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를 풍미했던 엠씨스퀘어를 기억하시는지. (이거 알면 최소 30대)
등교할 때 정문에서 나눠주던, 오목하기 좋은 엠씨스퀘어 공책 앞표지에는
이 이름도 거창한 집중력 학습기 덕분에 성적을 쑥쑥 올린 학생들의 실사가 실려있었다.
참으로 노골적으로 몇 등이 올랐느니, 전교 몇 등을 했느니 커다란 숫자도 함께 적혀있던 기억.
그걸 바로, 우리 엄마가 사 온 것이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선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2년 내내 다니던 종합학원을 그만두고
집에서 혼자 공부해 보겠다고 선언한 어린 노노루.
학교에 다녀와 바로 낮잠을 자고 있으면 퇴근한 엄마가 나를 깨우고
그날 학교에서 배웠던 걸 복습하며 공부한 노노루는
그 해 중학교 3학년 첫 시험을 꽤 잘 보게 된다.
전교 1등.
당시 노노루는 반에서 3~4등 정도 하는, (전교로 치면 20~30등)
극상위권은 당연히 아니었기에
엄마와 전교 등수를 몇 등 올리면 그만큼 용돈을 주겠다는 내기를 걸고 있었다.
얼마를 받았는지는, 심지어 그 큰돈을 진짜로 엄마가 줬는지 말았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내가 전교 1등을 했다는 사실과 함께
엄마와 나의 내기가 일파만파 퍼졌다는 소문을 나중에야 듣게 된 것을 똑똑히 기억한다.
사람들은 남 이야기 하기를 좋아한다는 것,
그 남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일 수 있다는 사실을 중학교 3학년에야 깨달았다.
하지만 여전히 내 꿈은 그림이었고,
‘밍크’ 잡지에 소개된 육지의 ‘한국애니메이션고등학교’에 가는 게 로망이었고,
공부를 하지 않는 시간이면 그림 연습장에 하루 한 두 컷씩은
삘 충만한 채 그림을 그리고야 마는
(당시 최고의 일러스트레이터는 ‘창세기전’, ‘마그나카르타’의 김형태 작가였다.)
영락없는 ‘그림쟁이’였다.
지금도 만나는 고딩 친구가 그러더라.
너는 게임 일러스트레티어가 될 줄 알았다고.
나도 내가 평생 그림만 그리며 살 줄 알았지.
당시 중학교 만화동아리의 자타공인 ‘그림짱’은
어설프게 샤프와 지우개로 끄적거리는 노노루와 달리
학원에서 정식으로 입시미술을 공부하고 적극적으로 진로를 개척해 나가는 실력자 친구였다.
내가 로망 하던 ‘애니고’에 지원서를 넣고
말만 들어도 다리가 후덜 거리는 실기 시험을 치르고 온 ‘그림짱’.
나의 워너비가 결국 전국구 ‘그림짱’에 들지 못했다는 사실을 듣고 어찌나 당혹스럽고 두려웠던지.
“실기 공부도 제대로 안 한 주제에, 감히 니가?”
그림의 세계가 높은 벽으로 가로막히는 느낌이었다.
그럼 난 이제 무얼 해야 하지?
어린 노력가노루는 그렇게,
그림에서 눈을 돌려 학업에 노력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학업에 매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생겼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