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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쟁이 May 11. 2024

아주 작은' 선택' 이라도, '내'가 해 보는 것.

선택이 어려운 '너'와 '나'에게


"자신의 욕구와 바람을 스스로 더욱 존중할 수 있도록,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올 때마다 선택하게끔 훈련받은 아이는 커서도 선택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아요. 자존감이 높은 아이로 자랄 테니까요."

일레인 N. 아론


어렸을 때부터 저는 '선택' 이 참으로 힘든 아이였습니다.


'선택'을 하자치면, 내가 하는 선택에 대한 확신이 없었고요. 혹시 지금 내가 하려는 선택보다, 다른 것이 더 좋고, 더 나은 거면 어쩌지 하고요.


 두 번째 이유는 제가 하는 선택을 혹시 다른 사람이 싫어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 때문이었고요. 


마지막으로 제 욕구와 바람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좋은 게 좋은 거지 했습니다. 

혹여나 서로 다투게 되는 갈등 상황으로 가거나, 다른 선택으로 인해 내가 주목 받는 것이 싫었거든요. 



그러다가 크면서 깨달았어요. 제가 저를 얼마나 존중하지 않고 있었냐하고요.

제가 양보한다고 해서, 제 맘 속에 욕구나 바람이 없는 건 아니었거든요....



초등학교 5학년 때인가, 6학년 때인가...

지금은 그런 상이 없지만, 그때 '일기 쓰기 상' 이 있었어요.

1년 동안 일기를 누가 더 정성스럽게, 더 많이 썼느냐를 보고 학교에서 상을 줬어요. 

여느 고학년 여자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저는 소중한 일기장을 아주 예쁘게 정리해서 표지도 예쁘게 달아서 학교에 가지고 가고 싶었지요.



여러 권 되는 일기장을 묶어서, 색지로 겉면을 표지처럼 싸서 제출했는데,  문구점에 마침 남은 색이 2가지 밖에 없어서 엄마는 은색과 파란색 3M 색지를 사서 저희에게 주셨어요.


은색으로 코팅된 색지는 반짝반짝 빛이 났고요. 파란색 무광 색지는 제가 좋아하는 네이비 색도 아닌 촌스런 파란색이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반짝거리는 은색이 너무 갖고 싶었거든요. 

반짝거리는 은색 표지로 일기장을 싸면, 소중한 내 일기장이 더 이뻐 보일 것 같았지요.


왜.. 어릴 때는 아주 작은 것도 의미를 부여하고 그러잖아요? ㅎㅎ


그런데  색지를 보더니  동생이 바로 나는 은색! 하며 은색 색지를 들고 가더라고요.

엄마는 저에게 무슨 색을 하고 싶니? 물어봐 주시진 않으셨어요. 동생이 고른 은색으로 동생 일기장을 싸 주시더라고요.


그 짧은 순간에 저는 별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난 파란색은 싫은데.. '


동생이 파란색 한다고 했으니, 나는 그냥 은색 한다고 해야 되겠지?


동생에게 양보를 안 하면 못된 아이라고 하늘에서 벌을 주시면 어쩌지?

내가 은색 하고 싶다고 말하면 엄마가 싫어하실까?

별것도 아닌데 그냥 파란색 해. 엄마가 그러시면 어쩌지?

색깔이 무슨 상관있어. 별거 아닌 일인데 그냥 파란색 하면 어때.. 

그래도 속은 상한데?


뭐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아이고.. 예나 지금이나 머릿속에 별별 생각을 다 하는 건 여전했네요.

그래도 지금의 저였다면 저렇게까지 맘 속으로 고민만 하진 않았을 것 같기도 해요. 



"나도 은색을 하고 싶다", "은색 색지를 한 장 더 사러 가자"라는 말을 하지 못했어요.

엄마가 싫어하실까봐. 동생과 싸우게 될까봐. 소란이 일어날까봐.. 

 

속상한 마음에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남은 파란색으로 일기장 표지를 쌌어요. 

