보며 그저 방관하고 있었던 남편도 원망했다. 그러다 맨 마지막에는 나를 원망했다. 결국 내 탓이지 않냐고. 왜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아무 말도 못하고 알겠다고 한 거였냐고. 왜 그 병원을 찾아간거냐고. 결국 내가 다 잘못한 거라며 나를 오래도록 원망했다.


원망의 시간이 길수록 어둠은 걷혀지지 않았고, 나의 어둠을 훑어보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 그저 어둠 속에 파묻혀서 나올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둠이 온 사방으로 퍼져 내 삶을 다 뒤덮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는데, 빛나고 싶어 반짝거리고 있던 수많은 별무리들을 그저 외면하고선 그저 어둠이란 이불으로 온몸을 덮어버리기만 했다. 그 시간을 빠져나오기가 참 힘이 들었다.


인생의 굴곡이 늘 예측할 수 없는 곳에서 갑자기 시작되듯이, 어둠을 빠져 나오게 되는 찰라의 순간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오기도 한다. 아니, 어쩌면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사이에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다가, 예상치 못한 계기로 이미 단단해져 있는 나를 비로소 발견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전문가가 그리 말했는데, 너라고 별 수 있었겠어? 의사 선생님이 하라는데. 뭘 찾아보고, 뭘 고민해 보고, 뭘 따져봤겠니. 나라도 그랬을 거야. 넌 그냥 전문가의 말을 따랐을 뿐이야. 니 잘못이 아냐.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일이야.”

예전이었다면, 그저 와 닿지 않는 위로의 말로만 들렸을 이야기가 정말 내 마음 깊숙한 곳을 울릴 때. 바로 그 순간. 비로소 단단해진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젠, 나의 어둠을 가만히 훑어볼 수도 있게 되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고, 의사 선생님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고, 나 역시도 예상할 수 없었던 일이며, 이미 벌어진 일에 후회나 원망, 자책 따위는 1도 도움이 되지 않으니 번쩍거리는 섬광이 나타나도 나의 소중한 눈이고. 어쩔 수 없는 지금의 상황은 그대로 받아들이자고.


뭐. 사실 지금도 가끔은 번쩍거리는 섬광과 비문증이 시야를 가릴 때 속상하고 짜증이 나기도 하며, 눈이 자주 간지럽고 피곤할 때마다 이거 레이저 돌린 거 때매 이런 거 아냐? 하고 괜히 신경쓰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제 더 이상 눈이 왜 이럴까. 편두통 현상을 왜 망막 이상으로 본 걸까. 와 같은 원망 담긴 마음은 마음에 담지 않는다.


아주 자그마한 어둠에 집중하다 온통 어둠으로 뒤덮어버리지 말고, 어둠 뒤로 조금씩 보이는 빛무리들에 집중하는 삶을 사는 것이 행복한 일이라는 걸. 조금 늦긴 하지만 늦은 만큼 확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를 읽다가 문득 든 생각이 이렇게 길어질 줄이야.



keyword
화, 금 연재
이전 16화'너'처럼 말고, '나'답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