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대를 전공하려고 마음먹은 노노루는 왜 하필 시각디자인을 선택하게 되었을까?
워낙 효율(쓸모)을 중시하고 현대 미술에도 큰 흥미가 없어서 순수미술은 그다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특히 노노루가 2학년 때 막연하게 수강 신청한 김민수 선생님의 ‘디자인과 생활’은
그동안 가지고 있던 디자인에 대한 편견을 완전히 ‘디자인’ 해버렸다.
디자인의 어원적 개념 ‘de + sign’은 라틴어원 ‘디시그라네’에서 유래했다.
이는 ‘상징(sign)을 해석(de)하다/해체(de)시키다’의 의미가 중첩된 말로
기존의 인간 삶에 대한 철저한 이해과정을 통해 삶을 해석하고 새로운 상징체계를 창조하는 것을 뜻한다.
아름답고, 세련되고, 멋스러운 제품을 ‘디자인’하는 건
‘디자인’의 아주 협소한 의미에 불과하다는 결론.
독보적이고 솔직 발칙(1990년대에 서울대 미대 선배 교수들의 친일 행적을 언급해
재임용 탈락이라는 부당한 일을 당하고 학생들과 함께 복직 투쟁을 벌인 적이 있다)한
김민수 선생님의 지론에 홀딱 반해버린 노노루는 무조건 디자인학부생이 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김민수 선생님이 시각디자인이 아니라 산업디자인 전공이었다는 건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해본 거라곤 종이에 대충 끄적이는 것만 해본 노노루는 역시 시각디자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래, 그게 아주 문제였다.
노노루는 해본 게 거의 없었다.
[단점 1] 입시미술은 전과하고 싶어 한 두 달 찍먹하고
[단점 2] 중고등학교 시절 제대로 작품도 해보지 않았으며
[단점 3] 복수전공 신청하려고 포트폴리오 만든 게 작업물의 전부였던 노노루의
[최대 단점]은 포토샵, 일러스트레어터를 전혀 할 줄 모른다는 것.
그나마 갖고 있던 3년 된 와콤타블렛 하나.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시각디자인 복수전공을 하겠다고 덤빈 건지?
그냥 ‘어떻게든 되겠지’하고 덮어버렸다.
(평소 걱정이 별로 없는 편이라 다행인지, 불행인지…)
복수전공 두 번째 학기, 드디어 첫 ‘시각디자인 전공’으로
1학년 기초 수업도 다 안 듣고, 2학년 전공필수는 건너뛰고, 3학년 전공선택인 ‘공공디자인’을 듣던 그날.
바야흐로 앞으로 1년 반 동안 노노루를 캐리 해주실 경선 쌤과의 첫 만남이었다.
물론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던 건 아니고 선생님의 수업을 들으며 엄청 의지하고 따랐었던.
첫 개인과제를 ‘코랄 페인터’(지금은 물론 당시도 거의 잊히던 전문가용 드로잉 프로그램)와
‘알씨 꾸미기’(그림판의 고오급 버전)로 때우고
과제물 출력도 어찌할 줄 몰라 작게 조각내어 집에서 프린트하고선 부끄러운 줄 모르고 내보였던 노노루.
(보통 시각디자인 포스터 과제는 A1 사이즈 이상으로 전문 제본사에 출력을 맡긴다)
두 번째 조별 과제에 노노루와 같은 조로 묶인 전공생들의 황망한 눈빛이란…
아마 확신컨대 경선쌤은 그나마 이런 나를 커버 쳐줄 수 있는 실력과 인성을 가진 학생들로 조를 짜주셨을 거다.
츤데레 천사 경선쌤과 전공생 학우들이 정말 많이 배려해 줘서 무사히 한 학기를 마칠 수 있었다.
노노루는 그 이후로도 무수히 많은 조별 과제를 민폐 + 무대뽀 + 정신승리로 극복하고
휴학 동안 열심히 일러스트레이터를 연습해서 1년 후 대망의 5학년 (학번으로는 6학년) 졸업전시의 해를 맞게 된다.
개강 하루 전날 어찌나 긴장했던지.
졸업 이수 학점도 꼼꼼히 살펴보며, 졸업 인정 신청 과목도 하나하나 챙기며
드디어 호랑이 굴로..
이렇게 그려놓고 보니 진짜 대책 없는 ‘타대생 빌런’이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사죄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동안 무척 죄송하고 정말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