당연히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요.


일기장 표지에 제목을 썼다가, 틀려서 지우개로 지웠더니, 그 부분만 색상이 날아가는 바람에

안그래도 미워보였던 표지가 더 미워보이더라구요. 




지금 생각해 보면, 별일 아니거든요.

그런데도 그때 그 색지의 색깔과 촉감이 선명히 기억나는 걸 보면, 

그때 그 색지 뒷장에 있던  모눈과 3M이라고 적혀 있던 제조회사명이 선명히 기억나는 걸 보면,

어린 마음에, 꽤나 속상했나 봅니다.


엄마가  생각쟁이야, 너는 무슨 색지가 갖고 싶니?라고 한 번만 물어봐 주셨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생각쟁이는 은색 색지가 갖고 싶었구나…

한 말씀만 해 주셨으면, 내 마음을 읽어주셨다면.. 양보해도 많이 속상하진 않았을 것 같은데.. 싶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저의 의사가, 제가 하고 싶었던 선택이 가족들에게 존중받지 못한 기분이라서 속상한 기분이 오래간 것 같아요. 그리고 저 자신 조차도, 저의 욕구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더라고요.



아무도 물어보지 않을 때는 제가 먼저 말해도 되었을 테지만, 어렸을 때의 저는 그러지 못했어요.

엄마에게 엄마 나는 은색이 갖고 싶어라고 정확히 말했더라도,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걱정을 사서했어요. 사실과, '아마 그럴 것이다'라는 추측은 다른 건데 말이에요.



그래서 다 큰 어른이 된 지금 저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비록 확신이 부족하더라도, 내 욕구와 소망에 기반한 선택을 하는 연습.

다른 사람의 눈치는 조금 덜 보는 연습.

그리고 '선택' 한 것에 대해  말로 표현하는 연습.



조금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가장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르니까요.


매 순간이 선택이다 출처: 핀터레스트



나의 인생은 내가 한 수많은 '선택'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선택'은 내가 한 것이니 내 삶에 대한 책임도 나에게 있습니다. 다른 것이 더 나아 보이고, 제 선택에 대한 확신이 없더라도 일단 해 봐야 아는 거지요. 두렵더라도, 확신이 없더라도 일단은 위험을 감수하고 스스로 '선택' 해보고 선택 뒤에 따라오는 결과에 대한 책임은 제가 지는 연습을 해야 해요. 


그래야 내 자존감도 자라니까요. 언제까지 회피할 수는 없고요. 


말하지 않아도, 누군가 내 마음을 물어봐 줄 거라는 기대 또한 버려야 합니다. 말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알 수가 없으니까요. 나를 싫어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나, 내 의견을 밖으로 말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갈등에 대한 두려움은 버리고, 스스로 선택하고 밖으로 표현해야 하더라고요.


말하지 않는다 해서, 나의 마음이 나의 욕구들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요. 

그리고 스스로 선택하지 않아서 따라오게 되는 결과들도 결국 온전히 저희에게 오는 것이니까요.


일레인 N. 아론은 자신의 욕구와 바람을 스스로 더욱 존중할 수 있도록,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올 때마다 선택하게끔 훈련받은 아이는 커서도 선택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자존감 높은 아이로 자랄 것이기 때문이라고요.


매번 양보하는 순한 아이. 의견을 잘 표현하지 않는 아이에게도 의견을 표현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돌아가며 기회를 주라고 하더라고요. 오늘은 첫째가 메뉴를 정했다면, 다음 날은 둘째가 먹고싶은 메뉴를 정하게 하는 식으로요. 


그래서 저는 오늘 아이와 '선택'의 연습을 합니다. 우리 아이가... 어릴 적 저처럼, 혹여나 '선택'을 어려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요. 그리고 아직 선택에 있어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저를 위해서요. 마음속에 있는 어린아이를 자존감 높은 어른으로 키우기 위해 함께 연습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오늘. 휴일 저녁 메뉴는 무엇인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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