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노루가 꼽은 ‘미대특’ 두 번째 이야기.
다른 전공들과 구별되는 미대 수업 중 가장 독특한 것은
‘누드모델 크로키’가 아닐까.
노노루는 누드모델 크로키를 소묘의 기초(교양), 평면조형 2(전공필수), 드로잉 기법(전공선택)
세 수업에서 경험했다.
특히 드로잉 기법은 총 4주간 꽤 심도 있게 접할 수 있었는데
2절 갱지 크로키북을 매주 지참해서 목탄, 색연필, 콩테 등 다양한 재료로 표현해 볼 수 있었다.
모델이 오시는 날은 수업 시작 전부터 긴장감이 맴돌고 엄숙해진다.
짧게 시작해서 1분, 3분, 20분, 최대 40분까지 포즈가 이어지는데
전문 모델이 아니면 20~40분 동안 가만히 정지된 상태로 버티는 게 상상도 안 될 지경.
노노루가 그린 모델은 세 수업 통틀어서 20대 여성, 30대 남성, 40대 여성이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게 남성 모델은 웅장한 배경 음악을 틀어놓으셨던 기억.
음악의 분위기에 맞게 포즈를 취하셔서 남성의 근육이나 동세가 더 잘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노노루의 실력이 이런 프로페셔널함에 응할 수 있었는지는 논외로… 흑흑.
한참 뒤에야 알게 됐지만 누드모델로 남성을 모시는 건 쉬운 기회가 아니라고 한다.
또 누드모델 본인이 미대생일 경우가 있어 쉬는 시간에 학생들의 크로키를 봐주기도 한다고.
노노루는 성격이 급해 글씨도 그림도 박박(?) 그리는 스타일이라
시간제한 크로키도 시간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선의 질감이나 동세 같은 표현보다
비율이나 형태만 최대한 똑같이 그리려 애쓰고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다가오셔서 “강조할 부분만 더 드러내도 좋다”며
다음 20분 크로키에서는 일부러 천천히, 크고, 자세하게 그려보라고 하셨다.
그때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자유롭고 즉흥적이면서 절제되고 계획된 선의 느낌을.
2절 스케치북 들고 다니랴, 긴장감 속에서 초집중해서 묘사하느라
끝나면 항상 진이 빠지는 누드모델 크로키였지만
인체의 느낌을 맛볼 수 있었던 이공계 출신으로서 인생의 드문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