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유를 겁냈다기보다, 책임감을 겁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스스로 결정하고, 결정 뒤에 따라오는 결과는 오롯이 내 책임이라는 것을 기꺼이 감내하기를 겁내했다. 그래서 '바람직하고, 해야만 하고, 그럴듯해 보이'는 것들을 하면서, 대부분을 내 기준이 아닌 다른 사람의 기준에 맞추어 살아왔다.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보다, '보통'의 선택을 했다.
내 마음에 솔직하게 말을 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하지? 대부분의 사람은 뭘 골랐을까? 다른 사람의 마음을 궁금해하며 평균과 보통의 삶을 고집했다.
신발을 고르고, 옷을 고를 때도 “다른 사람은 뭘 사갔나요? 뭐가 제일 인기가 많나요?” 라며 내 의견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의견을 더 궁금해했고, 심지어 차를 살 때도 “ 어떤 색상이 가장 인기가 있나요?” “어떤 옵션을 많이 선택하나요?”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더 믿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안전하고 튀지 않는 거라 여기며 말이다. 안전하다는 의미는 뭘까? 무엇으로부터 안전하다는 걸까? 뒤따라오는 결과가 적어도 ’ 실패‘는 아닐 거다. 뒤따라오는 결과를 내가 책임져야 하는 상황은 오지 않을 거라는 일종의 게으름과 귀찮음에서 온 것은 아닐까 싶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에서 밀은 자유를 생각의 자유, 행동의 자유 그리고 삶의 양식을 선택할 자유 이 세 가지 핵심적인 축으로 나눠 말한다. 나는 자유롭게 생각하는지. 자유롭게 행동하는지. 그리고 나는 나다운 삶을 살고 있는지 물음을 던진다.
그런 면에서 나는 전혀 자유로운 삶을 살지 않았다. 생각에 제약을 걸었고, 행동 역시 나 아닌 타인의 의견에 따라 행동한 것이 대부분이었고, '나'답게 사는 것이 아니라, '너'처럼 살고 있었다.
언제부터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을까.
누구나 인생에서 적어도 한 번은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삶이 꼭 나를 버린 것만 같은 인생의 굴곡을 맞이하게 되면, “나는 누구인가?” “나는 과연 제대로 살고 있는가?” “내가 정말 바라던 삶은 무엇이었나?”와 같은 삶의 본질적인 물음과 마주하게 된다. 내 삶에서 물음이 떠오르는 그 순간이 바로 ’ 진정한 나‘를 찾게 되는 순간이 아닌가 싶다. 나에게는 몇 년에 걸쳐 오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다른 사람과 다르게 선택한다고 해서. 조금 튄다고 해서 크게 문제 될 것도 없는데. 그때는 왜 그렇게 자유롭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내 생각, 내 결정, 내면의 소리를 그대로 따르면 큰일이 날 것처럼. '평균'과 '보통'을 따르는 삶을 벗어나면 마치 큰일 날 것처럼 말이다.
내가 한 선택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 미리 걱정하지 말고, 설령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기꺼이 책임지면 될 일이었다. 혹시 결과가 좋지 않았다 하더라도 아무도 나를 원망할 사람도 비난할 사람도 없다. 선택과 결과는 오롯이 내 몫이라는 걸. 그러니 내 마음에 따라서 한 번 살아봐도 된다고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말해줬으면 좋았을 테지만... 뭐. 지금이라도 그러지 않아서 다행이다.
나에게 솔직하게 말을 걸고, 내 삶의 방향을 반추해 보며 매일 아주 조금씩이라도 달라지고 있는 지금의 나라서 좋다. 자유도. 책임감도 더 이상 겁내지 않는다. 그래. 이렇게 나답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