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베추모의 질주 1

에세이 10 별거 아이네 !

by 정숙

별거 아이네!




설원을 그리며 계획했던 ‘베추모’ 여행이 겨우내 구제역 파동으로 묶여 사월 하순이 돼서야 풀렸다. 베추모는 베료자(자작나무)를 추억하는 모임이라는 뜻이다. 지난해 시월 한,러수교 이십 주년을 기념하기위해 모일간지에서 주선한 이문열 작가와 함께 러시아 대문호들의 생애와 작품 가도를 따라 여드레간의 문학기행을 다녀온 사람들이다.


우리 베추모는 각계각층의 다양한 연령대의 독자와 작가가 함께하는 특유의 매력이 있다. 이번 나들이는 2박3일간 이문열 작가의 고향인 영양 두들마을과 병산서원, 그리고 상암월드컵경기장과 올림픽공원 등 국내외 수많은 체육시설과 건축물을 설계하신 류춘수 건축가의 고향인 경북봉화가 주축이다.


봉화의 깊은 산속에 꼭꼭 숨겨놓은 작품, 일명 ‘별거 아이네!’ 라고 하는 별장에 초대 받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만큼 자연친화적일 거라는 생각에 재미있는 상상을 해보았다.


잠실 정신여고 앞에서 각자의 승용차에 나눠 타고 지방팀들과 합류하기위해 영주로 향했다. 고속도로를 벗어나자 온통 붉은 복숭아꽃이 활짝 핀 과수원길이 펼쳐졌다. 몇 년 전 내가 독일에서 이탈리아국경을 넘었을 때 보았던 그 복숭아꽃보다 훨씬 곱고 아름다웠다.





영주역근처 식당에서 부산과 대전에서 온 팀과 합류하여 봉화로 향했다. 계곡과 숲이 어우러진 첩첩산중의 외딴 곳에 자리한 ‘별거 아이네!’에 도착한 우리들은 정말 별난 체험을 하게 되었다. 아담한 현대식 건물에는 연구실을 비롯해서 있을 건 다 갖추었는데 오두막처럼 아늑했다.


툇마루와 연결된 정자에 차려진 저녁만찬엔 이곳의 별미인 좁쌀 막걸리가 당연 인기였다. 모두들 그 맛에 취해 후들거리는 몸으로 아슬아슬한 사다리를 타고 다락방에 모여 선생님의 작품세계를 드로잉 영상으로 감상하였다.


상암월드컵 경기장 시공을 앞두고 오스트리아로 가는 기내에서 갑자기 방패연이 떠올랐다고 한다. 이미 설계된 원형의 지붕을 방패연 모양으로 바꾸었다고 했다. 신소재인 섬유 지붕이 삼십년의 수명을 유지할 뿐 아니라 조명도 자연 친화적이며 디자인도 창호지색을 머금은 꿈과 희망을 담아 창공을 날고 있는 방패연을 상징한다고 했다.


이튿날 우리들은 아직 꽃샘추위가 가시지 않은 계곡물로 세수를 하고 산책길에서 바라보니 있는 듯 없는 듯 그래서 정말 ‘별거 아이네’가 된 게 아닐까.



헛제사 밥


CoSuQsSih3k.jpg

안동 종가댁 며느리들은 스스로 본인들은 제사공장 공장장님이라고 부른다네요~!



아침식사를 마치고 영양 두들마을로 향하는 숲 속 길은 상쾌했다. 두어 시간을 달렸을까 유교문화의 본거지인 안동에 왔으니 헛제사밥으로 점심을 먹기로 했다. 타지방 사람들에게는 낯설은 상어고기로 만든 돈배기산적이며 탕, 갖가지 나물과 떡, 과일을 놋그릇에 정갈하게 담아내고 그 분위기도 마치 가족 친지들이 모여 차례를 지내고 음복하는 기분이었다.


가는 길에 낙동강이 바라보이는 원촌리의 이육사 문학관을 찾았다. 이육사는 퇴계 이황의 14대 손이다. 강직한 저항성의 퇴계학풍을 이어받은 집안의 인물답게 항일 투쟁과 독립운동의 선봉에 선 작가이다. 그의 생애를 영상으로 감상하고 난 뒤 무남독녀인 이옥비 여사가 단아한 한복차림으로 강단에 올랐다.


그 당시 베이징 일본총영사관 감옥에서 아버지의 마지막 순국을 증언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문학관을 둘러본 우리들은 그의 묘소와 옛 집터에 세워진 청포도 시비를 감상하고 두들마을로 향했다.



두들마을





마을 어귀에 들어서니 한 눈에 보기에도 양반들의 멋과 품격이 느껴졌다. 여장을 풀기 위해 짐을 챙겨 대문간에 서성이는 우리들을 사모님이 반가이 맞아주었다. 광산문우는 이문열 작가의 경기도 이천 부악문원에 이어 두 번 째로 문을 연 문학연구소이다.


학사와 강당 사랑채 서재 또 안채에 딸린 대청과 식당 그리고 정자가 있는 ㅁ자모양의 한옥 구조이다. 볼일을 마치고 돌아온 이문열 작가도 함께 사랑채에 둘러앉아 그간의 회포를 풀었다. 마치 몇 백 년은 거슬러 궁궐에 있는 듯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저녁밥을 준비하는 동안 이문열 작가의 안내로 마을을 둘러보았다. 언덕배기에 위치해 있다고 해서 두들마을이란다. 이 마을은 퇴계선생의 학맥을 이은 석계 이시명 선생이 병자호란이후 세상과 연을 끊고 정부인 장계향과 이 마을에 터를 잡았다고 한다.


그 밖에도 퇴계학문을 이어받은 여러 학자와 독립운동가 항일시인 등 현존하는 작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인물을 배출한 마을이다. 석계고택을 지나 석천서당에 이를 쯤 유년시절 이곳에서 한문공부를 했던 추억담도 들려주었다.


생가를 돌아 음식디미방 전시장에 들렀다. 음식디미방은 340여 년 전 정부인 장계향 부인이 양반가의 숱한 손님을 맞이하면서 터득한 과학적이고 지혜가 담긴 요리에 대한 서책이다. 이문열 작가의 선대 할머니이기도 하다.



다운로드 (4).jpg




우리들은 밤이 늦도록 경상도 특유의 익살과 그윽한 마음으로 편안한 하룻밤을 지냈다. 나는 문단의 거장인 작가를 가까이에서 인간적 고뇌가 깃든 숨결과 소박함에 매료되어 숙연해졌다. 이튿날 아침 떠나려는 우리들에게 배웅하려다말고 수줍은 듯 사모님이 정자로 안내하였다.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정자를 자랑하고 싶으신 게다. 곧 이어 다례상이 차려졌고 짓궂은 봄바람은 옷자락을 들썩거리며 성가시게 했다. 정자 아래의 작은 연못에는 자라 한 마리가 떠있었다. 그 때 이문열 작가가 정자에 대한 내력을 들려주었다.


이 정자의 이름은 사모님의 호를 따서 ‘자은현’이라 하고 정자를 지을 당시 높은 지대임에도 난데없이 자라 한 마리가 나타났단다. 상서로운 징조라고들 해서 지리학과 교수에게 자문을 구한 결과 그 곳에 분명 물이 있을 거라고 했단다. 그 때 이 연못을 만들었고 숲으로 돌아간 자라대신 형상을 만들어 사모님께 정자를 선물했다고 한다.






keyword