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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력가노루 Apr 29. 2024

::: 그림쟁이 급식이 샤대 간 썰 <3>


만화에서는 꽤나 간결하게(?) 그렸지만,

사실 이 시절의 노노루는 거의 상사병을 앓았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한라산 중턱에 자리한 신성여고.

졸업생들 사이에서도 기이한 인물로 유명한 그 이름,

교감을 거쳐 지금은 은퇴하신, 지구과학 황재홍 선생님.


처음 선생님의 존재를 알게 된 건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3월,

집 가는 길에 마주친 아랫집에 살던 선배 덕분이었다.

언니도 선생님의 (수많은) 팬 중 하나였고,

그(?)의 명석함과 유머와 외모에 대해 칭찬을 늘어놓았는데,

그것이 자극제가 되어 관심이 생겨 버렸다.


당시 이미 한 번 지구과학 수업을 듣고 그저 특이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언니가 하는 말들은 어느샌가 그의 특이함을 ‘특별함’으로 바꿔놓고 있었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지구과학 시간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막상 지구과학시간이 되면 가슴이 솜방망이질을 해대고,

지학실 맨 앞자리에 쭈뼛거리며 다가가 앉고,

선생님 제일 가까이서 사심 가득 수업을 듣고,

(굳이 변명하자면 원래 지구과학을 가장 좋아했었다!)

선생님과 마주친 날이면 그 순간순간, 감정 하나하나 촘촘히 일기로 남기고,

선생님을 볼 수 없는 방학이 다가오는 걸 죽기보다 싫어했던.


당시 노노루는 과학반에 속해있었는데

과학반이야말로 ‘과학과 선생님들’과 다이렉트로 교류할 수 있는,

선망받는 선택된 자들의 집단(?)이었다.

그중 유별나게 황재홍 선생님을 추종하는 세력이 있었는데,

명찰 뒷면에 자기들만의 표식을 달고 다니는 ‘천(재 황)재홍’이라는 이름의 팬클럽이었다.


회장(한장), 행동대장(동장), 회원(소심 노노루)으로 단촐하게 구성된 그들은

매일 과학실 (특히 지학실) 청소를 도맡아 하며

과학실을 들락날락 거리는 선생님의 자취를 쫓아다녔다.

모두 아이 둘 엄마가 된 지금도  여전히 ‘천재홍’ 시절의 별명을 부른다.

(‘천재홍’ 시절의 자신들의 모습에는 살 떨리게 거부반응을 보인다는 게 함정.)


나의, 우리의, 모두의 ‘천재홍’ 선생님은

제주 출신으로 서울대 사범대에 진학해 선생님이 된 ‘난 사람’이었고,

그것이 바야흐로 노노루가 난생처음으로

샤대를 의식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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